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되는 앎, 중세 정치존재론 - 1] 솔즈베리의 요한

오늘부터 '삶이 되는 앎, 중세 정치존재론'이 격주 금요일마다 연재됩니다. 교회와 국가 그리고 민중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고, 배후에 어떤 철학이 있었는지 다루어 오늘날 우리 삶의 다양한 권력 사이에서 정의를 궁리하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유대칠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 솔즈베리의 요한(1120?-1180)의 삶이 된 앎

철학은 삶이 되는 앎이다. 삶이 되지 않은 앎은 철학이 아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줄줄 암기한다고, 철학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철학사를 몇 권이나 탐독했다고 그를 철학자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냥 누군가 다른 유명한 사람의 철학을 잘 요약 정리해서 암기 혹은 이해하는 사람일 뿐이다. 우린 그런 사람을 철학자라 부르지 않으며, 그러한 공부 역시 엄밀하게 철학 공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진정한 철학은 무엇이고, 철학 공부는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을 위해 솔즈베리의 요한을 만나 보자.

솔즈베리의 요한은 성실한 학생이었다. 1136년경 당시 가장 대표적인 철학자인 아벨라르두스(1079-1142)에게서 철학을 익혔다. 이어 1137년 샤르트르로 가서 기욤 드 콩슈(1080?-1150?)에게 문법을 익히고, 리차드 드 쿠탕스(?-1181)에게서 수사학과 논리학 그리고 고전을 익힌다. 다시 파리로 돌아와 탁월한 논리학자이며 신학자인 길베르투스 포레타누스(1085-1154) 등에게서 신학을 익혔다. 참으로 훌륭한 선생들이다. 아벨라르두스는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철학자였다. 콩슈는 자연학, 천문학, 지리학, 의학 등을 다루는 네 권으로 구성된 "세상의 철학에 대하여"(De philosophia mundi)를 쓴 사람이며, 쿠탕스는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최신 철학을 소개하던 인물이다. 포레타누스 역시 대단한 학자다. 하지만 솔즈베리의 요한이 철학사 가운데 당당한 한 명의 철학자로 기록된 결정적 이유는 유명한 선생의 제자라서가 아니다.

▲ 솔즈베리의 요한. (이미지 출처 = michaelfaletra.weebly.com)
분명 그는 유행하던 이론 철학을 제대로 배웠다. 실재론과 유명론에 대해 고민했고, 특히 논리학에 있어서는 제대로 배우고 치열하게 연구했다. 이러한 그의 결실은 "메타로기온"(Metalogicon)이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학문의 합리성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 문법학과 논리학이 필수라 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통한 논리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선생들이 하나같이 대표적인 논리학자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단지 누군가의 제자로 만족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책 속에서 논리학을 익히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논리학으로 현실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논리적으로 풀기 시작했다. 즉, 철학을 수동적으로 공부하는 이에서 철학을 능동적으로 생산하는 이가 된 셈이다.

솔즈베리의 요한은 자신의 논리학으로 사회 부정의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고민으로 얻은 대안을 논리적으로 풀이했다. 단순히 앎으로 그치는 논리학이 아닌 삶이 되는 앎의 수단으로 논리학이 생명력을 가진 순간이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당신이 민중을 괴롭히는 일을 막아서지 않을 때, 당신도 결국 부정한 이들의 종일 뿐입니다.”

그는 "국가 관료론"(Polocraticus)에서 ‘정의’란 사회적이라 외친다. 정의롭지 못한 것이란 민중을 괴롭히는 사악함 앞에서 방관하는 것도 포함된다. 공공선을 파괴하는 행위 앞에서 침묵하는 것도 그는 부정의라고 한다. 능동적으로 악을 행하며 민중을 괴롭히는 것은 당연히 악이지만, 악이 존재하는 곳에서 막아서지 않는 것도 악이란 말이다. 그는 이러한 정의는 인간의 건강한 신체에 비유하였다. 팔이 썩어가고 있음에도 심장만 건강하다면, 그것을 건강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의 건강을 위해선 각자의 신체 기관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몫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때 건강이라는 한 신체의 공공선이 가능하다. 사회의 건강은 정의다. 정의는 공공선의 구현으로 이루어진다. 참된 정의는 대통령이나 정치인 그리고 노동자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선을 구현함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공공선의 구현 공간이 될 때 찾아온다. 이것이 솔즈베리의 요한의 정의에 대한 주장이다. 매우 논리적이다. 이해가 편하다.

당시 그가 살던 영국의 왕 헨리 2세(재위 1152-1189)의 폭정은 대단했다. 당시 영국의 왕들은 민중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세금을 올렸다. 심지어 헨리 2세는 자신의 뜻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캔터베리의 주교 토마스 베켓을 암살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의 윤리란 포악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었다. 분노하는 것이었다. 왕의 뜻에 고개 숙이고, 포악한 독재가 허락된 권세 속에서 웃는 것이 아니었다. 이때 민중과 그리스도교의 분노를 글로 집약하고, 사회 정의에 대해 논리적으로 분노하며 외친 이가 바로 솔즈베리의 요한이다. 그의 분노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가 익힌 논리학과 수사학 그리고 존재론은 그의 분노에 녹아들어 있었다. 논리학과 존재론은 이렇게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으로 얻은 자기 앎을 전달하는 탁월한 수단이 되었다.

▲ 1215년 영국에서 발표한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은 역사적으로 볼 때 최초의 인권 선언이다.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국가 관료론"이란 정치철학책으로 그는 한 사람의 철학자가 된다. 대단한 선생의 제자, 뛰어난 논리학자로의 명성보다 정말 그를 철학자로 만들어 준 책이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으로 앎, 그 시대 민중의 삶이 된 앎, 그 앎이 담긴 "국가 관료론"이다. 그 책은 이후 왕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 즉 '대헌장'의 정신으로 이어진다. 시대의 고민을 담아 함께 분노한 철학자의 철학이 역사적 한순간의 거름이 된 것이다.

철학과 철학함은, 좋은 선생의 철학을 암기하고 정리하는 것도 아니다. 솔즈베리의 요한과 같이 자기 삶의 공간에서 삶이 되는 앎을 향한 궁리, 바로 그것이 철학이고 철학함의 시작이다. 지금 2017년 대한민국이란 현실에서 우리의 철학은 무엇일까? 지금 이 난국에서 사회적 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우리의 삶이 되는 앎, 바로 그 앎에 대한 궁리해서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솔즈베리의 요한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유대칠(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논문과 책을 적었다.
혼자만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한 공부보다 공유를 위한 공부를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작은 고전 세미나와 연구 그리고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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