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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문열은 광장으로 오라[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황경훈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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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06  1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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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소설가 이문열은 오랫동안 한국 보수의 대변자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글로 표현하고, 행동해 왔다. ‘촛불’에 대해서도 감정이 많아 보인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시위의 하나로 벌어진 촛불 집회에 대해 “불장난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불에 데게 된다. 너무 촛불 장난을 오래 하는 것 같다”면서, “이제 촛불 집회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인 의병운동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여기에 비하면 이번에 쓴 칼럼은 점잖아 보이기까지 한다. 이문열은 스스로 '정치과잉'의 시대라고 진단한 1980년대를 지나 쉼 없이 '시대와의 불화'를 겪어 왔다. 2000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시민단체를 당시 정권의 홍위병에 비유하며 “홍위병들이 각 분야의 권력 핵심에 들어가 재미를 보다가 이제 내놓게 되니까 각 분야에서 저항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가, 분노한 독자들과 문인들이 그의 책을 태우는 '책 장례식(화형식)'을 당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문인으로서 욕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괘념치 않았다. 오늘의 칼럼이 그것을 보란 듯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정치적 발언과 그에 따른 논란뿐만 아니라 문단 안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좌충우돌 부딪치고 깨지면서 한 세대 넘게 나라를 온통 빨간색으로 얼룩지게 했다.

문단 안팎의 여성들에게도 그의 남근-중심적 독설은 여지없이 날아들었다. 소설 "선택"에서는 조선시대의 캐릭터를 빌려 와 현대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벽 뚫고 퓨처’적인 전략을 쓰면서 과감하게도 이 책 첫 쪽에 이렇게 썼다. “그들은 이혼의 경력을 무슨 훈장처럼 가슴에 걸고 남성들의 위선과 이기와 폭력성과 권위주의를 폭로하고 그들과 싸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이혼은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자못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친다.” 이에 대해 소설가 공지영을 비롯한 페미니스트들은 즉각 반발했고 1997년 이문열을 여성단체연합이 선정한 '여성 권익의 걸림돌'로 뽑기까지 했다. 소설가 마광수와의 논쟁도 생각난다. 마광수가 1990년 1월에 언론에 발표한 글에서 이문열의 상업적 성공의 근본적 원인을 “대한민국 독자들의 교양주의 선호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비판하자 이문열은 ‘마광수의 작품을 구역질을 동반한다, 보잘것없다’며 신랄하게 맞받아쳤다. ‘교양주의 선호’란 한마디로 한국 사람들의 졸부 근성을 꼬집은 말로, 좀 살 만하니 어려운 말을 써 가며 유식하게 보이게끔 해 주는 ‘아는 척하는 소설’이 잘 팔린다는 것이다. 내용도 사 줄 만한 게 없는 "레테의 연가"를 아는 척하기 위해 사전 찾아가며 읽었던 기억이 있으니, 마광수가 옳지 않을까.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이문열이 자신의 생각이 시대와는 다르다면서 민심을 거스르고 시대를 욕하며 부단히 매카시즘의 전사를 자처하기 시작했을 때가. 이제 그가 다시 입을 열어 ‘시대와의 불화’를 겪고 있다며 백만의 촛불을 보면서 보수는 뼈를 깎는 각오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어르고 있다. 이문열의 작품도 이런 그의 생각과 그것의 양식인 삶과 무척 닮아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을 빼놓고 대개는 ‘빨갱이에 대한 증오’를 현란한 수사와 기교로 다듬었을 뿐 그 이념적 편향의 스펙트럼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모질게 마음먹게 하고 그것 때문에 가슴이 해지도록 집요하게 밀어붙이며, 거기서 생산되는 증오를 공기처럼 숨 쉬어 온 것일까. 복잡하게 윤색된 그의 삶과 사상은, 그러나 누구나가 그렇듯 단순한 가정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작가 이문열. (이미지 출처 = 소중한TV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이문열은 어렸을 때 아주 혹독한 가난을 겪는다. 한국전쟁 당시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가 홀로 월북하자 어머니의 슬하에서 5남매가 경상북도 영양군 등지를 떠돌며 어렵게 생활하였고, 연좌제 등의 이유로 사법시험에 실패하는 쓰디쓴 경험이 이어진다. 이러한 기억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큼이나 가슴에 사무친 것이었다. 10년 전쯤에 한 일간지와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아버지 살해’는 20대에 끝이나 독립했다고 했지만, 아버지의 그림자는 소설 "사람의 아들" 이래로 지금까지도 그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좋은 가문, 일본 유학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월북했으면 북한에서 떵떵거리며 살아야 하는데 결국 함북 종성에 있는 협동농장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문열은 몹시 분노했다고 한다. 30대에 이 사실을 안 그는 “그 사실로 원시적인 의미에서 북한을 용서할 수 없는 집단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아버지에 대한 동물적인 감정은 오래 간다고 인정했다. 그의 모든 면면을 이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심리학적 이론으로 환원해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그에게서 아버지는 ‘빨갱이 증오’를 갖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 감정이 오래간다고 해도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아버지와 이별을 하지 못하고 그는 영영 아이로 남아 있다는 말인가. 문학의 힘이 반성에서 나오고 문인은 그 반성을 양식 삼아서 고통과 불행에 처한 이들에게 캄캄한 밤의 유성처럼 짧지만 강렬한 한 줄기 빛을 나눠 주는 존재라면, 그의 그 미움과 증오는 벌써 사라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몇십 년 동안 이문열은 문인으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누굴 탓하며 원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뭣이 중한지를 아는 듯하다. 문학관에 대한 자신의 말처럼 “문학은.... 사람의 안목과 인식으로 번역되지 않고는 어떤 세계도 드러낼 수 없듯,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 없이는 어떤 문학도 우리를 감동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핏줄과 맥박이 힘차게 뛰는 일상의 현장에서 사람과 만날 때 생긴다. 그리하여 좌와 우의 이념조차도 무화하는 영묘한 힘을 지닌 일상의 세계로, 거추장스러운 이념과 편견의 껍데기는 잠시 벗어 두고 광장으로 가서 사람들과 함께 촛불을 들라. 그곳은 미움과 증오 중에서도 문득문득 그리움으로 만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고향이며, 마음속에서 저버렸던 가난한 사람들과 해후하면서 비로소 그 사랑과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된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광장으로 오라. 걱정하고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지 않는가.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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