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 듯 가족 아닌

유가족 천막에서 지내기 시작하자 누가 유가족인지 아닌지 모르는 봉사자들은 잠시 쉬려고 천막에 들어간 나를 가족으로 착각하곤 했다. 의료진이 들어와서 어디 아픈 데 없냐, 세탁봉사자가 들어와서 모아갈 거 없냐고 물어보는 통에 결과적으로 유가족 행세를 하는 셈이 되어 내심 재미있으면서도 살짝 죄송했다.

진도체육관은 갈 때마다 오늘은 누구랑 대화하게 될지 몰라 나름 부담감을 안고 간다. 그날은 고 유니나선생님의 아버님이 체육관 밖으로 나오셔서 말을 나누었다. 글을 쓰는 지금은 발견이 되어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때만 해도 실종자 발견이 많이 늦어질 거라는 말씀을 담담히 하시던 아버님이었다.

실종자 가족의 두려움

▲ 진도 팽목항의 밤바다.ⓒ현우석
사실, 실종자 가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시신이 훼손되는 것과 발견 가능성이 점점 낮아져가는 것이었기에 그 얘기를 담담히 하시는 마음이 어떠시냐고 여쭈었다. 아버님은 ‘얼마나 속이 답답하면 내가 그런 얘길 하겠냐’ 하시는데 당시 내게는 아버님의 표정이 춥고 어두운 바다처럼 보였다. 대화를 좀 더 나누다가 이만 들어가신다기에 헤어지는데, 가족들이 밖에 나와 계시던 아버님을 찾으러 나왔다. 난 그들이 몇 마디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나중에 따님인 유 선생님의 가족 얘기를 기사로 읽었는데, 40일째 언제 나올지 모르는 고인을 기다리던 고통스런 시간 가운데서도 가족들 간에 어떻게 그런 따스한 미소를 볼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시 팽목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가족천막에 불이 꺼져 있었다. 아무도 있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며 혹시 밤 등대 길에 나가 바다를 하염없이 보고 계신 것 같아 그쪽으로 가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어 다시 돌아와 보니 봉사자가 내게 말했다.

"여기 가족 분들은 5호실로 가셨습니다.“

당시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들었던 순간적인 감정은 일종의 '버림 받았다'는 느낌이었다. 머리로는 같은 천막에 지냈던 가족들이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안다 하더라도 내게 거처를 옮겼다는 연락을 해 줄 의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결국, 100여 평 되는 천막에서 혼자 자는 두 번째 밤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첫 번째의 나만 빼고 야식을 먹으러간 사건(?)보다는 충격이 덜 했지만, 여전히 잘 안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는 충분했다.

환대와 단답 사이

다음 날, 민지 아버지가 즐겨 피는 담배를 몇 갑 사들고 문제의 5호실로 찾아가며 슬쩍 걱정을 했다. 별로 반가워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혹은 ‘또 왔네’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하며. 그러나 어서 들어오라고 반기는 인사를 들으며 작은 기쁨과 함께 괜히 걱정했구나하는 생각이 그 짧은 순간에 들었다. 나름 환대를 받으니 짐짓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물어보지도 않은 어젯밤 얘기를 꺼내며 민지 엄마, 아빠에게 버림받은 줄 알았다고 괜스레 너스레를 떨어 보았다.

빙긋이 웃으시는 두 분....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민지 엄마는 여전히 말을 건네도 단답으로 끝나고, 민지 아버지 역시 거기서 거기였다. 민지 아버지의 여동생이 계속 함께 하고 있었는데 한 번은 혼자 계시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름 편하게 나누었다. 하지만, 그 분도 다 같이 있을 땐 별로 도움이 안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찬민이 아버지나 웅기 아버지처럼 산책 나가자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권유라도 해 볼 걸’하는 후회(?)가 든다.

그렇게 길지 않은 5호 방문이 끝나고 천주교 천막에 가서 미사를 봉헌하니, 여기 와서 알게 된 자원봉사자가 가족들 천막을 철거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어제 듣기를 내가 묵고 있는 A동 천막은 그냥 둔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게 뭔 일이여 생각하며 그리로 갔다. 작업을 하는 분에게 이 천막은 언제 철거하냐 물으니 대답이 이거였다.

“A동은 현재 가족분이 남아 계셔서 철거하지 않습니다.”

그 가족이 나였다. 그 넓은 천막에 내 이부자리와 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좀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가족으로 대우받을 때 항상 느껴지는 미안함이 올라와서 즉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첫날 밤 묵었던 진도성당 형제의 집에 가서 지내면 되겠지 생각하며....


현우석 신부
(스테파노)
의정부교구 5-7지구 병원사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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