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적 변화는 많이 못 느껴

세계 가톨릭교회가 함께 지낸 ‘봉헌(축성)생활의 해’가 2월 2일 끝났다. 2014년 11월 30일부터 1년 넘게 계속된 봉헌생활의 해는 한국 천주교, 특히 수도자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한국 천주교에서는 2015년 6월부터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여장연),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남장협)가 함께 심포지엄을 4번 열고 수도자의 자리, 수도생활의 방향을 짚어 봤다. 이 심포지엄은 제주, 광주, 서울, 대구에서 열렸다. 이어 11월에는 교황청 수도회성 장관 주앙 브라스 지 아비스 추기경이 한국에 와 수도자들과 만나고 강연을 했으며, 함께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봉헌생활의 해 폐막일인 2016년 2월 2일에는 서울대교구와 의정부, 인천, 춘천교구에서 폐막미사를 바쳤다.

의미 있는 실천과 결정도 있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따르는 수도회들이 모여 경남 산청에서 농촌 일손 돕기에 나섰으며, 봉헌생활의 해를 지내며 모은 봉헌금을 세월호참사 유가족에게 전했다. 봉헌생활의 해에 총회를 열고 새 회장단을 뽑은 여장연과 남장협도 쇄신 노력을 하는 모습이다. 여장연은 생태보전을 위해 부활 달걀 안 쓰기에 나서고 있다. 남장협은 ‘봉헌생활의 해’ 후속 프로그램으로 전체 수도자들이 학술적으로 자기 신원을 되짚어 볼 수 있는 학술대회를 열기로 했으며,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를 기억하고, 진실을 촉구하기 위한 304일의 미사’를 1년 연장했다.

▲ 천주교 의정부교구에서 활동하는 남녀 수도자들이 2월 2일 주교좌 의정부 성당에 모여 '봉헌생활의 해' 폐막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강한 기자

그러나 한국 교회가 지낸 ‘봉헌생활의 해’가 형식적이었고, 성당이나 교회 기관에서 일하는 수도자들에게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당과 사회복지기관에서 활동하는 한 수녀는 “봉헌생활의 해의 목적,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수도자 스스로 고민하고 토론하고 실천사항을 도출하는 과정이 없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교구장 주교가 발표하는 사목교서나 수도회 총회 결과도 수도자나 신자들에게는 일방적으로 발표되고 전달되기 때문에 “깊이 와 닿지 않는다”며 “위에서 무엇을 발표하면 끝에 가서 효과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봉헌생활의 해를 통해 돌아보고 개인적으로 숙고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본당 사제가 1년 동안 단 한 번도 봉헌생활의 해를 언급하지 않은 점은 아쉬워했다. 또 그는 자신이 참석했던 봉헌생활의 해 심포지엄에서 수도자가 어떻게 회개를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발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조현철 신부(예수회)가 ‘지금 있는 자리를 떠나 안 가 봤던 현장에 가 보라’고 답하는 것을 듣고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은 한 남자 수도자는 이러한 심포지엄의 효과도 회의적으로 봤다. 그는 이런 심포지엄이 모든 수도자에게 자극이 됐을까 생각하면 의문이라며, 수도자들끼리는 무엇인가 하려고 애쓴 한 해였지만 교구 차원의 노력은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봉헌생활의 해는 수도자가 쇄신하고 복음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였다면서, 수도자들이 얼마만큼 예수를 따라 자기가 가진 것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다가가려는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기도’라는 수도자의 본질에 더 집중하자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주교좌 의정부 성당에서 2월 2일 봉헌생활의 해 폐막 미사를 집전한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가난한 이를 돕는 복지사업 등은 모두 훌륭하고 하느님이 기뻐할 일이지만 “일 때문에 수도자로서 기도를 소홀히 하거나 기도가 일에 밀려나면 그 좋은 일의 빛이 바랠 수 있다”고 했다.

이 미사를 마친 뒤 조창운 수사(그리스도수도회)는 이 주교가 강론에서 인용한 “수도원에 온 목적은 일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오직 주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말에 깊이 동감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조 수사는 그동안 자신이 기도보다 일에 치우쳐 있었다고 느꼈다며, 봉헌생활의 해를 마치며 다시 정체성을 새롭게 하고자 한다고 했다.

봉헌생활의 해는 교황청 수도회성이 건의하고 교황이 승인해 시작됐다. 2014년 11월 30일부터 2016년 2월 2일(봉헌생활의 날)까지였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중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 반포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다. 라틴어 vita consecrata는 봉헌생활회(수도회, 재속회) 회원의 삶을 뜻하며, ‘봉헌생활’이라고 하고,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하신다는 뜻에서 ‘축성생활’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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