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9일, 이르면 내년부터 병역기피자들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내용을 담은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성범죄자들에게 하듯이 사회에 신상을 까발려 병역기피를 근절하겠다는 법안이다. 애초에 제출된 원안은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이들이 대상이었다. 일부 특권층의 병역기피가 문제가 되자 내놓은 법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형평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국내의 병역기피자들까지 포함하도록 개정되었다. 이에 따라 종교적, 정치적 병역거부자들 또한 신상공개 대상에 포함되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이 번복된 뒤에 병역기피자 신상 공개까지 왔다. 병역거부자로 살면서 느끼는 벼랑 끝의 낙차가 참 크다. 인터넷에 신상 공개라니.

취약한 자들에게만 잔혹했던 병역기피 단속

징병제의 역사는 병역기피의 역사이기도 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뚝 떼어 내 수년 간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야 하는 군 생활이 마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 이 땅에서 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은 문제없이 병역을 기피할 방법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들은 병역이행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신성한 병역"이라는 환상이 깨지면 병력동원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따라서 국가통치자들은 병역기피자들에 대한 단속을 공언해왔다.

그러나 막상 붙잡히는 병역기피자들은 박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부류와 달랐다. 과거 기록에 나타난 병역기피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일례로 1958년 3월에 국방부가 대대적인 단속을 펼쳐 붙잡은 병역기피자들은 항문에 독초를 바르거나, 눈에 담배가루를 넣거나, 귓속에 비눗물을 넣어서 면제 처분을 받았다. 애초에 ‘빽’을 써서 병역을 기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단속을 펼쳤지만, 막상 단속에 걸린 이들 대다수는 이와 같았다는 것이다.

1957년을 계기로 한국에서 병역기피자에 대한 단속은 특히 강화되었다. 이 해 개정된 병역법 제1조에 “국민개병제도를 실시”하겠다는 목적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 이전에도 국민개병제도였지만, 이때부터 법조항에 국민개병제를 적어 일부러 강조한 것이다.

병역기피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국민개병제도를 새삼스레 강조하게 된 배경에는 병역이행자들의 커다란 불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승만 정부는 6.25전쟁 중 72만 명까지 늘어난 국군의 규모를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했다.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내세웠지만, 의원들이 72만이라는 숫자가 산출된 ‘과학적 근거’를 물으면 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병력을 줄이면 미국의 원조도 줄어든다며 병력문제를 거론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할 뿐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대규모의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병역이행자들의 제대를 무한정 연기했다. 1957년 당시 40만 명이 넘는 사병들의 전역이 한없이 미뤄지고 있었다. 병역이행자들이 불만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제대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면서 국민개병 완전 실현을 요구했다. 이들은 당시 고등학교 이상 재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게 했던 학생 입영연기제도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은 전쟁 중에 징집을 피할 수 있었으며, 졸업을 늦추면 고령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상 제대를 해도 먹고 살 길이 없었다. 정부는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800여 명의 제대자를 우선 채용하였다. 그러나 10-20만 명의 제대자 규모를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모두 수용할 능력은 없었다.

이에 따라 여론에 균열이 생길 것을 우려한 정부가 국민개병제를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병역법 초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게다가 학생뿐만 아니라 생계부양자와 독자 등에게 배려되었던 연기제도 자체를 모두 폐기해 버렸다. 병역이행자들의 분노가 자신을 향하지 않기만 바랐던 정부는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이승만 정부는 입만 열면 특권층의 병역기피를 근절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단속되었다고 보도된 사례들은 대부분 이름나지 않은 "일반인"이었다. 더욱이 생계부양자와 독자 등에게까지 연기제도를 박탈하여 큰 문제가 발생했다.

친척 없이 부인도 일찍 죽어 세 아이를 혼자 키우던 아버지가 군대에 끌려가자 아이들이 매일 밤 울면서 아버지를 찾더라는 사연, 병원 수위로 힘겹게 살아가던 노부가 병석에 눕게 되자 군대에 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병역을 기피했다는 반성문 등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투고에서 정부의 손쉬운 해법이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느낄 수 있다.

