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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짜 ‘파더’는 그가 아닌가[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황경훈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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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03  10: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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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피에르는 자신이 80살이 되어서도 어떤 열정으로 무엇을 주장하거나 개혁하는 등의 ‘피곤한’ 일을 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1996년까지는 말이다. 장피에르가 60살이 되던 그 해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대교구장이 아동성추행 문제로 교구장직에서 물러나게 된 이듬해로서, ‘국제가톨릭운동 우리가 교회’가 로마에서 창립된 해다. 그러니 '우리가 교회'는 태동 자체가 교회쇄신과 개혁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고 장피에르도 친구인 프랑수아와 함께 프랑스 지부를 만들고 교회개혁 운동에 힘써 왔다. 시작이 그러하니 자연스럽게 유럽이 중심이 되었고 북미, 남미, 호주, 아프리카까지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지만, 아직 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이 운동에 함께하고 있지 않다.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또 어찌 보면 필연을 내장한 우연이기도 한 바, 그런 점에서 ‘신앙의 신비’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장피에르와 그보다도 몇 살 더 많은 친구인 프랑수아는 아시아 교회와 연대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들은 이를 실천에 옮겨 2013-16년 우리신학연구소에서 개최한 연례 ‘아시아청년아카데미/아시아신학포럼’에 참가자를 파견했다. 장피에르는 올해 8월 타이에서 열린 행사에 '우리가 교회' 대표로 직접 참가해 우리가 교회운동을 소개하고 국제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20-30대 청년들이고 교회 안팎의 엔지오 활동가들이어서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장피에르는 열정적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고발, 또 그만큼의 열정으로 투신하고 있는 아시아 젊은이들이 교회쇄신이나 교회개혁과 관련해서는 모두가 자신의 일이 아닌 듯이 관심이 없거나 무지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는 무척 놀라워했다. “내가 만난 아시아 청년들은 심지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 등에서 제시하는 사회적 가르침의 내용도 모르고 있다. 그러니 이를 교회쇄신이나 교회개혁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 보이는데, 도대체 왜 그런 것인가?” 장피에르가 물었다.

   
▲ 장피에르가 2016 아시아청년아카데미-아시아신학포럼에서 발표하는 모습. ⓒ황경훈

그것은 마치 ‘왜 유럽 교회는 교회쇄신의 과제 가운데 여성사제 문제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가’하는, 아시아인들이 갖고 있을 법한 질문과 비슷한 것 같았다. 딱히 모른다고 말하기에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또 막상 안다고 얘기하고 말하려면 정확히 모르는, 그런 애매한 종류의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통계로 말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이런 문제에는 통계화된 자료도 없거니와 또 그렇게 말한다 한들 실감나게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평소에 혐의를 두고 있던, 압도적인 타 종교의 막대한 영향 아래 살아야 하는 아시아 그리스도교인의 처지를 가장 우선적인 요인으로 들어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교회란 늘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지 감히 비판의 대상으로 생각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고 말이다. 거기에 공동체주의나 가족주의, 권위주의를 비롯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가부장주의가 더해져 ‘미워도 다시 한번’의 온정주의가 그런 비판적 사유를 교회 안에서는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건 단지 아시아 교회 평신도의 현상만이 아니라 성직자들에게서도 빈번하게 발견된다. 이를테면 20년도 더 아래인 풋내기 사제가 자신을 ‘파더’라고 소개할 때 드는 맹랑함과 당혹감이 교차된 감정을 느끼는 상태와 비슷하다고나 할까.(마땅한 다른 호칭으로 소개하기 마땅치 않은 것도 이해한다) 마치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가득한 설날 성당 미사 강론에서 사제가 “신부님은 사제관에 있으니까 미사 끝나고 신부님에게 세배하러 오세요~”라고 말할 때 좀 깐깐한(?) 노인들이 갖게 되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요즈음도 아시아에서 행사를 할 때 이런 일을 당하면 ‘잘하면 아들뻘 되는 사제에게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친해지면 주교도 ‘너’라고 부르는 서양인들이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가 쉬운 면도 있는 것 같다.(이 대목에서 ‘불경’ 또는 ‘불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성직자는 성직중심주의를,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평신도는 그것의 내면화 단계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어디 ‘삼팔선이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겠는가!)

   
▲ 장피에르 집에 모인 '우리가 교회' 친구들. ⓒ황경훈

어쨌든 손주까지 주렁주렁 둔 진짜 파더인 장피에르는 그렇게 쉽고도 생생하게 말해 주었건만 잘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이해는 했는데 ‘그런가’하는 정도이지 불에 데인 것처럼 확실하고 선명하게 알아듣는 모양새는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참 대단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딸을 키운 아버지이자 손녀딸을 키우고 있는 할아버지이기에 아동 성추행으로 비롯된 성직자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80살의 고령임에도 이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장피에르에게 ‘우리가 교회’ 운동의 원동력은 그가 진짜 ‘파더’인 데 까닭이 있지 않을까. 성직자라면 설사 파더라는 명칭을 고집한다고 하더라도 여든 살이 넘도록 이들처럼 치열하게 이 운동에 투신하며 살고자 하며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그가 요즈음 들떠 있는 것 같다. 이 칼럼이 실리는 바로 이번 주말에 교황청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와 ‘우리가 교회’ 대표들을 비롯한 교회 안 사회운동 및 교회개혁 운동 단체들의 만남이 있고 자신과 프랑수아가 함께 참가한다는 것이다. 다른 단체는 그렇다 하더라도 교회개혁, 그 가운데서도 성직중심주의 극복과 여성사제 문제를 존립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알려진 '우리가 교회'를 교황청에서 초대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의 주장과 노력이 인정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만나면 가장 절실하게 전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물었더니 ‘교회 내 민주적 질서’라고 했다. 프랑스 교회를 비롯해 유럽이 다른 지역에 비해 성직자들도 합리적으로 사고가 바뀌어 가지만 여전히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는 의식적, 무의식적 차별이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가 성평등으로서 여성사제 문제가 표면에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여성성직 문제는 성평등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 합리적 문화가 자리 잡는 데에 매우 상징적인 이슈라는 것이다. 워낙 동안이라 그런지 홍조까지 띠어 가며 말하는 그의 손을 슬며시 잡으며 ‘당신이 진정한 아버지요’라고 속으로 말하는데, 겉으로는 ‘다음 해 열리는 아시아 행사에도 참가해서 사회뿐 아니라 교회 안에도 합리적 문화가 왜 필요한지 가르쳐 달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참으로 건조한 주변머리라고 혀를 차는 것도 잠시, 얼굴보다는 곱절로 나이가 든 것만 같은 쪼글거리는 손의 주름이 그런 낭패감을 잠재웠다. 그것은 진정한 아버지의 손이었다.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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