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경제 '성심당'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로마서 12,17)

60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어려운 사람에게 빵을 나눠 준 대전의 대표적 기업이며, 대전역에서 줄을 서야 살 수 있는 ‘튀김소보로’로 유명한 성심당의 사훈이다.

성심당 김미진 이사(아녜스)의 입에서 공동선, 보편적 형제애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자주 흘러나왔다. 성심당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는지 알 수 있다. 김 이사는 성심당 2대 경영인인 임영진 씨(요셉)의 아내이며, 창업주 임길순 씨의 며느리다.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천주교 신자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오히려 가톨릭 신앙의 정신을 바탕으로 경영에 임한다. 대개는 성당에 갈 때 말고 천주교인이라는 정체성을 염두하고 살기란 쉽지 않다. 김미진 이사는 “그러지 못할 때도 많지만, 복음을 사는 것을 연습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가장 오래있는 곳이 직장이다. 이 안에 원수, 희노애락이 있고  삶이 이뤄지는데 여기서 복음이 되지 않으면 어디 산에 가서 할 건가. 이 안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는 복음을 가까이 사는 연습을 하니 예민해진다고 했다. 둘 이상이 모여 회의하거나 회사의 방향을 결정할 때 늘 ‘예수님이 함께 계셨다면’하고 복음이 떠오른다.

“직원들 줄 것 다 주고, 어려운 사람들 다 도와주고, 세금 낼 것 다 내도 빚더미에 앉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는 것, 하느님 뜻대로 사는 것을 증거하는 몫이 있다면 그게 우리였음 좋겠다.”

▲ 성심당 6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설명하는 김미진 이사. ⓒ배선영 기자

그와 그의 남편이자 성심당의 대표인 임영진 씨는 특히 포콜라레를 통해 복음을 삶에서 구체화하는 것을 배웠다.

포콜라레 운동은 2차대전 중에 폭격을 맞고 있던 이탈리아 트리엔트에서 1943년에 과외로 학비를 벌며 공부하던 대학생 키아라 루빅이 강한 종교 체험을 겪으며 시작됐고, 모든 이들의 복음적 일치와 평화, 형제애를 추구한다. 가톨릭 단체이지만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나 타 종교와도 연계가 강하고 회원 중에 비종교인도 적지 않다.

1999년 김미진 씨 부부는 필리핀에 있는 포콜라레 새인류학교(New Humanity School)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새인류학교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영성 프로그램으로 경제 불평등과 소외계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인들이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는 운동이다.

부부는 새인류학교에서 ‘EoC’(Economy of Communion, 모두를 위한 경제)를 만났고, 한국으로 돌아와 성심당에 이를 도입했다. EoC는 기업이 경영을 통해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실천하는 경제 방식이다.

이들은 이탈리아에 있는 키아라 루빅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는 편지를 보냈고, 그는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라는 성경 구절로 답했다. 그리고 이 구절이 성심당의 사훈이 됐다.

여기서의 ‘모든 이’는 손님뿐 아니라 직원, 거래처, 경쟁업체, 퇴사 뒤 개인 창업자도 포함한다. 이들 모두에게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이 성심당의 경영이념이 되었다.

이들의 실천은 구체적이었다. 2001년 성심당은 개인사업자에서 로쏘라는 이름으로 법인 전환한다. 그리고 100퍼센트 납세를 위해 노력했다. 50억 원의 빚이 있었지만, 세금을 내기 위해 대출도 받았다. 세금이 사업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공적인 나눔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2011년 국세청으로부터 제1회 아름다운 납세자상을 받았다.

김미진 씨는 “매출은 적고 이익은 안 남는데 세금을 내려니 어렵고, 직원들이 맥 빠져 했지만 모든 것을 EoC 기업에 맞춰 가려는 작업을 천천히 했다”고 말했다.

▲ 성심당 본사 사무실 입구에 쓰인 사훈. ⓒ배선영 기자

2007년부터 EoC의 구체적 실천 방안을 7가지 색으로 분류한 ‘무지개 프로젝트’를 회사 지침으로 삼아 실천하고 있다. 예컨대 ‘올바른 경제 활동’을 상징하는 빨강에는 81개 시설에 빵 나눔, 회사와 직원 개인 차원의 기부, 봉사 활동, 투명한 회계 관리와 납세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노랑은 식품위생법, 유통기한법, 원산지표시 등 법률과 윤리 기준을 지키며 책임감과 정직성을 지니는 것을 뜻한다. 초록은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친환경 포장재를 쓰며 쓰레기를 줄이는 것으로 실천한다. 또한 지역에서 나는 식자재를 쓴다. 남색은 직원의 자기 계발에 적극 지원하겠다는 다짐이다.

성심당은 60년을 맞아 다음 60년의 비전으로 ‘사랑’, ‘가치 있는 기업’을 내세웠다. 매출 얼마 달성, 점포 확장이 목표인 여타 기업과 다르다.

‘사랑의 문화’가 꽃핀 회사는 어떤 모습일까? 특별한 소통방식이 있는지 물었다. 김미진 이사는 직원 단체 채팅방으로 성심당의 소식이 수시로 공유된다고 했다. 대표가 뭘 하고 있는지, 회사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시시각각 올라온다.

또 매주 50페이지 분량의 <한가족 신문>이 나온다. 회의 내용부터 중요한 업무 정보, 매장에서 일어난 소소한 에피소드, 한 주의 매출과 성과가 담긴다. 김 이사는 “비밀이 없다. 참모나 오른팔 같은 개념도 없다”고 했다. 이들은 투자 명목으로 부동산을 사거나 하지 않는다. 김 이사는 비자금이 1원도 없어 당당하다고 했다.

사실 성심당의 경영 이념은 창업주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1956년 대전역 앞 노점에서 찐방을 팔며 시작한 성심당은 하루에 300개를 만들면 100개는 이웃과 나눴다. 창업주 임길순 씨는 당시 대전 대흥동 성당의 보좌신부였던 두봉 신부가 끼니가 어려운 사람을 찾아 주소를 알려 주면 남은 빵을 봉지에 담아 집 대문이나 울타리 너머로 넣어 주었다. 이후에는 빵만이 아니라 다양한 구호 물품을 나눴다. 임 씨는 한국전쟁 흥남 철수 때 내려온 피난민 출신이고, 두봉 신부는 나중에 안동교구 주교가 된 이다.

▲ 성심당 창립 60주년 '밀가루 두 포대의 기적' 그림이 있는 튀김소보로 빵 포장지. 이 밀가루 두 포대가 장사 밑천이 되었다. ⓒ왕기리 기자

은행동에 있는 성심당 본점 1층 골목길에 수도꼭지 하나가 밖으로 나와 있다. 골목길 포장마차들이 장사에 쓸 물을 성심당에서 무상으로 제공한다. 성심당은 노점상을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골목이 더 활기 넘친다고 생각해 공생한다.

현재 성심당은 직원 400여 명의 규모에, 매출액은 400억 정도다. 빵을 파는 은행동 본점과 대전 롯데점, 대전역점까지 세 군데, 케이크와 디저트를 파는 케익부띠끄 외에 외식업체 등 매장은 11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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