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영장집행 저지 뒤, 시민들과 미사 봉헌

“정말 죄송하지만, 나는 백남기 이분을 생각하면 슬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럽습니다. 사람이 일생을 이렇게 당당하게 살다가 산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렇게 마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불쌍한 것은 오히려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10월 25일 경찰이 부검영장 집행을 포기하고 철수한 뒤,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경찰을 막아섰던 사제, 수도자,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이병호 주교는 이날 오후 4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방문했지만, 3시에 경찰이 들어오자 시민들과 함께 장례식장 입구를 지켰다.

이 주교는 백남기 씨가 참된 말과 삶으로 일생을 살았으며, 그 한 사람의 삶으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백남기가 되어 열매를 맺고 있다면서, “세상은 혁명이 아니라 이런 밀알 하나, 하느님과 함께 하는 우리 한 사람으로부터 바뀌고, 뒤집힌다”고 말했다.

▲ 25일 경찰의 부검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달려온 사제, 수도자, 시민들. @정현진 기자

“정말 불쌍한 것은, 제 말을 못하는 사람들”

그는 최근 드러난 ‘최순실 스캔들’ 관련 정국에 대해, “슬프고, 기가 막힌다. 어떻게 나라 꼴이 이렇게 되었는가”라며, “(대통령은) 말을 제대로 해야 하는 사람이고, 말로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것인데, 그 말을 제대로 하라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인가. 백남기 씨 때문이 아니라 이들 때문에 슬픈 것이고, 제대로 말을 못하는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그럼에도 희망이 있는 것은 수많은 백남기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이라며, “가장 작은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가 되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역할을 정확히 할 때, 근원적으로 세상을 바꾼다. 한 사람에서 시작된 일이 이천 년 동안 역사를 바꿨다”고 말했다.

▲ 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달려 온 수도자들. ⓒ정현진 기자

“부검 영장 재청구는 유족들에게는 ‘고문’과 다름없는 잔인한 처사”

미사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백남기 투쟁본부와 유가족은 부검 영장 집행을 막아 낸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검경의 영장 재청구 시도 중단과 특검 추진,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백남기 씨의 장녀 백도라지 씨는 “경찰은 물러가면서 사인 논란은 투쟁본부 책임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고 갔지만, 사인 논란은 애초에 경찰이 지어냈다”면서, “영장 재청구를 포기하고 이 사건 해결에 대한 진정성과 고인에 대한 존중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투쟁본부는 이번 부검 영장 시효 만료가 끝이 아니며,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하면서도 “백남기 농민을 지킨 것은 투쟁본부의 힘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힘이었다”며, 병사, 제3의 외력 등은 지난 한 달간 근거 없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검경은 영장 재청구 시도를 중단해야 하며, 특검을 실시해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25일 2차 부검영장 시효가 끝나면서, 영장 집행을 막기 위한 천주교 집중행동도 마무리됐다. 26일부터는 오후 4시 미사만 진행된다.

▲ 경찰이 영장 집행을 포기하고 돌아간 뒤, 이병호 주교와 사제단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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