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 25주년 맞아

한국 최초의 가톨릭 영성잡지 <영성생활>이 25년을 맞아 영성과 토착화의 관계를 새로이 조명했다.

<영성생활>은 1990년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가 시작한 영성전문 잡지로, 지금은 사랑의 씨튼수녀회에서 맡아 ‘도서출판 영성생활’에서 발간한다. 그동안 <영성생활>은 증거하는 삶, 기도생활, 가난, 권위, 몸과 마음, 여성 디지털문화, 리더쉽, 생태영성, 한국인의 심성과 영성, 고령화, 자본주의 등을 주제로 다뤘다.

<영성생활>의 편집위원은 여장연의 공식 후원과 개별 남자 수도회들의 협조로 남녀 수도회원들로 구성한다. 반년간으로서, 2월과 5월 년 2회 발간하며, 50호까지 나왔다.

3일 <영성생활> 은경축을 맞아 정동 작은형제회 수도원 성당에서 ‘한국적 영성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 3일 가톨릭 영성잡지 <영성생활> 25주년 기념으로 '한국적 영성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배선영 기자

이날 <영성생활>의 편집위원인 예수 수도회 최향선 수녀는 환영사에서 25년을 돌아보며 “<영성생활>이 수도자를 비롯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영성에 깊이를 더하는 역할, 그리고 한국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우리 문화에 토착화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 왔는지 성찰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 수녀는 <영성생활>이 그동안 다뤘던 주제를 나열하며, 문제의식을 심화시키고자 노력해 왔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국 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강석진 신부, 사랑의 씨튼수녀회 김승혜 수녀(서강대 명예교수)와 기쁨과희망 사목연구원 오민환 연구실장이 한국적 영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승혜 수녀는 유교, 도교, 불교, 무속신앙을 중심으로 한국문화 안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이 어떻게 토착화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

김 수녀는 우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에서 “다양한 민족이 복음화의 적극적인 주역으로 저마다 고유한 문화의 창시자며, 역사의 주인공임을 표명했다”며, 교황이 복음화를 토착화로 이해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복음이 각 문화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토양에서 자양분을 얻어 열매를 맺어야 비로소 복음화가 이뤄진 것”이라며 “따라서 복음화와 토착화는 다른 현상이 아니라 복음이 토착화되었을 때 그 민족이 복음화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수녀는 유교의 어진 인격과 어진 공동체의 비전, 모든 것을 때에 맞게 분별해서 실천하라는 맹자와 중용의 시중(時中) 사상을 천주교 신앙과 접목하면 좋겠다고 했다. 또 도교에서는 자연 속에 잠겨 있고, 남을 위해 일하면서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음덕을 중시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좀 더 동아시아적이고 경험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수녀는 무당의 체험을 편견 없이 들여다보면, 새로운 시각의 변화, 자아 소멸, 신령과의 일치, 자비의 실천이라는 종교적 체험의 모든 요소가 충족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속의 의례는 질병과 불상사와 같은 위기상황을 해석하고 원인을 물어서 그 상황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한국 영성의 그리스도교 토착화를 위해서는 한국인의 대중 신심에 깊이 뿌리박은 기복신앙을 이해하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예수의 산상설교(마태 5-7장)로 변화시킬 수 있는 영성의 안내가 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석진 신부는 순교자의 삶과 신앙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영성을 돌아봤다. 그는 순교영성이 “순교자가 박해를 당할 때, 죽음의 결과를 예상하면서 자신이 믿는 신앙의 가치를 따라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순교영성을 “벗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명을 내어 놓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삶”이라고 보았다.

강 신부는 조선시대 순교자들이 천주교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가진 동시에 조선의 문화인 ‘부모에 대한 효성’, ‘임금에 대한 충성’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순교자들은 삶에 대한 갈망, 부모와의 이별 등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딛고 순교를 결심했고, 예수를 충실히 따랐다.

기쁨과희망 사목연구원 오민환 연구실장은 영성가 최정숙 선생의 삶을 통해 진정한 한국적 영성의 길을 보여 줬다.

오 연구실장은 그리스도교 영성은 하늘나라 천사들과 교제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발견하는 하느님의 현존과 관계가 있으며, 그러므로 영성은 인간 삶의 현장에서 발휘되는 신앙의 실천이며 이웃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적 영성이 그리스도교의 복음적 삶을 한국이라는 구체적인 환경과 맥락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달려있다며, 최정숙 선생이 개화기, 일제시대, 제주 4.3항쟁,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떻게 영성을 실천했는지 보여 줬다.

▲ (왼쪽부터) 김승혜 수녀, 오민환 연구실장, 강석진 신부. ⓒ배선영 기자

최정숙 선생은 유관순과 같이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고문을 견딘 독립운동가였으며, 학생들에게 민족혼을 고취시키고,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였다. 스스로도 가난한 삶을 살면서 빈민구호사업을 벌였고, 사상범이었던 이력 때문에 수도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죽을 때까지 신앙을 간직하며 수도자처럼 살았다.

한편, 논평자로 나선 마리아의전교자 프란치스코수녀회 김영선 수녀(광주가톨릭대 교수)는 “그리스도교 영성이 지금 여기에 뿌리내려 한국적인 색깔을 입는다는 것이 버선을 신고 도포를 입고 미사를 드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국적 영성을 찾는 과정은 지금, 여기의 한국인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이를 위해 복음과 우리 현실, 곧 문화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하며, 곧 현재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화를 복음의 시각에서 거듭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논평자 서강대 오지섭 교수(종교학과)는 그리스도교가 ‘한국화’ 또는 ‘오늘화’ 되는데 걸림이 되는 요소로 ‘호전적, 배타적, 개종주의적 태도’를 지적하며 그리스도교가 한국의 상황에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배타성을 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