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유미]

12월 9일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박유미 씨, 유경근 씨, 한만삼 신부에게 청해 의견을 들었습니다.

-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픈 2017년 (유경근)
- 기득권을 탄핵하라! (한만삼 신부)
- "네가 살고자 한다면 이것을 들어라" (박유미)

“네가 살고자 한다면, 이것을 들어라.”

12세기, 당대 최고의 절대권력이라 할 바바롯사, 프리드리히 1세 황제에게 보낸 베네딕도 수녀원장 힐데가르트의 경고편지 구절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정의의) 칼이 너를 꿰뚫어 버리리라!”로 마무리된다.

“오 왕이여. 조심스럽게 잘 살피시오. 모든 나라들이 그들 죄악의 암흑으로 정의를 지우고 있는 많은 이들의 덩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강도와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이 주님의 길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오 그대 왕이여, 왕으로서 칭송이 자자한 명성을 지니셨으니, 자비의 왕홀로 타성에 젖어 게으르고 부산하고 거친 생활습관들을 몰아내십시오. 잘 살펴보십시오. 최고의 심판자가 그대를 바라보실 때 고발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대의 왕직을 잘못 이해하고 얼굴 붉히지 않도록 잘 살피십시오. 공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런 것들을 멀리하십시오.”

첫 만남 이후 몇 년에 걸쳐 정치, 목적 의식이 분명하고 전략적인 그의 정치를 살펴보며 당시 칭송이 자자했던 그에게 칭찬과 함께 충고를 보냈지만 고쳐지지 않은 때문이다.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 회칙 선포에 이어서, 신앙의 완성으로 이끄는 구체적인 실천인 자비의 영적, 육체적 활동을 새로이 발견하도록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희년'을 마무리하는 때,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에 걸맞는 행동을 이어서 펼쳐 가야 한다는 교황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그때에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 의혹에 연결해서 소위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결국 올 것이 온 것이지만.... 점입가경! 밝혀질수록 상상을 넘어서는 내용들이 펼쳐졌다. 하나가 밝혀지면 그에 맞춰서 해명하고 담화를 하면서 덮으려 하는 것이 오히려 거짓을 드러내 보이게 되고, 분노의 촛불이 확산되며 퇴진, 즉각퇴진을 요구하는 함성으로, 국정농단과 연결된 비리구조 개혁, 새누리당 해체와 재벌 구속수사 요구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덮으려 하면 할수록 드러나는 형국이다. ‘이게 나라냐?”로 압축되듯이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시작해서 정윤회 사건, 해외순방에서의 추문사건 대응과 결정과정에서 보여 준 감추기, 세월호참사 대응, 지진 대응, 폭우폭서 대응과 같은 안이하고 무능한 국민안전 대응,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에도 국가 폭력에 의한 농민의 죽음에도 책임자 처벌도 대응정책도 없었던 이유 등 그동안 쌓여 왔던 의문의 배경이 뚜렷해졌다.

▲ 박근혜 퇴진 집회에 시민들이 광화문과 시청 광장을 가득 채웠다. ⓒ왕기리 기자

필요한 때마다 안보를 내세우지만 정작 국민안전을 챙길 시스템이 작동도 할 수 없었던 정부. 그리고 국정농단에 이어진 비리사건들로 보여지듯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결정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의 살림보다 재벌과 몇몇 소수인의 부를 위한 정책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국정책임자들, 위안부 합의, ‘한일 정보협약’ 체결, 일방적인 ‘사드’ 배치 결정 등에서 보여지듯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존엄성을 스스로 방기하는 외교, 국방정책들.... 교육시설 주변에 공기업이 대형 화상경마 도박장을 세우고,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 주는 국정교과서를 강행하고 특권을 행사하는 교육행정, 환경과 지역주민의 삶을 파괴하는 케이블카 설치, 핵발전소 건설, 송전탑 건설.... 돈과 권력을 위한 밀실협약과 같은 규제철폐.... 심지어 대통령 본인의 안전과 관련된 청와대 경호시스템까지도 절차를 거쳐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던 나라. 대통령의 임무와 책임이 필요한 때에는 부모를 총탄에 잃은 불우한 삶과 여성임을 내세우고 인간적인 공감과 연민이 필요한 때에는 국가의 안보를 내세우는 궤변 논리가 국민들에게 상식적으로 통하리라고 생각하는 집단이 통치하는 나라. 70퍼센트 이상의 국민이 즉각 퇴진을 요구해도 시간과 돈과 건강, 국민의 희생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목적을 채우려 하는 지배집단을 본다. 탄핵은 시작일 뿐,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이루도록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은 아직도 험한 듯하다.

이 시간들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들을 생각하고 '자비의 특별희년'의 의미를 더더욱 떠올리게 되는 것은 법적 규제나 엄격함에 앞서, 세상에 믿을 교리를 선포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치는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 그것을 “세상 안에서, 구체적인 만남들 안에서 실천”하는 것, 바로 가장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공감하고 연대하는 자비의 실천이라는 것을 이렇게나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다양한 삶의 방식과 정체성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거나 의견을 듣는 절차가 없이(보조성) 돈과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구조에서 나타나는 폭력성에 맞서 싸우는 것이 진정한 자비의 실천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 시간들에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중세의 힐데가르트 성녀도 자비의 활동으로서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용기 있는 충고를 이렇게 보여 주었다. “타성에 젖어 게으르고, 부산하고 거친 생활을 몰아내십시오!”

답답한 상황들에 ‘평화로운’에 족쇄가 채워진 촛불’을 불평하는 분들도 있지만, 자비의 희년을 마치면서도 “공간보다 시간이 우선”한다는 것을 또 한번 강조하신 교황님의 말씀처럼, 여기저기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의견들이 나타나는 난장과 같은 광장의 모습처럼, 같은 방향을 향해도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나누고 설득하고 합의하는 절차를 확립해 간다면, 그리고 우리 각자가, 우리 교회가 구체적인 삶의 모습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결정해 가도록 늘 깨어 있다면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증거하게 되리라 믿고 희망한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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