▲ 2011년 5월 16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대체복무제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소송 관련 기자회견 중 전쟁없는 세상 회원들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사진 제공 = 전쟁없는 세상)

실종된 책임윤리, 잔인하지만은 않기를

이번에 국회에서 인터넷에 병역기피자의 신상을 공개하도록 만드는 법안이 통과하는 것을 보면서 느꼈던 무책임함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별다른 방도 없이 시키는 대로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고위공직자의 청문회를 통해 다른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이따금씩 깨닫곤 한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집 자제들이 이상하게도 몸이 아파 군대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병역이행자들이 호소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그래서 정당하기까지 하다.

처음 개정안을 내놓았던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은 이러한 박탈감 때문에 인터넷 신상공개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 체류하면서 여러 방법을 통해 귀국을 하지 않는 이들은 특권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대상이 모든 병역기피자로 확대되었다.

병역이행자들의 박탈감을 달래 보려는 비슷한 시도는 야당 의원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특권층의 병역이행을 중점 관리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특권층에는 ‘고위공직자 및 직계비속 그리고 연예인, 체육인’이 포함되었다. 고위공직자와 함께 연예인, 체육인이 특권층으로 분류된 것은, 지난 5년 간 병무청에서 적발한 병역기피자 119명 중 이들이 55명으로 절반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깊은 함정이 있다. 지난 7월 17일 국회에 출석한 김환식 병무청차장은 병역을 기피하는 체육인들의 성격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체육인은 거의 1부 리그에서는 별로 유혹을 안 받습니다. 상무를 가든 어디를 가든 충분히 자기가 활동하는데 문제는 마이너리그에 있는 애들이 문제입니다. 전부 이쪽 애들이, 군에 가면 자기 인생이 끝나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의원들이 병역이행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달래기 위해 중점관리하기로 했던 병역기피자들이 사실은 특권층이 아니라는 증언이다. 지난 5년 동안 적발된 병역기피자의 절반이 연예인, 체육인이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마이너리거’였다. 정환식 차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군대 가면 죽는 애들"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인터넷에 신상이 공개될 병역기피자들 중 상당수가 “군대 가면 죽는 애들”일 가능성이 높다.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음에도 신상 공개를 해서라도 해외 체류 중인 특권층의 도덕적 해이를 잡아 보겠다는 취지에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는 선한 동기로만 평가받을 수 없다. 결과에도 책임을 지는 정치인들의 책임윤리가 실종되어버렸다. 228명 찬성에 1명 기권으로 통과되었다니....

이 법안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 인터넷에 신상 공개를 한다고 해외에 있다고 하는 ‘진정한’ 특권층들이 들어올까? 정으로 찍을 것을 오함마(해머)로 내리치는 꼴이다. 선거 때 사병 월급 현실화를 공약했던 여당은 병역이행자들에게 월급을 주는 대신에 기피자들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야당은 만장일치로 신상공개를 환영해 주었다. 이처럼 무책임한 처사는 왜 자꾸만 반복될까?

한국의 병무 관리는 이처럼 병역 포퓰리즘에 기대어 왔다. 국가의 행정력은 지배엘리트의 특권을 그다지 건드리지 못하면서 병역기피자들에 대한 사회적 분노에 의지해 온 셈이다. 그 과정에서 생계부양자와 종교적, 정치적 병역거부자 등이 희생되어 왔다. 이번 법안 역시 너무나도 전형적으로 무책임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신상 공개를 하겠다는 이들은 지방병무청이 주관하는 소명 절차를 마련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법안 때문에 여러 ‘마이너리거’들이 취조를 받듯 자기 꿈을 변호해야만 할 것이다. 잘나가지도 못하면서 왜 계속 포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해야만 신상을 까발리지 않겠다는 권력은 얼마나 잔인한가. 평화를 위해 총을 들 수 없다며 병역을 거부할 병역거부자는 이 법안으로 인해 구속뿐만 아니라 신상공개까지 당하는 이중의 처벌을 받게 되었다. 이 시대의 지배엘리트들이 무능력해도 잔인하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백승덕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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