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가야만 할 것 같던 진도 팽목항. 두 번을 다녀왔다. 1박 2일과 일주일 여정으로. 첫 방문 때 광주대교구의 천막에서 고(故) 이승현 군의 누나 아름이를 만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참사가 일어난 후 유가족들끼리는 대화를 나누기만 해도 울게 돼서 서로를 돕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신자가 되겠다고 교리반을 들락거렸던 승현이 아버님은 아직 세례를 받지는 못 했지만, 힘들어하는 큰딸 아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아름아, 저기 수녀님 가신다”고 말했고, 아름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달려가 그 손을 덥석 잡았다. “다 하느님의 뜻이란다” 하고 말하면 그냥 일어서려 했다는 아름이의 말을 잘 들어주시고 함께 아파하셨던 수녀님 덕분에 아름이는 다음날부터 천주교 천막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지내게 되었다.

함께함, 함께 아파함이 결코 작은 도움이 아니라는 것을 대한문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 때 발언한 유경근 대변인의 동생의 말에서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분은 개신교 기도회를 마치고 우연히 지나가다 본인이 자진하여 마이크를 잡으셨다. 자신을 목사라 소개하며 진작부터 거기 계셨던 수녀님, 신부님들께 감사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는데, 그분들이 가족들과 같이 눈물 흘리고 함께 아파하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던 게 가족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 혜택을 나도 팽목항에서 맛보았다. 이미 장례를 치렀지만 남은 유가족들을 위해 다시 내려온 웅기 아버지는 나의 신부 복장을 보고 반기며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웅기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유가족 중 신자들은 당신들의 아픈 속내를 기꺼이 열어 보여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참사 때부터 유가족들의 고통에 함께하셨던 수녀님, 신부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 팽목항 해변가의 풍경 ⓒ현우석

하지만 두 번째 방문을 결심할 즈음에는 고민거리가 있었다. 남은 유가족들 중 신자가 거의 없다는 점 때문에 다시 가기를 주저했다. 아무리 천주교 신부라고 해도 처음 보는 사람이고, 참사 후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 내가 어떤 도움이 될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누가 내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물으면 나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성향이 역시 내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과연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처음 보는 (비신자인) 유가족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지쳐가는 그들과 함께 있는 내 자신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 거북함과 부담감이 가기 전부터 내 마음 한 켠에 부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긴 가야 했다. 지쳐가고 잊히는 것이 두렵다는 가족들의 마음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떠나기 이틀 전에 청년성서모임에 오는 한 청년이 말씀사탕을 뽑게 했다. 내가 뽑은 말씀은 이거였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과연 내가 어떤 일을 하려 하는지 주님은 아셨다. 그리고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역시 아셨다. 이 말씀 때문에 자신감이 펄펄 살아난 건 아니지만 작다고는 할 수 없는 위안과 격려를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로 사실이 되었다.

혼자 차를 몰고 팽목항으로 가는 440킬로미터의 여정을 시작했다. 승현이 아버지를 통해 민지의 부모님을 만났다. 두 분 다 별로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돌리거나 숙이셨다. 나도 그때는 정말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임상사목교육(CPE)을 공부하며 훈련한 게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받아들임에 대해 남들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쓰는 내게 이런 상황은 당황스럽고 정말로 불편한 것이었다.

그때, 유가족 천막 안으로 어느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천안함 사건으로 아들을 잃었다며 누구보다도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을 안다고 말씀하시며 민지 어머니의 손을 당신의 손으로 감싸 쥐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그래서 나도 대화에 낄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잘 아시니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민지 부모님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날 밤, “주님께는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말씀이 이렇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해 주시는 분,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 당신의 일을 하기 시작하셨다.


현우석 신부 (스테파노)
의정부교구 5-7지구 병원사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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