[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하느님께 다짐하는 것은 신중함을 요구합니다. 해놓고 안 지키면 숨어 버리고 싶지만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짐에 대해 어떤 신자분이 질문해 오셨습니다. 날마다 성찰을 통해 하루를 돌아보는 신실하신 분인 듯한데 저녁기도를 하다 보면 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분이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에 활용하시는 것은 기도서에 나와 있는 주요기도문 중 하나인 "저녁기도"입니다. 이 기도문에는 "통회기도"와 "삼덕송"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중 통회기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저녁기도이니만큼 지나온 하루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성찰을 통해 깨닫게 된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다시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합니다. 통회기도는 하루에 대한 성찰을 하고 나서 바치는 기도인데, 우리가 부담을 느껴야 할 대목이 눈에 띕니다. 그 신자분이 질문한 사연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짐을, 그것도 하느님께 다짐을 해놓고선 또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데 이런 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불러 십계명을 어기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생활을 잘 정리하고 선행에 힘쓰며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현실의 삶은 늘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통회기도에 나오는 저 다짐은, 하느님을 눈 앞에 모시고 드리는 서약이며 그만큼 내 마음을 고쳐 잡으려는 강한 결의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최선의 노력을 해 보겠다는 고백입니다. 적어도 이 기도를 하는 동안만큼은, 다음날 내가 저지를 잘못을 계획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 기도를 바치는 순간에 충실하시란 뜻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자주 반복하던 잘못을 그 이튿날에는 피했다면, 이때는 통회기도보다는 그날 하루에 대한 감사기도를 하시도록 권해 드립니다. "하느님, 어제의 다짐을 지킬 수 있도록 저를 유혹에서 보호해 주시어 고맙습니다. 내일도 자비를 베푸시어 제가 당신을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아멘" 으로 내용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 자주 반복하던 잘못을 이튿날에 피했다면, 통회기도보다는 감사기도를 하라. (이미지 출처 = Pixabay)

반복되는 잘못을 피하는 방법에 묘책이란 없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포르노 영상물을 보는 일에 반복적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를 어찌할 수 있을까요? 며칠 잘 참았다가도 인터넷을 통해 오는 광고물에 낚이기도 합니다. 술 한 잔 마시고 나니 마음이 그런 쪽으로 가기도 합니다. 강한 정신력으로 유혹을 이겨 보겠다고 다짐하고 잘 버티다가도 이런 식으로 어렵지 않게 걸려 넘어집니다. 통회기도를 바치는 것이 민망해집니다. 죄의식은 더 깊어 갑니다. 하지만, 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나면 다시 서광이 비칩니다. 적어도 하루는 잘 참았으니 내일도 가능하다는 희망이 보입니다.

이렇듯 좌절만이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좌절과 희망이 시소 타기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유혹으로부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면 밤늦도록 일할 생각 말고 일찍 잠을 청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컴퓨터의 플러그를 뽑아 놓는 것도 의지의 표현입니다. 즉,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다짐했던 것을 실천에 옮겨 보도록 합니다. 더불어, 관심사를 신앙, 사회정의, 예술, 운동 등으로 돌림으로써 '야한' 생각을 피해 봅니다. 묵주를 들고 산책을 나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기도하며 걷기를 하다 보면 머리 속이 고요해집니다. 그런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주일이 되고, 한 주일이 몇 달.... 이렇게 하여 좋은 습관을 들이게 되면 스스로도 대견해질 겁니다. 그러면 또 다른 유혹이 밀려들 수도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볼 일이지 벌써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하느님이 우리가 잘못하는 횟수를 세고 계시는 분으로 보일 겁니다. 그러나 제게는 하느님이, 설령 횟수를 세고 계셨다고 해도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어느 날 도와준다면, 바로 그 일로 인해 숫자 세던 일 자체를 잊어버리고 기뻐하실 분으로 보입니다. 이토록 선하신 하느님께 기도를 통해 드리는 다짐이 나의 의지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통해 지켜질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하시면 마음의 부담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비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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