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봉헌생활 토론

“본당 사제가 밤 10시에 밥 먹자고 하는데, 내게 거절할 권리가 없나요?”

본당에 파견된 한 수녀의 하소연이다. “신자에게는 갑, 사제에게는 을”이라는 말도 있듯이 권위적인 교회 구조에서 사제의 제안을 수녀가 거절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이런 수도자의 현실을 점검하는 자리가 열렸다. 광주대교구 남자, 여자 수도회연합회가 봉헌생활의 해를 맞아 16일 연 이 자리에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참여해 열린 토론을 했다. 광주대교구 옥현진 보좌주교는 “봉헌생활의 해를 주제로 열렸던 지난 심포지엄이 어렵고 학술적이라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했다”며 “한국수도회의 방향성을 찾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 16일 광주 염주동 성당에서 '봉헌생활의 '해를 맞아 토론회가 열렸다. ⓒ배선영 기자

최승희 수녀(사랑의 씨튼수녀회)는 “수녀들이 책임자(본당 사제)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기 때문에 본당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하며, “수녀들은 본당에서 존중받고 싶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최 수녀는 본당 사목에 갔다가 마이크를 잡았다는 이유로 일 년 동안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잠수를 탔던” 경험을 털어놨다. 사제보다 먼저 앞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른 교구에 있는 본당에 갔더니, 그곳 사제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수도회 카리스마대로 존재론적으로 사세요”라는 말에 무엇을 해야할지 난감했다고 털어놨다. 최 수녀는 이 본당에서 각 단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조정하는 등 사목협력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찾았다.

그러나 최 수녀는 모든 본당의 사제가 이 사제같지는 않다며, 본당 사제가 협력자로서 수녀의 역할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밤 10시가 넘어 밥먹자는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은 인권의 문제라며 이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옥현진 주교는 교구 사제들에게 최 수녀의 이야기를 꼭 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토론회는 열린 토론회라 패널 외에 객석으로도 자주 발언 기회를 줬는데, 한 수녀는 신학교에서 수도자에 대한 강좌를 한 학기라도 들으면 수도자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수도자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쓴 적 있는 이정주 신부(주교회의 홍보국장)는 제의방 정리, 꽃꽂이, 반주 등의 기능적으로가 아니라 존재론적 의미에서 수도자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역의 가난한 이는 누구이고, 지역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 등을 고민하며 교회에서 수도자의 존재의미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당 수녀가 본당 신부의 비위를 맞추고, 공동체 회장은 누가 되면 좋을지 등을 고민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덧붙였다.

이순성 신부(글라렛선교수도회)는 “순명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어긋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요청과 부탁으로 대하는 참 목자상을 제시했다. 또한 이 신부는 교회공동체에서 봉사직이라는 이유로 평신도에게 낮은 봉급을 주는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장상의 리더십에 대해 광주대교구 평협 나현식 회장도 보스는 명령을 내리면 당연히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리더는 그렇지 않다며, 리더의 명은 기쁜 마음으로 따르지만, 보스의 명은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리더인지 보스인지 잘 살펴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들 외에도 이날 토론회에는 서울대교구 정순택 보좌주교(수도자담당),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 김정용 신부(광주가톨릭대), 이은명 수사(천주의 성요한수도회), 노미용 수녀(까리따스 수녀회), 광주대교구 여성위원회 홍순덕 회장 등이 참여해 수도자의 정체성과 역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광주대교구 염주동 성당에 평신도, 수도자 5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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