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성당 합창단 사건으로 본 교회 인권 현주소

서울 한 성당 합창단 지휘자의 성희롱, 인종차별성 발언을 지적하고, 재발방지책을 요구한 단원이 결국 합창단에서 탈단한 일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교회의 전례를 담당하는 합창단 지휘자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시작된 일로 문제를 제기한 단원은 결과적으로 탈퇴를 선택했으며, 보도된 사건을 바라본 많은 이들이 교회 내 구성원들의 인권의식과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 지적했다.

인권침해성 발언에 대한 주의 요청에 “할 말 없어요”

합창단원이었던 A 씨는 지난해 10월 24일 지휘자가 단원들 앞에서 인권침해성 발언을 한 것이 교회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적절치 않은 것이었다며, 지휘자에게 “주의하겠다는 약속을 해 달라”고 이메일로 요청했다.

지휘자 B 씨는 당시 연습 도중 단원들 앞에서 “예쁜 소리를 내려면 평소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은 술집에 나가는 여자들이 말투도 예쁘고 훨씬 고상한 것 같다. 반대로 술집 밖에 돌아다니는 일반 여성들은 훨씬 술집 여성 같다”고 말했다.

다른 단원들과 이 발언을 들은 A 씨는 10월 30일 B 씨에게 이 메일을 보내 “합창단은 신앙공동체이며, 신앙 활동의 일부인 공적 시간에 술집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편견이나 접대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윤리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의견을 밝히고, “외람되지만, 이 의견을 용납한다면 향후 이런 말을 주의하겠다고 연습시간 중 한 번 언급해 주기를 정중히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지휘자는 이 메일에 대해 11월 4일 “할 말 없어요”라고 답변을 보내왔다. 이에 A 씨는 지휘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을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11월 7일부터 11일에 걸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고 합창단 지도신부와 교구청에 “교회의 규범과 정식 절차에 따라 온당하게 처리해 달라”고 보고했다.

지도신부는 보고를 받은 뒤, A 씨와 면담을 갖고 지휘자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하는 한편, A 씨에게도 절차 문제를 지적했다. 단장과 지도신부에게 먼저 하는 것이 순서인데, 이를 어기고 지도신부와 교구청에 동시 보고하고 인권위원회 진정한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A 씨에 따르면 인권위 진정과 상부 보고가 이뤄진 뒤,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이렇게 사과했다.

“제 나름대로는 조심한다고 하겠지만 이 성격이 그렇게 될지는 솔직히 장담을 못하겠어요.... (앞으로도 그런 말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막 열심히 하다 보면 뭐 그렇게 된다는 거죠. 우리는 사제의 교회잖아요. 회중 교회도 아니고. 사제의 권고를 받아들여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심각한 일 아니니까 여러분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11월 19일 지휘자 사과 내용 일부)

사과와 면담 등으로 일단락된 듯한 상황은 11월 20일 인권위 진정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바뀌었다. 합창단 내부에서는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밖으로 알렸다”는 불편한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 A 씨에게 “이런 분위기에서 계속 활동하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며 휴단 권고를 했다. A 씨는 처음에 이를 거절했지만, 12월 2일 결국 합창단에 계속 남는 길을 선택하면서 인권위 진정을 취하하고 휴단 권고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 제보자 A 씨는 "전례를 담당하는 합창단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 그런 지휘자는 남아서 성탄미사 지휘를 했다는 것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 funzine. 본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기사화되자 문제를 밖으로 알렸다며, 휴단 요구.... 2차 가해

A 씨는 당시 휴단 결정에 대해 내부적 갈등을 일으킨 사람으로 바라보는 분위기, 특히 신앙공동체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인권위 진정을 취하해 달라는 요청도 여러 번 있었고, 지휘자에게 기회를 주라는 권유도 있었다”며, “인권위 조사 뒤 조치를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내부적으로 성희롱 예방 매뉴얼을 만들자는 제안이 있어서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러나 A 씨가 휴단 결정을 받아들이고 휴단 뒤 복단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갈등이 불거졌다. 규정 외 상황이었지만 합창단 측에서 제안했으므로 복단을 보장해 달라고 했지만, 합창단 측은 “오디션을 다시 보고 들어오라”고 했다. A 씨는 재오디션 요구는 사실상 복단 거부라고 받아들이고 휴단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바꿨다.

A 씨가 휴단 결정을 번복하자, 지도 신부는 12월 10일 면담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지도신부와 단장, A 씨는 먼저 복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2017년 11월로 시기를 조정했다. 이후 지휘자에 대한 조치 여부와 재발방지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결국 A 씨는 그 자리에서 탈단을 결정했다.

A 씨는 면담 당시 자신이 결과적으로 합창단을 떠나 있게 됐지만, 지휘자는 계속 남아 있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지휘자에 대한 조치와 재발방지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신부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모두가 납득할 공정한 판단을 할 것이라는 기대였다”며, “문제 제기에 대해 진상조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상조사 과정이나 결과를 알고 싶다”고 요청했다.

