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장연 사무국장 주은애 수녀 인터뷰

‘봉헌(축성)생활의 해’, 이만하면 잘 지낸 것일까? 앞으로는 어떤 변화가 이어질까?

봉헌생활의 해를 마무리하며 한국 천주교에서 이 특별한 한 해를 준비하고 큼직한 행사들을 이끌었던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여장연),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남장협)의 평가가 궁금했다. 마침 봉헌생활의 해 기간 동안 총회를 열고 회장단이 바뀐 여장연과 남장협에서 추천한 사람은 2015년 10월 총회 전까지 여장연 사무국장을 맡았던 주은애 수녀(예수성심시녀회)였다.

주 수녀를 2월 4일 예수성심시녀회 서울관구 본원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때 남장협 사무국장이었던 이영준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얼마 전 해외 선교를 떠났다.

주은애 수녀는 봉헌생활의 해 준비에 적극 참여했던 실무자로서 돌아볼 때, 다양한 수도회에 속한 수도자들이 여러 번 한 자리에 모이면서 ‘하나되는 느낌’과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을 특히 긍정적으로 봤다.

▲ 2014년 12월 '봉헌 생활의 해' 서울관구 개막미사를 마친 뒤 명동성당을 나서는 수도자들. ⓒ강한 기자

2015년에 축성생활의 해 평생양성특별위원회는 수련자 모임, 유기서원자 모임, 종신서원자 모임을 열었다. 2박3일 일정으로 열린 유기서원자 모임에 참여한 주 수녀는 3년 이상 수도원 생활을 한 젊은이들의 “깔끔하게 잘 정리된 모범적인 젊음”을 느꼈다면서 앞으로도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2015년 10월 9-11일 음성 꽃동네에서 열린 ‘수도자와 함께하는 청년대회’에는 남녀 수도자 90여 명, 청년 170여 명이 참여했는데, 주 수녀는 이 모임에서 각 수도회가 갖고 있던 ‘우리 성소자’라는 개념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와 함께하며 모든 수도회가 하나가 됐다”면서, 그래서 젊은이들이 성소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신앙생활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전했다.

“봉헌생활의 해라면 수도자들의 해라고 생각하고, ‘축성생활의 해 특별위원회’도 수도자끼리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저희도 외적 행사에만 치우치지 않으려고 했지요. 그러나 하다 보면 사실 ‘행사’였습니다. 대신 내실을 기해서, 신경 써서 잘 해 보자는 의도는 갖고 있었어요.”

그는 “일회성 행사가 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며, 지금의 남장협, 여장연에서도 봉헌생활의 해의 기운을 이어 가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봉헌생활의 해 동안 겪은 모든 일이 특별했지만, 주 수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15년 11월 2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감사 미사를 준비하며 수도자 ‘연합 성가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연합 성가대에 대한 처음 계획은 100명이었지만 성가대석에 올라가는 사람이 60명을 넘으면 안 돼 수사 20명, 수녀 40명으로 연합 성가대를 만들었어요. 수사님을 구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장상에게 부탁하고 개별적으로 섭외하기도 했지요. 60여 명이 7주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정동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성당에 모여 2시간 이상 연습을 했습니다.”

주 수녀는 국악 성가 작곡가로 잘 알려진 강수근 신부(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수도회)가 축성생활의 해 전례특위 위원으로 참여하며 도움을 줬고, 그가 지은 성가도 몇 곡 활용하며 직접 지휘를 맡았다고 말했다. 대구, 전주에서도 수도자들이 서울로 와 참여했고, 주 수녀 자신도 참가자들이 즐거워하며 성가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면 기운이 났다. “획기적이었고, 한 번만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성가대였어요.”

행사 진행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주 수녀는 ‘행사’로서의 봉헌생활의 해는 매우 잘 됐다고 말했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행사에 대해서는 다들 만족해 했어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긍정적인 평가를 했지요. 하나된 느낌을 받았으니까.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요.”

‘봉헌생활의 해’가 형식적이었고 수도자들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주 수녀는 “반 이상 공감한다”며 이번 인터뷰에서 말한 것은 “남장협, 여장연이 치른 행사에 대한 저의 평가일 뿐”이라고 말했다. 교황청에서 나오는 공문 등을 여장연에서 각 수도회로 보냈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각 수도회의 몫이었다. 봉헌생활의 해에 대한 각 공동체의 고민이나 토론, 실천 수준은 수도회마다 다를 수 있다.

▲ 2014년 12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봉헌 생활의 해' 서울관구 개막미사에 참석한 수도자들이 수도회 회헌을 제대 앞에 바치고 있다. ⓒ강한 기자

한편, 주은애 수녀는 한국의 수도회들이 봉헌생활의 해를 보냈다고 해서 곧장 큰 변화를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제 생각에 수도자들은 잘 휘둘리지 않아요. 큰 이변이 일어나 당장 살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눈에 띄는 변화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일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듯 자기 삶을 사는 것이지요. 워낙 수도생활은, 수도자들은 일관성 있잖아요?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주 수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향이 있고, 또한 성소가 줄어들고 수도회가 고령화되면서 많은 수도회에 ‘쇄신’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수도회들이 유럽 교회를 그대로 닮아 가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러면 안 되겠구나’,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 새롭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다들 있거든요. 저희 수도회도 그렇고요.”

그는 마침 수도회들에 쇄신 바람이 부는 가운데 시작된 ‘봉헌생활의 해’가 변화의 촉매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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