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세월이 하 수상하다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가 버리는 느낌입니다. 나이는 들면 들수록 빨리 흐른다는 말도 있는데 이 둘이 겹치니 속도가 더해지는 걸까요?

그리하여 어느 새 다시.... 대림절이 코앞입니다. 아시다시피 대림절은 전례력(전례주년)으로 치면 한 해의 시작으로 간주됩니다. 스토리 전개상 하느님께서 이 땅에 오심, 즉 그분의 탄생으로 갑자기 시작하면 순환구조를 가지는 이야기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속풀이 답은 안하고 딴청 부리는 것 같아도 인내를 가지고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

예수님의 생애를, 그분 탄생으로 시작하는 기승전결의 이야기로 꾸며 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분의 탄생을 시작으로 공생활,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로 정점을 이루고, 주님께서 승천하신 뒤 이어서 오시는 성령을 통해 우리는 계속 주님과 일치하며 살도록 일상에서 지속적인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일상이 이어지다가 종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전례력의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전례력의 마지막 부분에 종말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고는 하나 신앙인들에게 그 분위기는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올, 이 세상의 마지막은 동시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때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곧 믿는 이들에게는 기쁨이 될 것이고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선적으로 끝나 버릴 이야기라면 좋겠지만, 반복되는 계절의 변화처럼 반복되는 전례력 안에서는 예수님의 삶과 우리의 신앙생활도 순환 구조를 갖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종말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그분의 '다시' 오심은 훗날 다시 오실 그분만을 의미하지 않고 인간이 되어 오셨던 역사적 구세주의 탄생 사건 역시 준비하고 기다린다는 의미가 중첩됩니다.

만약, 종말의 때만 강조된다면 구원 사건의 전개상 너무 거칠고 비약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는 셈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때에 대한 독서와 복음을 들려주었는데, 갑자기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라고 하는 것은 당혹스러워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중시기를 마감하며 '마지막 날'을 전하는 분위기와 예수님 탄생 사건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두 사건을 연결시켜 줄 기간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주님(재림하실 구세주)과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는 주님(이미 오신 구세주)이 보여 주는 중첩된 이미지를 우리는 대림시기 동안 묵상하며 예수님 탄생을 준비하고 기다립니다. 이 기다림의 기간이 곧 대림입니다.

대림시기에는 사순시기처럼 고행과 극기, 자선을 강조하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는 고행, 기도가 강조되었던 때도 있습니다. 전례적으로 대림기간의 엄숙함을 보여 주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대림기간 동안에는 주일미사에서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으로 시작하는 대영광송이 불리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제대초.(사진 출처=commons.wikimedia.org)

그리고 그 장엄함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대림시기 주일미사 때 제대 위에 놓인 초의 개수입니다. 즉, 전례적으로 제대에 놓일 수 있는 초의 최다 개수는 여섯 개(좌우 세 개씩)입니다. 주교가 미사를 집전할 때는 주교초(제대 초보다는 가늘고 작습니다)를 하나 더 놓는데, 그것은 주교에게 예를 갖추는 전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교가 보통 연세 있는 분들이라 눈이 침침해서 경본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실제적으로 그 문제를 좀 해소해 보고자 주교초가 등장했다는 것이 배경적인 설명입니다. 아무튼 그것까지 치면 일곱 개가 최다입니다.

초가 여섯 개 놓이는 경우는 대축일이거나 마찬가지 수준(1급)에 있는 주일입니다. 그 다음 좌우 두 개씩 네 개가 놓이는 경우가 축일 반열(2급), 평일과 기념일(3급)에는 좌우 하나씩 두 개가 놓입니다. 그래서 제대에 놓인 초의 개수는 시각적으로 그날의 미사가 얼마 만큼의 중요도를 지니는지 보여 주는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가난한 공동체에서는 초의 개수가 종종 무시되긴 하지만, 전례적으로는 참고할 만합니다)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대림기간의 주일은 1급에 속합니다. 초가 여섯 개 놓이는 것이 원칙이며,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1급에 속해서 초를 여섯 개 놓을 경우는, 일단 '대축일'이란 말이 들어가는 날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파스카 삼일, 예수 성탄, 주님 공현, 주님 승천, 성령 강림 대축일, 그리고 대림시기 주일들, 사순시기 주일들, 부활시기 주일, 재의 수요일, 성주간 월-목요일, 팔일 축제(성탄 팔일, 부활 팔일 축제) 기간의 미사 등이 그 예입니다.

2급에 속해서 초를 네 개 놓는 경우는, '축일'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날입니다. 그리고 성탄시기와 연중시기의 주일도 2급으로 분류됩니다.

3급으로 초 두 개가 놓이는 때는 '기념일'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날이고, 연중 평일미사도 같은 급에 속합니다.

전례봉사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전례지침서에 따라 이런 구분은 잘 하고 계실 것입니다. 전례에 관한 것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라면 주일미사에서 초의 개수를 참고로 그날이 대축일 급인지, 축일 급인지, 기념일 급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중요하지 않은 미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미사가 지니는 의미는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에 따라 신자들이 좀 더 마음을 기울이도록 초대하는 미사와 전례적인 시기가 있습니다. 그것을 초처럼, 제대를 꾸미는 전례적이고 장식적 요소를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아셨다면 앞으로는 좀 더 흥미롭게 미사에 참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다가오는 대림기간을 설렘과 진지함으로 잘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원(경기도 가평 소재) 운영 실무
서강대 '영성수련'  과목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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