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변호사의 핵 이야기]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3일 뒤인 9일 나가사키에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올해는 원자폭탄 투하 70년째 되는 해이다. 그런데도 70년 동안 미국의 원자폭탄 사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에 대한 책임 추궁과 소송 제기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세계는 그동안 원자폭탄 민간인 피해자에 대해 무관심했는지도 모른다.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원자탄 투하가 잘못된 일이었고,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냥 역사 속으로 묻힐 수만은 없는 일이다. 당시에도 엄청난 희생이 있었고, 피폭된 생존자는 물론 그 후손까지도 평생 동안 고통과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방사선영향연구소는 2-4개월 안에 숨진 급성사망자만 해도 히로시마 9만-16만 6000명, 나가사키 6만-8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여기엔 조선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국 원폭피해자협회는 히로시마 5만, 나가사키 2만 명 등 총 7만 명이 피폭됐고 그중 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인 피해자가 많았던 것은 일제가 조선인 노무자들을 공장 등의 집단숙소에 살도록 했는데 그 숙소가 폭탄이 떨어진 중심지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원폭 1세대는 90퍼센트 이상 사망한 상태이며, 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원폭 1세는 2012년 기준으로 2663명이고, 국내 원폭 2세대는 1만 명으로 추정된다.

핵무기는 에너지, 열, 폭풍에 의한 파괴효과로 급성 사망자가 생긴다. 그리고 폭발 뒤 발생하는 방사성 낙진이나 잔류 방사능으로 장기간 피폭되면서 ‘지연영향’이 나타나고 각종 암, 심장병, 기형, 백혈병 등이 발생한다. 더군다나 방사능 피폭의 유전적 영향을 인정하는 학자들이 많으며, 원폭 2세대의 백혈병이 방사능 피폭에 따른 유전적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는 실증적 연구결과도 있다. 결국 핵무기 사용은 매우 광범위하고, 치명적이고 무차별적이며 세대를 넘어 장기간에 걸친 피해를 낳는다는 특성이 있다.

원자폭탄 투하 관계자들 여생을 후회로 보내

▲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의 폭발 모습.(사진 출처 = pixabay.com)
“수천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폭발하여 그 섬광(방사능)이 전능한 하느님의 영광인 하늘로 날아간다면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다.”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하며 오펜하이머가 한 말이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핵심 부서였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연구를 시작한 지 2년 만인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라는 암호명의 핵폭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러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여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보냈고 반핵주의자로 살았다.

당시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는 것을 승인하였던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 원폭 피해에 큰 충격을 받았고,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를 승인한 1945년 8월 9일 "한 나라 지도자들의 외고집 때문에 인구 전체를 없애야 하는 일이 생긴 데 대해 후회하고 있다"고 편지를 썼다. 아인슈타인 역시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 제조를 권유하는 편지를 쓴 것을 평생의 큰 실수라며 후회했다.

그리고 “핵무기 사용이 인류에게 미치는 파국적인 결과에 대한 깊은 우려”에서, 핵무기 확산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핵확산금지조약이 1968년에 체결됐다. 핵확산금지조약은 ‘핵의 비확산’, 핵무기 군비 축소, 핵 기술의 평화적 사용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한다. 189개국이 여기에 가입하였고, 핵보유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도 가입하였다. 한편 핵확산금지조약은 비핵국가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를 제조, 획득, 관리하거나 이양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는 반면, 핵 보유국가에 대해서는 핵무기 이양이나 개발지원만을 금지하고 있어, 불평등조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9년 4월 5일 오바마 대통령은 ‘핵무기 없는 세상의 평화와 안보 추구에 미국이 헌신할 것을 확신하고 이를 약속한다’고 하며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획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였다. 오바마는 이 일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오바마는 당시 프라하 연설에서 “미국은 핵보유국으로서, 특히 지금까지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핵보유국으로서 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막중하다”고 했다.

미국,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도덕적 책임’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미국은 핵무기확산 방지정책을 펴고 있고, 각종 조약 체결 등으로 핵실험도 금지하고 지구적으로 핵무기를 만들지도, 사용하지도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핵무기를 만들고 사용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후회를 한 바 있고, 다시 핵무기가 사용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국제법적 차원에서 핵확산금지조약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과거 핵무기 사용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도 이행되어야 정당할 것이다. 핵폭탄 공격에 대해 법률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도 핵무기사용의 금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단순한 ‘도덕적 책임’으로는 피해자들의 인권이 구제될 수 없음은 물론 핵무기 관련 조약들의 실효성도 확보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핵무기를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한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손해를 배상하는 조치를 위하여야 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피해자들의 고통과 인권을 정치적인 이유로 외면하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것이다.

▲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 나가사키의 모습.(사진 출처 = pixabay.com)

민간인 피해는 어찌할 것인가

미국 천주교주교회의는 2003년 3월 19일 ‘이라크 전쟁에 관한 성명’에서 “우리의 대량살상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에 맞서 방어하려는 모든 결정은 명백히 정당화될 수 없다. 대인 지뢰나 집속탄 등 군인과 민간인, 전시와 평화시를 구분해서 공격할 수 없는 무기들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에서 모든 군사 행동은 ‘부차적 민간 피해’가 감수할 만한 수준인지 판단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이라크 민간인들의 생명과 생계를 우리 가족이나 우리 국민의 생명과 생계와 동등하게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 핵무기만한 대량 살상 무기는 없으며, 핵무기 만큼 ‘부차적 민간 피해’가 따를 수밖에 없는 무기는 없다.

국제인도법은 수백 개의 조문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 원칙은 민간인 보호로, 무력 충돌의 당사자들은 민간주민과 민간물자의 보호를 위해 항상 민간 주민과 전투원을 구별하고 공격은 오로지 군사적 필요에 의하여 군사적 목표물에 대해서만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만큼 반인권적 전쟁수단은 인류 역사상 없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민간인 피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미국은 책임을 짐으로써 지구적 재발방지에 노력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김영희 변호사
재벌개혁과 소액주주운동을 주로 하는 경제개혁연대 부소장이며 4대강조사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법학교수,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진행한 주요 소송으로 새만금소송, 4대강소송, 제일모직 주주대표소송, 현대차 주주대표소송, 신고리 5,6호기 관련 소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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