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자체가 어려워져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 단체와 주민에 구상권 청구 소송을 낸 데 대해 강정마을회 등은 정부가 책임을 주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해군은 3월 29일 낸 보도자료에서, “28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주민군복합항 구상권 행사 소장을 제출 했다”며, 1년 2개월간 공사가 지연돼 발생한 추가 비용 275억 원 가운데, 불법 공사 방해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해군이 소송을 제기한 대상은 강정마을회 등 5개 단체, 120여 명으로 금액은 약 34억 5000만 원 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소장이 송달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구상권은 책임 당사자를 대신해 우선 채무를 갚아 준 이가 채무당사자에게 그 금액을 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로, 해군이 청구한 금액은 해군기지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해군 측에 공사가 지연돼 생긴 비용을 요구한 대 따른 것이다.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지난해 해군에 공사 지연에 대한 손해배상금 360억 원을 요구했고, 배상금은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로 275억 원으로 결정됐다. 해군은 이를 삼성 측에 지급한 뒤, 구상권을 행사한 것이다. 현재 또 다른 시공사인 대림건설도 배상금 약 230억 원을 요구해 중재 절차를 밟고 있어, 구상권 청구가 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3월 30일 제주도청에서 열린 "해군 구상권 청구 소송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한 주민이 피켓을 들고 있다. ⓒ강정마을회

이에 대해 강정마을회와 관련 단체는 즉각 입장을 발표하고 구상권 철회를 위해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강정법률지원모금위원회는 공동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30일 기자회견을 연 강정마을회와 주민들은 “강정 주민들과 상생하겠다면서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이 과연 상생하는 방법인가”라고 물으면서, 자신들의 잘못으로 유발된 결과의 책임을 주민들이 져야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 뒤, 주민들은 제주지역 총선 후보자들에게 해군 구상권 청구에 대한 공약 질의서를 전달하는 한편, 원희룡 제주도지사에 면담을 요청했지만, 원 지사는 “일정상 어렵다”고 답했다.

민변 백신옥 변호사는 이번 구상권 소송에 대해, 해군기지 공사 지연 이유에는 착공 전 지연도 있고, 과정에서 자연 재해로 인한 영향이 있다면서, “착공 전 허가 단계 준비가 미비했던 것, 오탁방지막 훼손으로 인한 제주도청의 공사중지 명령과 케이슨 운항정지 명령을 주민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백 변호사는 “만약 이 소송을 해군이 승소한다면, 앞으로 국책사업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이며,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전면 뺏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책 사업이나 공공 정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소수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바로잡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면서, “국민들이 의사를 표현하는 것 때문에 사업이 늦어졌다는 이유로, 구상금 청구 같은 방법으로 민사적 처벌까지 가하고, 개인의 자산이 파산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왜 이 소송이 잘못된 것인가는 소장을 보고, 그 이유와 금액 산출 내역을 봐야 할 것”이라면서, “먼저 정부와 해군기지 시공사 간 계약에, 공사지연 등에 대한 손해배상 항목이 있었는지도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정법률모금회,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위 등도 30일, 성명을 내고,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소송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비민주적이고 불법적인 졸속 공사의 책임이 있는 해군이 평화로운 저항을 이어온 강정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에게 공사 지연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소송 철회를 요구했다.

또, 공사 지연은 항만설계 오류,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명령에 따른 청문회, 해군기지 시뮬레이션 과정 등 안전성 검증이나 환경보호를 위한 조치도 무시한 해군 측의 일방적이고 무리한 공사 추진 때문이라며, “구상권 청구는 명백한 기본권 침해이며 이미 만신창이가 된 강정 마을 공동체를 다시 파괴하는 것으로, 해군과 정부의 부당한 행위에 적극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은 3200일을 넘겼다. 그동안 697명이 연행되고, 601명이 기소됐으며, 57명이 구속됐다. 주민과 활동가들에게 부과된 벌금은 약 4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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