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정확한 시계가 있을까? 정밀한 공학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는 굳이 정확한 시계가 필요하지 않다. 약속시간 5분 전에 도착하면 충분하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닌 뒤로 시계마저 풀어놓았다. 지구의 자전 속도 변화에 맞춰 1초를 더하거나 빼는 윤초까지 자동으로 조정해 표시하는 휴대전화가 아닌가. 그 정도면 일상생활에서 과분할 정도다.

시계의 정확성을 과시하려고 99퍼센트 일치한다고 광고한다면 소비자는 고개를 끄덕여야 할까? 하루는 24시간, 한 시간은 60분, 1분은 60초이므로 하루는 8만 6400초다. 99퍼센트 일치하는 시계는 하루 14.4분 빠르거나 늦고 99.9퍼센트 일치하는 시계를 한 달 동안 손목에 차고 다니면 40분 이상 다른 시간을 표시할 것이다. 99퍼센트 안전한 물은 어떨까? 부산시 기장군 앞바다, 다시 말해 고리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가 섞이는 바다에서 취수해 만든 수돗물은 99퍼센트 안전하다고 한다. 그만큼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므로 안전한 겐가?

▲ 기장군 곳곳에 걸려 있는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을 반대하는 현수막. ⓒ장영식

송년회를 겸하는 연말 고교 동창회는 꼭 행운권 추첨을 한다. 근사한 물건이 준비되었다는 사회자의 감언이설로 중간에 빠져나가는 동창이 줄어드는데, 가장 근사한 물건은 언제나 남의 차지가 된다. 내게 올 행운의 확률이 낮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이상한 점도 있다. 행운권 추첨 때마다 흡족한 결과를 차지하는 이가 있다. 단지 착각일까?

이른 봄 생태조사를 위해 찾은 도시에서 냉면이 먹고 싶었다. 낯선 도시의 식당을 돌아다니며 기필코 소원을 풀었는데, 아뿔싸, 오래 두었던 면발이 상했는지 알레르기가 생겨 급히 병원으로 달려야 했다. 같은 냉면을 먹은 동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한번 생긴 알레르기 반응은 30년이 지났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모든 메밀 메뉴를 피하는데, 알레르기가 생길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과학적 결과가 나올지라도, 무더운 여름에 맛있는 냉면을 포기해야 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없다.

상한 메밀을 먹고 알레르기가 생길 확률이 얼마나 될까? 메밀 알레르기가 있는 이를 만난 적 없으니, 모르긴 해도 아주 낮을 거 같다. 냉면을 즐기는 손님 중에 상한 메밀에 민감한 체질의 손님을 만날 확률이 1만 명 중의 한 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 불행한 한 명은 사전에 대처할 수 없었지만 알레르기를 경험한 뒤로는 즐겼던 냉면을 포기해야 한다. 메밀뿐이랴.

방사능 연간 허용 기준치는 1밀리시버트다. 그 정도 피폭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 안전을 담보하는 수치는 아닌데, 전문가는 그 정도 피폭된 1만 명 중 한 사람에게 암이 발생할 확률이라고 풀이한다. 만 명 중 한 명이 바로 나일 확률은 아주 작지만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조금 오르겠지. 암이 생긴다고 다 죽는 건 아니다. 물론 몸과 맘고생은 심하겠지만.

곧 개막할 프로야구, 개막하는 날이 주말일 테니 만원 사례에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입장하는 관중에게 고마워할 텐데, 입추 여지없는 3만 인파에게 마이크를 든 축포 담당자가 “안심하십시오. 관중석을 향해 실탄을 권총으로 딱 세 발 쏘겠습니다. 총알에 맞는다고 뭐 다 죽겠어요? 옷을 스칠 수 있고, 금방 치유돼 정상이 될 수 있어요.” 하며 만면에 웃음을 짓는다면 낮은 확률이므로 웃으며 맞장구쳐야 할까? 방사성 물질이 핵폐기물로, 사용 후 핵연료로, 터빈을 식힌 온배수로 항상 배출되는 핵발전소의 예와 견주어 보자.

일본 후쿠시마 인근에 폭발될 때 분산돼 떨어진 방사성 물질이 여전히 많다. 5년이 지난 요즘 일본 당국이 연간 허용 기준치를 20밀리시버트로 조절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방사성 물질이 많은 지역에 사는 사람은 방사능에 대한 저항력이 20배 증가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물론 제시하지 않았다. 책임 부담, 배상 부담을 피하려는 속셈인데, 사회적 약자에게 건강과 재산의 피해는 가중되겠지. 부산시 기장군으로 가 보자.

기장군과 인근 10만 명에게 공급하겠다는 방사성 수돗물의 안전성은 누가 어떻게 계산했는지 모르지만 부산시 담당자는 95에서 99퍼센트의 안전을 과신한다. 그렇다면 10만 명 중 1000명에서 5000명이 피폭된다는 해석이 가능하겠군. 그런데 아니다. 수돗물은 한 차례 마시고 그만두는 게 아니므로 확률은 마시는 횟수만큼 높아진다. 안전한가? 그 수치를 제시한 해외의 연구진은 안전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고 발뺌했다.

기장군 주민들은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만 걱정하는 게 아니다. 워낙 작은 삼중수소는 사람이 개발한 어떤 장치로 걸러 내지 못한다. 방사성 삼중수소가 수돗물로 흡수돼 몸을 구성하는 물이 된다면 아무리 선량이 낮아도 치명적일 수 있다.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방사능이 몸에 도사려도 안전하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수돗물을 마실 의지가 없을 게 틀림없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 한 차례 마시는 퍼포먼스야 눈 딱 감고 감행하겠지만.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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