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철

특정 상황이 현실을 압도해서, 다른 여타 중요한 사안들을 압도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예를 들어, 전쟁. 물론 전쟁이 일어나도, 사람들은 일상의 소소한 삶을 이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래에 대한 어떤 꿈을 꾸고, 나누고, 가꾸어 가기는 참으로 힘들어진다. 이른바 박근혜 게이트는 전쟁과 성격은 다르지만, 다른 여타 사안들을 압도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닮은꼴이다. 지난 10월 말부터 벌어진 ‘국정농단’이란 황당한 상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이제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현실의 추악한 실상이 드러났을 때, 우리 대부분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고, 분노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같은 염원과 같은 동기로,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같은 것을 요구하기 위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한겨울의 추위도 이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그 흐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현실이 계속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 규명과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제대로 되도록 끝까지 지켜보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이 현실은 소수의 ‘그들’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것은 결국 피해자에 해당하는 다수의 ‘우리들’의 암묵적인 동조와 묵인 하에,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것이다. 우리의 삶이, 우리 사회가 무언가 잘못된 쪽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느끼긴 했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 현실에 무감각, 무관심, 무기력하게 되었다. 체념하며, 자기 생존과 확장에 몰입한 채 살아온 지 이미 오래다. 그렇게 우리의 공동체는, 겉은 점점 더 멀쩡해졌는지 몰라도 속은 복마전이 되었고, 어두운 혼돈 속에서 썩어 나기 시작했다.

길거리로 쫓겨난 수많은 해고 노동자들, 애써 땀 흘려 키운 작물을 갈아엎을 수밖에 없는 농민들, 이들의호소와 분노의 눈물이 우리 현실의 상징이었지만, 정작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이 현실을 외면해 왔지 않는가. 적어도 나와 내 가족에게 현실로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의 어둡고 썩은 현실의 속살을 드러내 주었지만, 아직 현실은 그대로다. 지진으로 인한 핵발전소 사고를 소재로 한 판도라가 개봉되어 500만의 사람이 보았지만, 아직 현실은 그대로다.

▲ 학생들이 졸업을 기뻐하며 학사모를 위로 던지는 모습. (이미지 출처 = Pixabay)

어둡고 혼탁한 현실, 썩어 문드러진 현실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빛과 소금이다.(마태 5,13-15) 주위가 어둡고 혼탁할 때, 빛이 필요하다. 빛은 어둠과 혼돈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대상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자신을 유지해야만 한다. 대상과 섞여 버리는 순간, 빛은 더 이상 빛이 아니다. 음식을 보관하거나 맛을 낼 때, 소금이 필요하다. 소금은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고, 음식의 맛을 내 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대상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없애야만 한다. 대상과 떨어져 그대로 있는 한, 소금은 소금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공부’를 다시 생각한다. 왜 공부를 하는가? 왜 공부를 했는가? 무릇 공부는 삶에 뿌리를 내리고 삶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지혜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는 죽은 지식일 뿐이다. 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공부는 오늘의 현실에 변화를 가져오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어둡고 혼탁한 현실에 방향을 제시하고, 썩고 무미해진 현실이 더 이상 썩지 않게, 맛을 내 주어야 한다. 그렇게, 공부는 현실을 “정의와 공정과 정직”으로 이끌어야 한다.(잠언 1,3) 그렇지 못하면, 공부는 공허할 뿐이다. 한마디로, 굳어 버린 콘크리트 현실에 균열을, 틈을 내는 것, 그래서 새롭게 변화하도록 해 주는 것이 공부의 근원적 역할이다. 성서의 용어를 빌면, 바로 예언자의 소명이다.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하나의 현실이 아닌가. 우선 ‘나’라는 현실부터 살펴보고, 내가 내 현실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도록 마음을 모으고 가다듬자. 그렇게 내 삶을 추스르면, 내가 내 주위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된다.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의 힘이다. 한 사람의 힘이 세계를 울리고 변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그렇다. 기립박수는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함께 박수를 치지 않는다. 한 사람으로 시작하지만, 이내 전 공연장을 뜨겁게 달군다. 한 사람이 힘은 결코 보잘것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전심으로 행할 때, 내 힘은 주위에 반드시 파장을 일으킨다. 그렇게 번져 나간다. 이 물결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이제 학교를 떠나는 우리 젊은이들이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길 바란다. 세상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세상 깊이 투신하는 꼿꼿하고도 헌신적인 삶, 자기 자신부터 시작해 세상에 파장을 일으키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희망의 삶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신부, 서강대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