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입춘이 지나 우수가 다가온다. 곧 을미년이 실제로 시작되는 설이다. 마음은 벌써 봄인데 아침저녁으로 조금은 쌀쌀하다. 때 맞춰 봄 상품을 준비하는 백화점은 겨울옷을 대거 방출하는데, 개구리들도 다가올 경칩을 준비하고 있을까? 벌써 산개구리들은 알을 낳았다는데, 산비탈에서 흙탕물이 쏟아지지 않아야 한다. 변산바람꽃과 복수초가 잔설을 뚫고 꽃망울을 터뜨렸으니 땅이 풀리기만 기다리던 산비탈과 등성이의 산풀과 들풀의 씨앗도 머지않아 새파란 새순을 내놓을 것이다.

올겨울은 시작부터 유별나게 추웠다. 12월에 영하 10도 이하로 곤두박질치며 매서운 겨울을 예고했는데 웬걸, 정작 1월 이후 얌전했다. 어느새 입춘이 지나고 봄비가 내릴 테지. 추위가 물러나니 백화점마다 방출할 겨울옷에 관심이 가지 않는데, 을미년의 계절은 흐름이 순조로울까? 순조롭지 못하면 기존 생태계에 적응된 생물들이 혼란스러워한다.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나뭇가지의 애벌레 알이 제때 부화하지 못하게 한다. 봄꽃과 산새들도 꽃 피우고 짝짓는 시기를 놓친다.

외래종이 자리잡은 이유, 우리 생태계의 혼란

생태계가 혼란스러워지면 외래종의 침투가 쉬워진다. 우리 생태계가 불안정하게 된 이후 중국에서 넘어오는 주홍날개꽃매미가 성가시게 되었다. 생태계가 안정되었을 때 날아왔던 주홍날개꽃매미는 정착할 터전이 없었을 것이다. 수입곡물이나 목재에 섞여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돼지풀과 미국자리공이 우리 산하 곳곳에 뿌리내리고, 소나무에 재선충이 확산되는 현상은 우리 생태계가 그만큼 파괴되고 단조로워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강과 시내의 흐름이 댐과 농사용 저수지로 차단되지 않았다면 황소개구리를 비롯해 배스와 블루길이 지금처럼 넓게 퍼졌을 리 없다.

▲ 주홍날개꽃매미(왼쪽, 사진 출처 = ko.wikipedia.org), 블루길(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생태계가 가장 잘 보전된 곳은 아무래도 국립공원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자연유산인 국립공원에도 외래종이 점점 늘어난다. 가로수가 없어도 될 국립공원의 아스팔트도로 가장자리에 일률적으로 심어진 중국단풍을 지적하는 건 아니다. 농사를 오래 짓던 공간에 침투하던 외래 식물들이 공원 구역 안에서 등산로를 따라 늘어나는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이용객이 물밀 듯 늘어나면서 외래종이 침투하는 자리가 커지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국립공원도 임도가 문제의 중심으로 지목된다. 안정된 산허리 생태계를 이리저리 휘감아 끊은 공간에 외래종이 일단 침투하면 여간해서 뿌리 뽑히지 않기 때문이다.

산불이 나면 신속히 조치를 취하려는 목적으로 전국 곳곳에 만든 임도는 사실상 우리 생태계를 곳곳에서 훼손한다. 자연스런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인력으로 끄지 않아야 한다는 학자가 있다. 산불이 나야 생태계의 활력이 유지된다는 학술적 원칙이다. 그러나 자연스런 발화보다 요즘처럼 바싹 마른 계절에는 산을 오르는 사람의 실수로 산불이 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므로 임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산림 대부분이 계획적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임도가 필수라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임도 자체보다 임도를 내고 관리하는 방식에 있을 것이다.

골프장 연결 아스팔트와 임도, 생태계 훼손의 원인

요즘 임도는 외래식물의 온상이다. 산허리를 깎으며 휘감는 도로의 파헤쳐진 비탈면에 외래식물의 종자를 뿌리기 때문이다. 빗물로 인한 침식을 예방하려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외래 잔디의 씨앗을 파종하면 고유 생태계는 그만큼 단절되고 훼손된다. 오랜 생태계에 어우러지며 다양성을 유지해 왔던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 뿌리내린 외래종이 고유종의 접근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골프장을 난폭하게 잇는 아스팔트와 더불어 외래종을 유입하는 임도는 오랫동안 안정되었던 금수강산의 생태계에 혼란을 가중시킨다. 고유 생태계를 따라 이어지던 동식물의 분포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미생물은 물론이고 다채로운 버섯이나 곰팡이, 원생생물, 이끼류가 분포하며 수천 종의 식물과 산새와 포유류가 안정된 생태계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여러 이유로 혼란스럽다.

그 상황을 반영한 것일까? 산림청은 2010년 11월 ‘사방사업의 설계, 시공 세부기준“을 마련해 공포했다. 공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산허리의 생태계가 파손돼 비탈면이 생기고, 그 자리의 식물을 제거하고 새로운 식물을 파종할 경우에, 그 기준은 지침이 된다. 산림청은 공사를 담당하는 업체와 담당자에게, 홍수로 비탈면의 토사가 아래로 쓸려 나가지 않도록 식물을 도입해야 한다면, 외래식물의 파종을 삼가 줄 것을 요구하는 고시 규정을 알린 것이다.

▲ 돼지풀(왼쪽,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미국자리공(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산림청의 감리 감시가 우리 생태계 붕괴를 막을 것

산림청 고시는 주변 지역 풀씨의 도입을 강력히 권유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 수입 종자와 수입한 식물에서 채종한 종자의 취급을 금지한다. 최선의 생태적 복원을 요구해야 그만큼 생태계의 혼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현장에서는 외래종의 씨앗을 함부로 뿌린다. 예산이 부족한 것은 아닐 텐데, 감리와 감시가 허술할 걸까? 심지어 산림청이 담당할 임도도 예외가 아닌 탓에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의 생태계는 날이 갈수록 단절되고 생물상은 그만큼 단조로워진다.

임도와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마찬가지로 고압 송전탑 주변의 비탈면도 빗물에 쓸려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식물 씨앗을 포함하는 흙 포대를 안전하게 포개어 사태를 예방하는 사방공사가 수행되지만 외래종을 도입했다면 그 지역은 생태계의 안정이 크게 흔들렸을 것이 틀림없다. 사방공사로 도입한 외래식물이 주변 생태계와 어우러지지 못하고 사라지더라도 문제다. 산림청이 고시를 작성하며 요구한 비탈면의 생태적 복원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지역이 전국 산림에 흩어진 만큼 우리 생태계는 허약해진다.

해빙기를 맞으면 도시의 축대와 더불어 안전하지 못하게 시공된 산간도로의 비탈면이 무너질 수 있다. 불필요한 임도는 자연 생태계에 되돌려 줄 필요가 있지만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면 산림청이 고시한 조항 그대로, 우리 생태계에 어울리는 고유 식물 씨앗으로 비탈면을 복원해야 한다. 우수를 지나면서 산록의 잔설이 녹기 시작할 것이다. 생태계 보전과 재해를 담당하는 중앙과 지방정부 담당자들은 여름철 큰비가 내리기 전에 외래종의 온상이 된 우리 산하를 살펴야 한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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