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2014년 설문 조사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생명과 가정: 2014년 생명과 가정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보고서’를 단행본으로 펴냈다.

결과 분석에 따르면, 2004년에 실시된 1차 조사에 비해 미미하나마 교회 가르침에 대한 인식도가 높아졌다. 또 생명, 반생명적 행위 문제에 대해서는 비신자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교회 가르침에 따르는 인식 수준은 높았다. 조사 결과는 가톨릭 신자들과 신자 가정 역시 사회적 구조와 가치관 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질적, 양적으로 부족하다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2014년 한국갤럽연구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가톨릭 신자와 비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생명과 가정에 관한 의식 및 실태 조사’ 결과다.

조사 목적은 한국 사회의 신자와 비신자들의 생명과 가정에 대한 의식변화상과 현 상태를 조사해, 가정 사목과 교회 생명 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설정하는 기초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이다. 조사 결과는 지난 해 10월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 보고됐으며, 2014년 세계주교대의원대회 제3차 임시 총회와 2015년 제14차 정기 총회를 위한 준비 자료로 활용된다.

설문조사는 2014년 6월 16일부터 7월 25일까지 진행됐으며, 제주교구와 군종교구를 제외한 전국 교구에서 무작위 추출한 만 15살 이상 천주교 신자 1000명과 비신자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설문 내용으로는 가정생활, 혼인, 노인 문제, 청소년/자녀 교육, 생명, 성, 출산과 자녀관, 자살, 안락사, 사형과 같은 반생명적 행위, 신앙생활 등을 물었다. 조사는 구조화된 질문지를 바탕으로 한 일대일 면접조사로 진행됐으며, 표본 오차는 95퍼센트 신뢰 수준에서 ±3.1퍼센트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10년 전과 달리, 동거, 동성 결혼 합법화, 입양, 별거, 노인의 재혼과 경제활동, 사후 피임약 사용,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와 같이 세계주교대의원회 3차 임시 총회 예비문서에서 요청하고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질문이 포함됐다.

보고서에는 조사 결과의 사목적 의미에 대한 분석과 해설 그리고 이에 따른 사목적 제안도 함께 실렸다.

 

정재우 신부, "신자들의 신앙과 삶이 분리된 현실 드러나"
박문수 부원장, "교회가 중요한 사목적 쟁점 조사와 실천에 나선 것에 의미"
엄재중 상임연구원, "교회 모든 사목이 가정 사목 안에서 통합되어야"

우선 정재우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는 조사 결과를 통해 신자들의 신앙과 삶이 분리된 현실이 드러났다면서, 이에 따라 교회의 가르침을 수용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생명의 가치를 구체적인 각 사안에 적용하고 인식하는 데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성과 출산 조절에서 교회의 가르침과 큰 괴리를 겪고 있다고 봤다.

또 남녀의 성, 사랑의 의미와 가치 그에 따른 윤리적 방향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신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으며, 젊은이와 고학력자일수록 이런 성향이 높다고 분석하면서, 각 신자 가정에서 성, 사랑, 생명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정재우 신부는 “신앙이 구체적인 삶에서 실천되는 신념이자 가치관임을 고려하면, 현재 신자들의 모습은 신앙의 위기”라면서, “그럼에도 이 분야에 대한 교회의 교육이 일방적으로 금지하거나 죄라고 여기도록 주입해 준수,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규범의 맥락을 이해하고 납득하도록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문수 부원장(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은 “한국 사회의 가정생활 변화를 신자 가정도 그대로 경험하고 있으며, 신자들이 신앙을 통해 사회적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앙생활과 관련해서는 교회의 적극적인 사목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이 가능하다면서, 예를 들어 혼인성사나 혼인 준비 교육이 의무임을 강조하고 사목 현장에 반영하면 의식과 실천율이 모두 높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많은 신자들이 애초에 교회의 생명 가르침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판단이나 여론을 따르는 경향에 대해서는, “신자들의 가치판단에서 우선순위가 조정되어야 하고, 이는 신앙생활을 하는 근본 이유나 동기와 관련된다”고 밝혔다.

