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교회와 세상]

내일이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땅에 도착한다. 교황은 전세 여객기 비즈니스석에 앉아 11시간 30분을 날아올 예정이다. 그 고단한 여행 중에도 지난 브라질과 중동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만을 위한 별도의 사무, 휴식 공간 없이 다른 승객들과 같은 조건에서 한국에 올 것이다.

그러나 교황이 애써 찾아오는 한국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세월호 사건으로 슬픔에 빠진 가족들이 충분히 위로받지 못하고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윤 일병 사건을 비롯해 사방에서 고통과 슬픔이 기쁨과 희망을 압도하고 있다. 이 마당에 교황의 방문이 과연 ‘복음의 기쁨’을 어떻게 무엇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

한국 천주교회는 아시아청년대회와 124위 순교자의 시복식 거행으로 25년 만에 찾아오는 교황 때문에 나름 들뜬 기분일지 모르지만, 한국 사회는 심경이 그리 편하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일년 동안 줄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호소하며, 먼저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이 소박한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가난’을 증거하고, 지금 여기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일하는 ‘야전병원’이 되라고 촉구해 왔다. 그러나 교황을 맞이하는 한국 교회가 과연 교황의 메시지를 이번 방문을 기획하면서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우선 교황의 꽉 짜인 방문 일정 속에서 과연 한국 교회는 교황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슨 답을 구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년에 브라질을 방문한 데 이어 분쟁 지역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번에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을 방문하고, 무슬림 지역인 알바니아, 그리고 가난한 아시아 대륙의 스리랑카와 필리핀 방문을 예정하고 있다. 그가 교황청을 떠나 처음 만난 사람들이 람페두사의 난민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교황이 길을 떠날 때 주목하는 사람들은 늘 어떤 이유로든 ‘가난하고 가련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 13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즈음 세월호 가족대책위 내외신 기자회견’에 참여한 유가족들 ⓒ정현진 기자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교황의 한국 방문에서 주안점은 청년대회도 시복식도 아닌 ‘세월호 유가족’들이 일차적 대상이다. 만일 그분이 청년을 만났다면, 한국 사회의 청년실업과 경쟁적 자본주의에 내몰리는 무력한 청춘들을 보았을 것이다. 한국 순교자들을 만났다면, 국가폭력에 의해 사정없이 참수된 억울한 영혼들이다. 그리고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국가폭력과 그 희생자들을 교황은 만나야 할 것이다. 교황이 이 길로 들어서도록 안내하는 게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나 교황방한준비위원회의 중요한 몫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황방한준비위 활동 가운데 가장 교황의 메시지에 적절히 반응한 것은 12일 발표된 담화문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자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위원장인 강우일 주교는 기자회견을 통해 광화문 시복식 등 방한 기간 동안 대규모 집회와 행사로 곳곳에서 불편을 겪게 하는 점에 대해 송구하다는 입장을 국민들에게 밝히며, 국회를 향해서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염원을 받아들여 올바른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을 신속히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광화문에서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린 사람을 내쫓고 미사를 할 수 없으며, 그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정부 당국이 시복식 전 농성장 철거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교회가 ‘지금 슬퍼하는 사람들’의 옹호자임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교황 방한에 앞서 교회개혁을 위한 심포지엄도 열고 음악회도 하였지만, 과연 이런 말잔치와 축하공연이 교황의 메시지를 얼마나 드러내고 있는지 의문이며, 결국 국민들에게는 단순한 ‘천주교 행사’에 몰두하면서, 막대한 국가의 비용과 다른 국민들의 양해를 구하는 구차한 모습을 보여 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홍보용으로 제작된 동영상은 교황 방한이 천주교만의 잔치임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유감이다.

▲ 교황 방한 홍보영상 ‘코이노니아’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유튜브 갈무리)

‘코이노니아’라는 동영상은 “당신에게 내 기도를 주고 싶어요 / 푸르른 꽃씨 같은 사랑의 마음 / 너와 나는 하나, 같은 꿈 속에 피어 / 우린 모두 선물이 되죠”라고 노래하면서 “나의 손이 너의 손 위에 하나가 되고 / 이 땅위에 그대 평화가 길이 되고”라고 반복하지만, 결국 천주교 신자인 연예인들을 총동원한 뮤직비디오 한 편을 찍었을 뿐이다. 가사에 ‘눈물’ ‘아픔’ ‘그늘’이라는 단어는 보이지만, 영상 어디에도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평균 이상으로 예쁘고 잘 생긴 연예인들의 모습만 처음부터 끝까지 비추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세월호 농성 천막에서 단식에 참여한 가수 김장훈 한 사람에도 미치지 못하는 말랑말랑한 홍보영상물이 한국 교회가 교황에게 주는 감사의 선물이라면, 한국 교회는 교황을 오해해도 많이 오해하고 있는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명히 이번 방한이 이벤트가 되지 않기를 희망했으며, 메시지에 주목할 것을 요청했다. 그 메시지의 방향은 분명히 ‘가난한 이들’에게로 향해 있는 메시지가 틀림없다. 교황은 추기경 시절인 2005년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산만한 도시, 분산된 도시, 자기중심적인 도시가 부에노스아이레스입니다. 이 산만하고 피상적인 도시는 스스로 깊은 비탄에 빠져야만 정화될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 역시 그 도시처럼 세상을 위해 더 많이 슬퍼하고 비탄에 빠져야만, 그 슬픔에서 차오르는 사랑으로 거듭날 것 같다. 우리 교회는 교황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십자가 없는’ 부활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먼저 가련한 이들에게로 가서, 그 눈에서 눈물을 닦아준 연후에 교황을 맞을 일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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