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한상봉]

세월호 참사 직후에 열린 2014년 도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나갈 때 우리 선수들은 대표팀 전원이 가슴에 노란 리본 하나씩을 달고 출국한 적이 있다. 탁구 명문이었던 안산 단원고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가족과 아픔을 나눈다는 의미에서였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는 그런 풍경을 볼 수 없으니 2014년의 감회가 새롭다. 상위 1퍼센트만을 위한 공화국, 국민 대다수의 목숨과 자유와 평등한 삶을 외면하는 국가에서, 그래도 찜통 같은 대한민국의 밤을 견디는 힘은 그저 올림픽 경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처지가 안쓰럽다.

이참에 애국가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련다. 이번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각 나라 국가가 울려 퍼질 것이고, 당연히 브라질 국가도 연주될 것이다. 브라질 국가는 곡은 만들었지만 가사 때문에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브라질 헌법에서 애국가로 정해 ‘준국가’처럼 불리는 이 노래의 가사가 흥미롭다. 포르투갈어로 된 1절은 이렇다.

“평온한 이피랑가의 둑에/ 영웅들의 함성이 들린다/ 그리고 하늘에서부터 눈부신 자유의 빛/ 나의 조국의 하늘에 한 줄기 비추네/ 힘센 팔로 이루었네/ 우리의 평등의 염원을/ 그대의 가슴에 자유를/ 우리의 심장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리!/ 오, 사랑하고/ 경배하는 조국/ 만세, 만세!”

작곡가 겸 음악교사였던 시우바가 작곡한 곡에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맞은 1922년에 붙여진 두케-이스트라다의 가사는 읽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평등평화를 희망하는 이런 갈망이 담겨야 애국하고 싶은 마음도 들 것 같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애국가에 대한 유감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변절한 지식인이며 친일파였던 윤치호와 안익태가 작사작곡을 맡았다 해서가 아니다. 윤치호 작사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가사에 그 나라 민중을 위한 어떤 가치도 표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무궁한 나라를 사랑하자는 강요만 있을 뿐이다.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나라만 있으면 뭐하나,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이 ‘지옥’인데. 남산 위의 저 소나무도, 공활한 가을하늘도 국가권력과 재벌에게나 아름다울 뿐이라면, 그 영토도 의미를 잃는다.

▲ 2014년 도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노란 리본을 어깨에 단 정영식 선수.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친일파의 나라, 민족해방운동이 불편한 나라

대한민국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주체 세력이 세운 나라라면 많은 것들이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초대 대통령이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접고 반민특위를 해체시킨 나라다. 일제에 충성을 맹약했던 관동군, 만주군 출신 장교들이 줄줄이 대한민국의 군부를 장악해 왔고 대통령까지 된 나라다. 대한민국의 상위 1퍼센트에게 가장 껄끄러운 존재가 독립운동가라면 이상할까? 현충원에도 친일파들이 묻혀 있는 나라에서 ‘애국’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만을 위한 나라를 왜 내가 사랑해야 하나, 묻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광복절을 맞이해 지난 12일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독립운동가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광복절을 이승만 정부 수립(1948년 8월 15일)을 기념하는 ‘건국절’로 바꿔 부르자는 주장에 대해 “이는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뿐만 아니라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은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한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장은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했음은 역사적으로 엄연한 사실인데 왜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나라를 되찾고자 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처음 창설한 것은 1940년 9월 17일이었다. 청와대 오찬에서 김영관 회장은 광복군 창설을 기념해 국군의 날을 이날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정신에 따르자는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호소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현재 국군의 날로 정해져 있는 10월 1일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동부전선에서 육군 제3사단이 북위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을 시작한 날이다.

결국 국군의 날 날짜는 ‘민족해방’과 ‘반공’이라는 두 가지 가치 사이의 싸움이다. 반공을 빌미로 친일파를 용인했던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래서 불투명하다. 그리고 친일파의 인맥이 자자손손 대한민국의 정계와 학계, 경제계, 종교계에서 여전히 세력을 떨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겨레는 막막한 슬픔에 겨운 백성이다. 하지만, 92세 광복군 출신의 원로 독립운동가의 호소에 아랑곳없이 3일 만에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경축사를 시작했다. 역사가 참담해진 날이다.

▲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만세를 외치는 민중들. 3.1만세운동 이후 한국교회가 항일운동에 참여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미지 출처 = ko.wikipedia.org)
고해성사 보지 않는 교회, 엉킨 매듭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이 논란의 중심에서 교회 역시 자유롭지 않다. 가톨릭교회는 노기남 대주교를 비롯해 7명의 성직자, 평신도가 "친일인명사전"에 실렸으나 사실상 “단체로 친일한” 이력 때문에 여전히 곤욕을 겪고 있다. 해방정국에서 한국교회가 그렇게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매달려야 했던 사정이 여기에 있다. 한편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교회사 어느 구석에서도 한국교회가 항일운동에 참여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3.1만세운동 당시에도 교회 지도부는 만세운동에 참여한 신학생들을 정학, 퇴학시키고 일제에 충성을 거듭 맹세했다.

이제 와서 서울대교구가 안중근을 시복시키자면서 ‘안중근 타령’을 하지만, 거사 당시 안중근은 교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했고, 종부성사마저 공식적으로는 거부되었다. 교도권적 지시를 어기고 그에게 성사를 주었던 사제는 징계를 받았다. 다만 교회는 안중근이 천주교인이라는 점을 들어 ‘친일행적의 바다’ 위에 독립운동의 점 하나 찍어 면피하려는 태도로 보인다. 왜냐하면 교회가 자신의 친일행적에 대하여 한 번도 제대로 된 참회를 한 적이 없으며,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만 반복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솔직히 밝히고 용서를 청하는 고해성사를 거부하는 교회에 미래가 없다.

이런 교회에서 ‘대한민국수호 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모) 같은 어설픈 보수우익 인사들이 활개를 치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 가톨릭판 건국절 세력인 ‘대수모’는 ‘반공’을 내세우며 호가호위하면서 성당 앞마당까지 들어와 가톨릭교회의 복음을 능멸한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민족화해위원회가 사드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는 담화문을 발표하자, 해당 주교들을 “빨갱이 주교”라며 윽박지른다. 김계춘 신부처럼 사제들도 직접 여기에 가담하고 있지만, 주교회의의 대응은 감감하다. 그들의 언사를 보면 사실상 ‘파문감’이다. 교회 지도부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대수모’의 태도는 ‘비난’을 넘어서는 폭력이다. 결국 진정성이 없는 교회는 복음 앞에서도 용기가 없는 교회이며, 전전긍긍하며 틈새로 이득을 탐할 뿐이다.

이참에 매듭을 푸는 성모님에게라도 기도를 드려야 할까 보다. 한국교회가 친일 행적에 대한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 그 이후 독재정권에 대한 우유부단한 행동 때문에 빚어진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알려 주십사, 교회 지도자들에게 복음적 용기를 주십사 청해야 할까 보다. 그렇다고 8월 15일이 성모승천대축일이니, 우리 민족의 해방을 성모님 덕분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이 또한 어림없는 일이다. 성모승천대축일은 비오 12세 교황이 교황령 '성모승천 교리의 규정'(Munificentissimus Deus,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1950년 11월 1일에 지정되었는데, 당시는 한국전쟁 중이었다. 그러니 면피하고 어정쩡하게 돌아갈 생각 말고,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회심하는 게 겨레 앞에 서 있는 교회의 과업이다.

 
 

한상봉(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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