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3동 성당 앞 우리농 직매장에서는 약 1년 전 새로운 시도가 시작됐다.

본당 우리농 생활공동체 활동가들이 직원 협동조합을 꾸려 매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 현재 서울대교구 도시생활공동체 회장을 맡고 있는 이연수 씨를 비롯한 4명의 활동가가 서초3동 매장을 맡아 운영한 것이 지난해 4월 1일이다.

4년간 운영된 매장이었지만 상황이 어려워지자, 고민하던 서울대교구 우리농본부는 문정동 본당 활동가들에게 운영을 제안했고, 이들은 매장을 방문한 뒤, 선뜻 “하겠다”고 답했다.

문정동 본당 활동가들은 각자 가진 관심사와 재주를 가지고 성당 밖에서 또 다른 매장을 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고, 10년 가까이 우리농 활동가를 해 왔기 때문에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었다.

“매장을 운영하되, 본당 활동가를 놓아서는 안 된다”는 가혹한(?) 조건에도 이들이 겁 없이 제안을 수락한 것은 이전 본당 신부의 가르침 때문이다. 매장에서 만난 이연수 씨는 “활동가 양성의 이유는 우리농 정신, 생명농업의 가치를 배워서 확산시키고, 대형마트 체제에 도전하는 일종의 개미군단이 되기 위한 것”이라는 본당 신부의 말을 기억한다며, “당시는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몰랐지만, 지금은 그 의미를 알고, 지역 사회에서 우리농 매장이 동네 사랑방처럼 자리잡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 서초3동 우리농매장 활동가들. 이들은 지난 1년이 보람을 느낄 사이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며 힘든 시간을 표현하면서도, 우리농을 통한 희망과 꿈을 함께 키우고 있다. ⓒ정현진 기자

교구 우리농본부에서 이들에게 직원협동조합 형태의 운영을 제안한 것도, 활동가들의 활동 범주를 확산하면서, 협동조합을 통해 우리농의 원칙을 지키되, 매출을 보존하는 현실적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본당 활동을 할 때는 필요없었던 세무와 회계를 배우고, 평일에는 직매장 관리, 주말에는 본당 활동을 겸하며 지낸 지 1년. 새로운 시도에 대한 보람을 느낄 사이도 없이 그저 1년이 지나가 버렸다는 이들은, “온실에 있다가 들판으로 나온 셈이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데뷔한 것”이라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한편, 더 나은 우리농운동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몸소 배우고 있다.

본당 신자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다가 일반 시민들을 대하면서 이들이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우리농 농산물에 대한 신뢰가 월등히 높다는 것이었다.

우리농 매장을 찾는 이들은 이미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다른 생협도 이용하고 있는데, 특히 우리농 1차 농산물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연수 씨는 상추 한 장의 맛으로 그 차이를 느끼고 비교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면서, “그 이유는 유기농, 생명농업에 대한 원칙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뢰가 높은 만큼, 잃는 것도 한순간이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농이 지키는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그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한껏 자부심을 가진다는 그는,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인 농민 위주이기 때문에 많이 불편한데도 이곳을 찾는 것은 생산물에 대한 신뢰 때문”이라면서, “생명농업만큼은 그 어떤 기술이 발달해도 사람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농산물에 대한 자부심과 소비자들의 신뢰가 우리를 버티게 한다”고 말했다.

농산물을 팔기 때문에 ‘매출’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우리농 매장의 매출은 그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많이 판다는 것은 농민이 어렵게 키운 농산물이 그것을 알아보는 소비자들의 식탁에 그만큼 많이 오르고, 농민들이 그 힘으로 다음 농사를 이어 갈 수 있는 기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많이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농의 철저한 원칙은 “신뢰의 기반”이기도 하지만,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감내해야 할 불편함”이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연수 씨는 활동가이자 소비자로서 그 원칙의 앞뒤 면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원칙 때문에 신뢰를 지키기도 하지만 변화와 성장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죠. 마트로 대표되는 기존 시장 시스템에 익숙한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것도 힘들죠. 다른 생협과 달리 종교가 이끄는 운동이니 비약적 발전을 하는 데는 명확한 선이 있어요. 하지만 원칙을 잃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종교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지요.”

‘생명운동을 위한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이연수 씨가 그럼에도 ‘원칙’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은 한 농민의 말 때문이다. 그는 “많이 팔지도 못하는데, 요구하는 것은 엄청 많다”는 한 농민의 반농담에 “왜 그런데 우리랑 같이 가시는 거예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그 농민은 이렇게 답했다. “여기는 우리를 사람대접 해 주잖아요.”

이연수 씨는 우리농과 관련된 많은 이들이 이 운동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면서, “수익 구조 앞에서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거슬러 갈 수 있는 것은 생명의 가치, 상호 존중에 대한 종교적 신념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의 시간을 통해 이연수 씨와 3명의 활동가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 매장이 좋은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집에서 뛰어나가 콩나물과 두부를 사던 동네의 작은 가게, 지역의 사랑방 같은 곳이 더 많이 생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도시생활공동체 회장이기도 한 이연수 씨는 지난 활동가 시절과 매장 운영을 통해 도시공동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고민 중이다. 그는 무엇보다 활동가들은 물론 사제와 수도자의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올해 우리농 총회를 통해 결정된 만큼, 교회 사목자들의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과 체험 기회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매장뿐만 아니라 농촌과 도시가 만나는 직거래가 활성화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라면서, “매장이 없는 본당에서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제철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연다면, 농민, 활동가, 소비자들 모두가 행복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촌 현실만큼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어렵지만, 농촌 생산공동체에 끊임없이 젊은 귀농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희망으로 본다. 그는 “생산분회가 서로 교류하고 지탱해 주는 것에서 희망을 찾고, 도시와 교회가 서로 협력한다면, 우리의 먹을거리를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올해 도시생활공동체의 목표는 최소한 농민과 약속한 책임소비량을 모두 지키고, 그로부터 우리의 책임을 다하고, 신뢰를 지키는 첫걸음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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