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강은주]

하루가 멀다하고 세월호와 관련하여 일부 종교인들과 정치인, 언론인들의 망언이 쏟아지는 잔인한 나날이었습니다. 세월호의 비극은 우리 삶 전반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세월호와 같은 가슴 아픈 일을 겪고 나서야 우리 사회가 돈과 같은 허깨비 위에서 위태로운 삶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들려온 망언들은 돈이 만든 괴물들이 얼마나 많이 함께 섞여 살고 있는지 문득 알게 해주었습니다. 망언을 뱉은 이들의 뒤이은 사과나 직위해제 등에도 망언으로 다친 마음들은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지방선거 전, 어느 날 출근길 버스 안에서 흥미로운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었는데, 정치에 두루 관심이 많은 듯 했고 다양한 인물과 여러 정당에 대한 평가에 귀가 쫑긋해졌습니다. 이제는 당선인이 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지지, 정몽준 후보에 대한 비판, 정태흥 후보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평가와 아쉬움, 또 안대희 전 총리후보에 대한 비판, 유병언을 검거하지 못하는 검찰의 무능,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명박이 부자 만들어주겠다는 환상에 우리가 속아서 뽑아주고서는 얼마나 후회했어. 이제 또 속으면 안 돼. 투표 잘 해야 돼.” 이런 흥미진진한 대화들을 들으며, 이제는 야당 성향의 유권자가 되신 분들인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놀라운 반전이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하던 분들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유, 난 박근혜 대통령만 보면 불쌍해죽겠어. 뭘 잘못했다고...... 박근혜가 대통령 한 번 더 해서 10년 동안 확 다 바꿔주면 좋겠는데 5년밖에 못한다는 게 아쉬워.”

근원을 알기 힘든, 저토록 뿌리깊은 애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놀라웠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특히 어떤 정책을 지지하는 것인지, 세월호 참사 대처는 어떤 점에서 적절했다고 생각하는지 그분들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그 무한에 가까운 신뢰와 애정에 놀랍고, 허탈한 웃음이 났습니다.

박근혜 정권을 제가 너무 무한불신해서일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후부터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해온 많은 사과를 보면서 버스에서의 아주머니들처럼 대통령이 불쌍하다는 마음보다는, 사과가 너무 공허하다는 생각만 계속 들었습니다. 사과에 이은 후속대처가 없거나 너무 빈약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한다는 것은 분명 큰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그만큼 뼈를 깎는 쇄신의 대책과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대통령이 사과했다고 사과받은 국민이 황송해하거나 대통령을 가여워할 일일까요? 실천을 담보로 한 진정성 있는 사과였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을 필두로 해서 박근혜 정권에서의 사과는 ‘사과’ 자체를 추락시켰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비전과 실천을 보여주는 사과가 아니라 당장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수치스러운 기억은 피해자가 감당하고, 경찰은 징계 없이 말로 때우는 사과로 충분한가

지난 5월 18일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석했다가 서울 동대문경찰서로 연행된 여성 참가자 5명은 유치장 입감 당시 경찰로부터 브래지어를 벗도록 요구받았습니다. 2013년 5월 대법원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한 여성들에게 경찰이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했던 것에 대해 “브래지어 탈의 강요는 인권 존중, 권력 남용 금지 등을 위반한 것이고,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것”이라며 각각 1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경찰의 조처는 ‘유치장 수용 과정에서 속옷 탈의 조처는 위법행위’라는 대법원 판결에 어긋납니다. 심지어 연행된 5명의 여성 참가자 모두 속옷을 탈의한 채 이틀 동안 남자 경찰들에게 조사를 받으면서 조사 내내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에 연행된 것이 처음이어서 혹시나 추가적인 불이익을 당할까봐 항의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 서울 동대문경찰서가 게재한 사과문 화면 캡쳐

경찰은 24일 오후 동대문경찰서장 명의로 해당 경찰서 홈페이지 팝업창에 “여성 피의자에 대한 신체검사 시 자살 또는 자해방지를 위해 속옷(브래지어)을 탈의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다”며 “규정을 지키지 않은 부분이 발견되었으므로 향후 재발방지를 약속드린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속옷탈의와 관련해서는 이미 2008년부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고 지난 해 대법원에서 위법판결도 받았던 사건이라 규정을 어긴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러자 이성한 경찰청장은 26일 경찰청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직원이 분명 잘못한 것”이라며, “해당 여경이 경찰에 입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우리가 교육을 잘못한 탓으로, 동대문경찰서장이 바로 사과문을 올렸고 일선에도 지시해서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해당 여경에 대해 감찰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습니다.