박 부원장은 이번 조사의 의미에 대해서 한국 교회가 중요한 사목적 쟁점에 대해 추세를 조사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실천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엄재중 상임연구원(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은 한국 교회의 가정 사목에 대해 현대 가정의 내적 조건과 외부 환경을 섬세하게 식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교회 내 모든 사목이 가정 사목 안에서 통합돼야 한다고 통합 사목적 관점을 요청했다.

그는 가정 사목을 위한 태도에도 전환이 필요하다며, “‘가정들의 가정’으로서 본당의 역할을 키우고, 본당 입장에서 가정을 볼 것이 아니라 가정의 입장에서 본당 사목 실천을 성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관련된 교육 역시 가정과 생명에 대한 원칙이나 의무를 강조했다면, 이제는 그 원칙이나 의무의 기반인 복음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재중 상임연구원는 특히 교회법적 장애, 물질적 가난 때문에 배제되는 가정을 교회가 끝까지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유한 신자들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부유층을 중심으로 사목 주체가 구성되고 운영되는 환경이 지속되면, 전반적으로 문화적 동일시를 이루기 쉽고 가난한 이들은 위축되고 시혜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교회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 내 심각한 문제로 '경제적 어려움' 꼽아
신자와 비신자 간 가장 큰 인식 차이, '생명의 시작을 어디로 볼 것인가'
가정과 생명 관련 교육 경험, 49.3퍼센트에 그쳐...
가장 따르기 힘든 교회 가르침은 '인공피임 금지'

각 항목별 조사 내용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살펴보면 우선 ‘가정생활’에서 ‘가족 구성원 만족도’는 천주교 신자(74.3점)가 비신자(72.0점)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가정 안의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신자(55.7퍼센트)가 비신자(49.5퍼센트)보다 높았다. 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모두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답했으며, 이 역시 비신자가 더 심각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인’과 관련된 조사에서 ‘동거 생활 가능 여부’에 대해 ‘가능하다’고 답변한 비율은 비신자가 신자보다 10퍼센트 가량 높았다. 동성 결혼 합법화와 동성 간 결혼 시 입양 찬반 여부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해서는 신자(13.4퍼센트)와 비신자(14.8퍼센트)가 찬성했고, 입양 여부는 천주교 신자(20.0퍼센트)와 비신자(19.3퍼센트)가 각각 찬성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연령대가 낮을수록 찬성 의견이 많았다.

결혼관은 신자와 비신자 모두 10명 중 3명이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꼭 해야 한다는 의견은 10명 중 2명으로 나타났다. 이혼에 대해서는 천주교 신자는 상대적으로 이혼을 반대하는 의식이 강하게 나타났고, 자녀 여부와 사안에 따른 이혼 결정에는 신자(59.8퍼센트)보다 비신자(71.5퍼센트)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혼의 주된 원인은 성격차, 경제 문제, 시댁이나 처가와 갈등, 배우자의 무관심 순으로 나타났다.

‘노인 문제’에서 거주 형태와 재혼 찬반 여부는 응답자의 과반수가 자녀와 노부모가 따로 살기를 바라며, 부모의 재혼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이상 노인의 재혼 찬성율은 신자(66.1퍼센트)가 비신자(61.9퍼센트)보다 다소 높았다. 또 60세 이상 응답자 가운데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비율은 신자(51.8퍼센트)가 비신자(61.0퍼센트)보다 낮았다. 노년 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건강’이며, 노인 10명 가운데 2명이 자녀와 갈등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및 자녀 교육’ 항목에서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신자와 비신자 모두 90퍼센트 이상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신자가 약 2퍼센트 낮았다. 청소년 탈선 원인으로는 가정교육을 주로 꼽았지만, 2004년 대비 사회적 환경이나 개인 인성 문제로 응답한 수는 증가했다. 사교육은 10가구 중 8가구가 하고 있으며, 90퍼센트 이상이 가계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또 19세 이하 청소년 4명 가운데 1명이 가출을 고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신자 비율이 비신자보다 1.6퍼센트 높았다. 신자 청소년들의 가출 고려 이유는 부모님과의 마찰이 가장 많았으며, 삶에 대한 회의, 충동, 학업 스트레스 순이다.

