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요즘 기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널리즘을 잊은 언론의 행태에 실망한 나머지 생긴 말입니다. 이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언론에 대해 성찰하고 우리나라와 국제사회 전반의 문제를 깊이 있게 살피고자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의 칼럼을 매월 둘째 주 목요일에 싣습니다. -편집자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취임 2년을 넘기면서 두 번째로 열린 그 귀한 기자회견-이 알맹이도 없고 재미도 없이 참 지루하게 끝났다. 기자회견을 하는 대통령이나 회견장에 나온 청와대 출입기자들이나 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인지 그 목적이나 의미를 무겁게 생각해 본 사람들인지 묻고 싶은 회견이었다.

민주공화국인 나라에서 주권자는 국민이다. 대통령은 5년 임기 동안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직무를 수행하는 수임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대통령이 백성을 다스리는 제왕 같은 인상을 준다. 대통령은 선거운동 때 유권자들에게 국정을 어떻게 운영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므로 그걸 믿고 투표한 국민들에게 수시로 약속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다고 보고할 의무가 있다. 국민으로서는 자기가 뽑은 대통령이 공약한 약속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다. 기자회견은 이런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리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1년에 겨우 한 번 꼴로 대국민 회견을 했다. 역시 불통 대통령답다. 자기를 뽑아 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통령은 아무리 권력이 막강해도 제왕은 아니다. 국가권력의 수임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권력은 우리를 벗어나려는 탈출벽이 있다. 이것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언론의 감시견 역할이다. 그런데 이념적으로 친보수 친기업이라는 공통인자를 가진 권력과 언론은 유착할 가능성이 많다. 실제로 박 정권과 보수언론은 진보진영을 공격하는 무기로 매카시즘을 사용해서 마녀 사냥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언론의 탈을 쓴 정치선전 매체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껍데기 민주주의로 전락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언론자유와 권리는 언론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지 그 역(逆)은 옳지 않다. 우리는 언론을 말할 때 흔히 언론의 자유를 앞에 두고 의무에 해당하는 언론윤리는 뒤에 둔다. 그러나 언론자유나 권리는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인정된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지금 세계 언론윤리의 모델인 “뮌헨 헌장”을 “언론의 의무와 권리에 관한 선언”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1971년 독일의 뮌헨에서 회의를 가진 유럽언론인협회가 채택한 뮌헨헌장은 국제기자협회(IFJ)가 채택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론인 조직들이 채택하고 있는 언론윤리 철칙이다.

뮌헨헌장은 사건을 취재하고 기사와 논평을 쓸 때 강조하는 첫 번째 의무가 본인이나 사회에 미칠 결과를 개의치 않고 진실을 추구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이런 정신으로 정권이나 권력자를 감시하고 비판한다. 그러니까 '종북'이나 매카시즘 같은 이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도 질문에 나선 기자들이 이런 정신으로 박 대통령의 불성실한 답변을 물고 늘어졌더라면 대통령에게도 좋은 자극이 됐을 것이고 회견 내용도 더 충실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세칭 보수언론은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불법 선거운동이 불거졌을 때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비호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불법 선거운동을 법에 따라 수사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그를 혼외자가 있다는 구실로 자리에서 몰아내려는 권력의 음모를 적극 방조하고 끝내는 그를 "찍어 내고" 결국 불법선거 수사를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것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천주교 사제들의 불법선거 규탄 미사는 종교의 정치개입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사진 출처 = 1월 15일자 민언련 홈페이지 갈무리

불법선거에서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조작한 사건으로 드러난 탈북자 간첩사건을 다룰 때도 국정원의 증거조작을 기사로 방조하는 수치스러운 행위를 감행했다는 공격을 받은 신문들도 있다. 정상적인 언론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렴치한 행동이다. 한국 언론사에 수치스런 기록들을 남겼다. 젊은 기자들이 스스로를 "기레기"(기자 쓰레기)라고 자조하는 부끄러운 현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이 부끄러운 언론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전두환의 유혈정권 아래서도 굴하지 않고 바른말 하는 언론을 만들어 온 용감한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과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조선투위가 아직 살아 있다. 동아투위와 조선투위로서는 금년이 특별한 해다. 중앙정부부의 광고탄압과 박정희의 언론탄압에 맞서다 독재정권의 폭력에 의해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강제 해직된 130명의 기자, 피디들이 금년에 언론사 강제추방 4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20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동아투위는 반독재 언론자유 투쟁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언론인의 의무를 너무 충실히 한 대가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언론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세계 언론사에 남을 대장정의 투사들이다. 동아투위, 조선투위, 민언련뿐 아니라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뉴스타파 등 언론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참 언론인이 있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자유 투쟁의 전망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생각이다. 민주시민이 힘을 보태면 투쟁이 승리할 전망은 그만큼 더 밝아질 것이다.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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