지도신부는 이에 대해 “(A 씨의)입장과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충분히 납득한다. 지휘자에 대한 조치와 재발방지를 위한 주의를 주겠다”고 말하고, “해결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순명이라는 바탕에서 교회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지, 사회적 방식으로 할 수 없다. 공동체적으로 성찰을 하면서 그 안에서 잘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이 가장 좋은 것 아닌가”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A 씨가 “교회적이고 공동체적인 해결방안이 무엇이냐.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보다 확실한 대답을 요구했다. 지도신부는 처음에 교회의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했고,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는데도 무엇을 확인하고자 하느냐며,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도신부를) 믿고 따르지 않으려면 나가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 올 지도신부에게) 인수인계를 다시 하겠다. 상처 주려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사제적 양심을 걸고 다음 신부에게 복단할 때 잘 보라고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A 씨는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합창단에 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 자리에서 탈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교회 구성원의 인권의식 수준은 충분한가
“교회다운 해결방법”은 어떻게 성숙한 제도가 될 수 있을까

이 사건을 통해 짚어 볼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교회 구성원들의 인권의식 그리고 문제가 드러났을 때, 교회가 해결방법을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인권의식과 관련해 먼저 지휘자의 발언은, 사회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적합지 않았다. 성희롱 이전에 인간 존엄을 중시하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발언인데도 지휘자는 “심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문제의식이 없었다. 또 문제가 인권위나 언론 보도를 통해 외부에 알려졌다는 이유로 단장을 비롯한 일부 단원들이 제보자를 지적하고 휴단을 요구한 것은 ‘2차 가해’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교회 단체 리더의 부적절한 언행이 문제의 본질인데도 결과적으로는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합창단의 명예가 떨어졌다는 것과 문제제기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대체로 교회 내 단체, 조직을 담당하는 사제나 수도자가 대체로 전적인 권한을 갖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능력이 충분한가, 또는 “교회적이고 공동체적” 방법이 항상 민주적이고 합당하게 이뤄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 교회는 인간 존엄을 중시하고 가르친다. "간추린 사회교리", '인간과 인권'. ⓒ정현진 기자

“교회의 인권의식은 세상의 수준을 앞서야 한다”

사목자로서 이번 사건을 바라본 교구 사제들의 입장은 어떨까. 의견을 밝힌 사제들은 대체로 교회 내 인권의식이 오히려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특히 특권의식으로 인해 사제들의 변화가 훨씬 느리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러나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교구에서 지난해부터 가톨릭인권교육센터를 운영하고 교회 내 인권교육 강사를 양성하는 김윤석 신부는, “교회 내 인권교육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교육 프로그램과 강사 양성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교회는 물론 일반 사회적으로도 아직 인권의식이 충분한 상태는 아니며, 유교와 가부장적 가치에 젖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급속도로 향상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오래된 교회 전통과 구조 속에서 양성된 사제들의 권위의식도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힘들다. 직간접 방법으로 장시간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이런 사건이 불거지게 된 것을 다소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인권위 진정은 잘못됐다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호소할 곳이 필요했던 것”이라며, “오히려 이런 사건들이 드러나면서 교회 내 구성원들이 각성하고,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관리자의 재량과 의식 성숙 필요

서울대교구 한 신부는 교회 내 단체에서 일어난 성희롱이나 인권침해 사건을 위한 상담 창구나 제도,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제도 마련으로 해결될 것인가는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부분 자유롭게 참여하는 교회 내 단체는 직장이나 다른 사회단체처럼 규정을 정하더라도 강제성이 훨씬 약할 수밖에 없고, 사안이 다양해 규정이 있더라도 일괄 적용을 하기 어려운 한계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관리자나 담당자의 재량, 의식을 성숙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결국 답은 이들을 양성하는 교육 내용과 과정의 변화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문제해결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서도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 마치 내부고발자로 규정되고 상처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또한 현실적으로 교회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거룩하고 순수한 이들이 아니라는 것, 모두 부족한 이들이고 그런 이들이 모여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지혜를 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제보자 A 씨는 "전례를 담당하는 합창단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 그런 지휘자는 남아서 성탄미사 지휘를 했다는 것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 pixabay. 본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제의 특권의식과 인권은 충돌할 수밖에 없어
문제의 민주적 해결은 사제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요구해야

서울대교구 나승구 신부는 교회 구조상 갖는 여러 한계가 만들어 낸 문제라고 봤다. 그는 “지도신부의 입장에서는 잡음이 불거지지 않도록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라며, “이런 문제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교회 내에서 인권을 고민하고 연구하며,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 교회 내 인권 교육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1년에 한 번, 교회 안팎의 전문가를 통해 각 사목국 직원과 사제들은 성희롱 예방교육 등을 의무로 받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교육이 이뤄지기는 힘들다는 평가다.

나 신부는 “사제들의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유 중 하나는 사제 양성단계부터 특권의식이 주어지는 것인데, 인권과 특권의식은 상충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제 간 위계 속에서도 인권침해 문제는 심각하다면서, “그런 일을 겪으면 인권 의식이 더욱 예민해지고 높아져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악습은 되물림되고 반복된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그는 “교회가 세상만큼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사실 교회는 인권의식에서만큼은 세상보다 앞서야 한다. 인권을 무시하는 체제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뜻이 버틸 수 있나. 교회는 인간의 존엄이 모든 원칙에서 우선한다고 가르친다”고 강조했다.

나 신부는 “교회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나 구조를 만들어서 뭐하나”라는 회의적 생각을 거두고 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당장 빛을 보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성장시킴으로써 교회 전체의 성장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교회 내 문제의 민주적 해결, 소통의 문제에 대해서도, 사제들만 변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서, “교회 모든 구성원이 공동체 안에서 통렬하게 성찰해야 한다. 이 시대는 문제를 감출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문제는 온전히 드러낼 때 해결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사를 보완합니다.>

기사 작성 당시까지 지휘자에 대한 징계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으나, 기사 게재 뒤 지휘자에게 근신처분과 4월 이후 업무 내용 재평가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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