신자와 비신자 간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것은 ‘생명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볼 것인가’다. 생명 판단 시점에 대해 ‘수정된 순간부터’라는 응답 비율이 가장 높지만, 신자(51.5퍼센트)와 비신자(39.6퍼센트)로 격차를 보였다. 전반적으로 신자들이 자살, 임신중절, 시험관 아기, 안락사, 사형제도 등에 대해 반생명적 행동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높다.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 찬반에서도 신자들은 55.8퍼센트가 반대했고, 비신자는 43.6퍼센트가 반대했다.

‘성’ 문제와 관련해 혼전 성관계에 대해 10명 중 7명이 가능하다고 인식했지만, ‘이유와 상관 없이 혼전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신자가 비신자보다 약 10퍼센트 높아 상대적으로 엄격한 태도를 갖는다. 외도에 대해서도 ‘이유와 상관없이 외도를 해서는 안된다’고 응답한 비율도 신자가 비신자보다 10퍼센트 높은 82.4퍼센트다. 또 성 상품화에 대해서는 신자, 비신자 모두 90퍼센트 이상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으며, 간통죄 처벌에 대해서도 80퍼센트 이상이 찬성했다.

‘출산과 자녀관’에 대해서는 ‘자녀를 꼭 낳아야 한다’는 응답이 모두 약 40퍼센트였지만, 2004년 대비 10퍼센트 가량 줄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자녀관에서도 남아선호 사상이 사라졌음이 나타났으며, 출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적 이유’였다. 낙태에 대해서도 신자가 보다 엄격하게 반대했으며, 신자들은 피임이나 사후 피임을 낙태와 같은 의미로 인식하고 있다.

‘자살’에 대해서도 신자와 비신자 간 차이를 보였다. ‘자살을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다’고 답변한 비율은 신자(9.1퍼센트), 비신자(13.9퍼센트)의 차이를 보였다. 연령대 별로는 10대가 자살을 할 수도 있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자살 고려 이유로는 신자들이 삶의 의미 상실과 회의를 가장 높게 든 반면, 비신자는 생활고와 경제 문제를 가장 많이 꼽았다.

‘안락사’의 법적 허용에 대한 천주교 신자와 비신자의 인식차이 또한 컸다. 안락사의 법적 허용에 반대하는 비신자는 12.1퍼센트인 반면, 신자들은 25.7퍼센트가 반대했다. 사형제도는 신자가 10명 중 5명, 비신자가 7명의 비율로 찬성했다. 또 생명 존엄성 회복을 위한 운동은 종교와 상관없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유아세례와 혼인성사, 자녀 관련 등 신앙생활과 관련한 천주교 신자들의 인지도는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유아세례는 신자의 절반 정도가 꼭 받아야 한다고 답했으며, 혼인성사에 대해서는 31.5퍼센트가 사회혼만으로 결혼 성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가정 기도와 미사’ 관련, 매일 또는 1주일에 2-3회 가정 기도를 드리는 신자는 10명 중 2명이었다. 가정생활 관련 강의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 본당은 52.5퍼센트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강론’이라고 답했다. 가정과 관련된 수도자, 사목자의 역할 가운데 이뤄지는 것은 주로 사목자와 면담이 주를 이루며, 가정문제가 생겼을 때, 본당의 도움을 받았다고 답한 것은 16.3퍼센트에 그쳤다. 생명과 가정 관련 교육을 본당이나 교육기관에서 받은 신자는 43.9퍼센트로 절반이 되지 않았다.

교회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을 따르는 것에 대해 신자 3명 중 2명은 “따르기 어렵거나 상황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가르침은 ‘인공피임 금지’(44.9퍼센트)로 나타났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