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한만삼]

12월 9일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박유미 씨, 유경근 씨, 한만삼 신부께 청해 의견을 들었습니다.

-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픈 2017년 (유경근)
- 기득권을 탄핵하라! (한만삼 신부)
- "네가 살고자 한다면 이것을 들어라" (박유미)

기득권을 탄핵하라!
어느 누구도 너에게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마르 11,14)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 바빌론이!
자기의 난잡한 불륜의 술을 모든 민족들에게 마시게 한 바빌론이!”(묵시 14,8)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에도,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미친 듯이 울부짖었던 세월호 참사에도,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쇠사슬로 온몸을 묶었던 밀양 할머니들의 절규에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 굴뚝과 전광판에 올랐던 노동자들의 외침에도, 어처구니없었던 사드 배치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콘크리트 지지율, 박근혜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지지할 것 같았던 시대의 지지율이 한순간에 곤두박질쳤다. 백남기 어르신을 부검하겠다며 달려들던 경찰들을 시민들이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며 온몸으로 막아서고 ‘의혹’일 뿐이라며 강변하던 최순실의 권력농단의 증거가 한순간에 전 국민에게 밝혀지자 그동안 참아왔던 국민들의 분노는 활화산처럼, 핵폭탄처럼 폭발했다. 시민들의 함성은 촛불 구름의 천둥처럼 울렸고, 퇴진의 촛불 파도는 쓰나미처럼 광화문으로 밀려들었다. 그리고 12월 9일, 자신은 선의만 있을 뿐 최순실의 잘못을 몰랐을 뿐이라는 기가 막힌 변명으로 퇴진을 거부한 그녀에게 분노한 국민들로부터 포위당한 국회는 박근혜의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그러나 ‘실망과 분노의 감정’만으로 박근혜를 탄핵하고 한 사람을 잘못 뽑았을 뿐이니 그 사람만 바꾸면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세상이 저절로 올 수 있을까?

탄핵 정국에 우리가 명확히 보아야 할 것은 박근혜는 ‘나쁜 열매’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쁜 열매 하나를 따버렸다고 승리감에 도취되거나, 그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일 뿐이다. 박근혜는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였고, 기득권 보수부패 언론이 최태민과 박정희의 악행을 호도하는 막강한 지원을 받았으며, 영애 시절부터 나쁜 방법으로 대기업의 후원을 받았었다. 우리는 이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태 7,18)는 진리를 새겨들어야 한다. 시민을 수탈하는 거대한 ‘약탈집단’이 되어 버린 정부와 대기업의 농단, 부패 기득권 세력들이 ‘개, 돼지들’로 여기는 하층민들의 간접세로 자신의 배를 채우며 간첩을 때려잡는 공안 통치로 나라를 지배했던 ‘기득권 동맹’에 균열이 감으로써 그 추한 작태가 드러났는데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뻔뻔스러움이 이 시대 지도자들의 얼굴이던가? 국민들이 꺼내 든 촛불은 탄핵이라는 깨어난 양심의 ‘도끼’였다. 그 도끼로 썩어버린 까치밥을 떨어뜨리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쁜 나무의 허리를 자르고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과오는 정화될 수 없는 썩은 물이요, 나라를 갈라지게 만드는 바오밥 나무뿌리였다.

▲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모습. (이미지 출처 = 새누리당 홈페이지)

조선시대는 기득권 층인 소수의 양반을 위해 모든 백성이 불평등의 차별과 보람 없는 과도한 노동을 인내하며 그들을 떠받들며 살아야 하는 ‘사회 구조’였다. 부의 근원인 토지를 소유한 기득권을 위해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천한 백성은 결코 ‘존엄한 인간’이 될 수 없었다. 봉건적 불평등 구조를 개혁하려 하거나,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거나, 부정부패를 척결하라고 소리 높이는 백성은 잔인한 보복을 당하거나 심지어 일본 군대의 총칼에 학살당했다. 정조 사후(1800)의 19세기를 독재 정치인 세도정치로 일관한 노론 기득권은 자신들의 ‘농단 정치’의 수호를 위해 근대적 개혁과 개화를 꿈꾸는 진보세력을 '위정척사'(衛正斥邪)의 프레임으로 학살했다. 해방과 평등의 가치를 꿈꾸고 실천한 천주교 신자들을 매국의 명분으로 짓밟고 침공해 오는 서양의 약탈 제국주의에 결사항쟁으로 맞서라며 등을 떠밀고는, 자신들은 일제로부터 은사금과 작위를 얻기 위해 국가의 외교권과 주권마저 팔아버렸다. 기득권들의 배신에 치를 떨어야 했던 비운의 백성들은 자신의 아들딸들을 천황폐하를 위한 위안부와 징병에 빼앗기고 제국의 전쟁을 위한 노동자로 끌려갔다. 그러나 이제 촛불을 들고 깨어난 이 세대는 새롭게 일어섰다.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 맺는 비극의 역사를 탄핵하자. 비열했던 기득권의 치부인 역사를 왜곡함으로써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술책에 단호히 맞서고 저항하자! 미군정에 협력한 반민족 세력의 나쁜 뿌리에서 돋아난 나무에서 군부독재의 나쁜 열매를 끊임없이 맺자 열매만 제거하면 좋은 나무가 될 줄 알았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4.19 혁명이 그랬고, 6월 민주화항쟁이 그러했다. 뿌리와 나무를 치지 못했던 미완의 혁명은 ‘구조의 악’을 그대로 둔 채 대통령 한 사람만 바꾸고 개혁을 마무리함으로써 또 다시 기득권으로부터 배신당했다.

박근혜를 탄핵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위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새누리당과 그들의 음모에 협력한 모든 기득권 세력을 함께 탄핵하는 ‘혁명’이 되어야 한다. 그때까지 촛불은 꺼져서도 안 되고 꺼질 수도 없다. 정의의 하느님께서는 사악한 바빌론을 쓰러뜨렸듯이 악인들의 길을 멸망으로 이끄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님께서 물대포에 쓰러지고 결국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셨지만, 이 땅에 참된 밀알이 되고 불씨가 되어 시민들의 양심을 되살리셨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기득권을 꾸짖는 분노에 찬 하느님의 음성을 양심을 통해 들어야 한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형제 임마누엘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기 4,10)

 
한만삼 신부(하느님의 요한)
수원교구 광교1동 성당 주임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수원교구 대표
사제단 교육위원회 위원장
수원가톨릭대학교 사회교리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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