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요건도 못 갖춰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낸 구상권 소송 소장을 입수해 파악한 결과, 소장 자체가 불법이며, 일부 소장의 요건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입수한 37쪽 분량의 소장(증거자료 제외)은 121명의 개인과 5개 단체가 명시되어 있으며, 이들에 대한 구상권 청구 원인, 사건 사실 관계로 ‘피고들의 공사방해행위’와 증거 목록, 이에 따른 추가 비용 지출 내역 등을 밝히고 있다.

앞서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번 구상권 청구에 대한 논평을 내고 해군이 민사소송 준비를 위해 검찰에서 강정 주민의 형사사건 기록을 열람, 등사한 것이 불법임을 지적한 바 있으며, 이것이 확인된 것이다.

소장 내용 가운데, 불법인 부분은 ‘피고들의 공사 방해 행위’ 내역이다. 소장을 검토한 민변 김인숙 변호사는 “해군이 소장에 첨부한 방해 행위 증거는 검찰 보관 자료를 넘겨 받은 것”이라며, “해당 재판이 아니면 본인 외에는 열람할 수 없는 자료다. 특히 다른 민사소송을 위해 검찰이 기록을 넘겼다는 것은 법과 관행에 어긋나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형사소송법과 개인정보보호법까지 어긴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 강정마을회는 3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의 구상권 청구에 대해 강경대응할 입장을 밝혔다.(사진 제공 = 엄문희)

형사소송법 제266조의16 (열람, 등사된 서류등의 남용금지) 관련주석에 따르면, “피고인 또는 변호인(피고인 또는 변호인이었던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은 검사가 열람 또는 등사하도록 한 제266조의3 제1항에 따른 서면 및 서류등의 사본을 당해 사건 또는 관련 소송의 준비에 사용할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교부 또는 제시(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하여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어길 때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두 번째 문제는 피고인들의 인적사항이나 신분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121명의 개인 명단 중에는 주민번호와 주소를 ‘불명’으로 처리한 경우가 70명이다. 소장에 따르면 소송 대상은 개인 36명과 5개 단체만 해당되는 셈이다.

김 변호사는 “소장 조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소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면서, “주소와 주민번호를 모르는 경우, 피고인으로 성립하지도 않을 뿐더러, 소장 송달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비용 청구 목적 아닌, 국민 협박용 소송

그는, “소장 상태를 보면, 이 재판은 원고인 대한민국이 국민을 상대로 소송을 남용한 것이며, 그 목적은 국책사업 반대 국민들을 협박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정말로 돈을 받기 위한 소송이 아니라 국민을 겁주기 위한 국가의 폭력이자 야비한 수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변 역시, 이번 구상권 청구 소송은 단순한 하나의 민사 소송이 아니라, 가압류이며, 위험한 국가 지상주의를 사법의 영역까지 확장하려는 불순한 의도라는 입장이다.

한편, 소장에 따르면 이번 구상권 청구 소송 피고인에는 문정현, 문규현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사제들도 포함되어 있다. 강정마을회 회장 등 주민과 문정현 신부 등 26명과 강정마을회, 생명평화결사, 제주참여환경연대 등 5개 단체에 부과된 금액은 총 청구 비용 약 34억 원 중 31억여 원으로 1인당 약 1억 원에 이른다.

또 소장은 구상금 34억여 원의 산출 근거로 2011년 1월부터 2012년 2월 29일까지 주민과 활동가들의 공사 방해로 발생한 추가 비용이라고 밝혔으며, 방해 행위는 공사현장 출입 방해, 공사현장 침입 및 출입구 봉쇄, 해상 진입 및 선박 공사 방해 등을 제시했다.

해군이 제시한 증거는 CCTV 기록, 채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입수한 사진, 해당 단체 총회 회의록과 홈페이지 내용, 대법원 판결문 등이다.

이번 해군의 구상금 청구분은 시공업체인 삼성물산에 공사 지연에 대해 해군이 이미 지급한 지급금이며, 대림산업은 같은 방해 행위로 공사 기간이 연장됐다며, 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비용 231억을 지급 요청한 상태다. 대림산업에 대한 지급건은 현재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중재절차가 진행 중이다.

소장에는 또 그 외 공구에서 시공을 맡은 업체들도 추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혀, 이번 청구권 소송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에게도 시간을 두고 계속 소송을 낼 가능성도 밝히고 있다.

이번 소송을 위해 민변은 변호인단을 꾸려 대응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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