경찰이 직무와 관련된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서 시민에게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과 다름없고, 그로 인해 피해자들은 수치심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경찰의 책임뿐만 아니라, 그에게 제대로 숙지시키고 교육하지 못한 해당 경찰서와 경찰청도 징계를 받아야 할 일입니다. 수치스럽고 불쾌했던 기억은 두고두고 피해자가 감당하고, 경찰은 그 어떤 징계도 없이 말로만 때우는 사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행동없이 말로만 하는 경찰의 공허한 사과는 박근혜 정권에서 이미 지겹게 보아온 사과의 맥락과 일치합니다. 또 한편, 세월호 추모집회 참가자 중 일부 대오가 청와대로 행진하려던 것을 경찰이 폭력적으로 과잉진압하고 연행을 남발한 것은 곧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대국민 사과를 하며, 어마무시한 용단을 내렸다는 표정으로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말했지만 촌극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한참이나 엄청 큰 칼을 갈더니 한껏 빼들고는 엉뚱한 곳만 잘라내고, 잘라낸 곳은 다른 데 갖다 붙이는 꼴이었으니까요. 세월호 참사 초기 해경 대변인으로서 브리핑 내용을 민간업체 비난으로 채우면서 해경의 잘못을 덮어 보려했던 한심한 모습만을 여과없이 보여줬던 고명석 대변인은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대변인으로 변신했습니다. 직함만 바꿔주고 부처 이름 바꾸느라 돈 쓰는 것이 쇄신일까요.

“적폐 척결”을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의 구호를 관피아들이 좀 두려워해야 될 텐데 말입니다. 해경 대변인의 변형처럼 적폐 척결이 아니라 ‘적폐 변형’에 그친다면 누가 두려워할까요. 국민의 안전도 지키지 못하면서 남북냉전체제만 이용하려는 가짜안보,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하는 규제완화야말로 척결해야 할 ‘적폐’의 0순위입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 이전에 박정희 정권도 지내온 세대 중 일부 국민이 청산할 적폐가 있다면 독재에 대한 복종과 그에 대한 비틀린 향수입니다. 자유보다 복종이 편하고 달콤하기도 합니다.

“다정이 병폐”

문득 칠레의 독재자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칠레는 피노체트 정권이 1973년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독재정권의 반대파를 빨갱이로 몰아, 17년의 독재 기간에 1,102명이 실종되었고 3,197명이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당했으며 100만 여명이 국외로 추방되었습니다. 또 독재뿐 아니라 공금횡령으로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많은 칠레 국민은 피노체트 정권에 치를 떨었지만, 일부 국민은 피노체트가 경제를 살리고 좌파세력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1998년 10월, 영국에서 피노체트가 체포되어 국제재판소에 넘겨지려고 할 때에 칠레 국민의 의견은 여럿으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재고의 여지없이 국제재판소에서 재판받게 해야 된다는 의견도 있었던 반면,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같은 칠레사람이니 데려와서 칠레에서 재판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후자의 의견이 우세해서라기보다는 당시 칠레 내부의 정치상황의 역학관계 때문에 피노체트는 칠레로 들어와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재판 받았는지 결과를 떠나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 과정에서 미우나 고우나 같은 칠레사람으로서의 인정(?)을 말한 이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칠레와 한국은 유독 정이 많은 나라일까요? “다정이 병”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는 말은 아닐 텐데 이 경우에는 “다정이 병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부당한 구조 안에서 착취받고 지배받을 때 구조에 대한 의심 없이, 나의 약함과 고통을 지배자의 강함으로 치환시키고 그에게 나를 이입하고 복종의 편안함을 택하는 것이 독재정권을 유지시켜줍니다. 그렇게 지나온 우리의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흘러오면서 독재자의 딸을 내세운 정권을 맞게 되었습니다. 과거사 청산 없는 역사. 안전 없는 안보. 규제라는 고삐를 빼버린 자본. 능력 없이 이념만 이용해 만들어진 정권. 이들이 ‘진짜 적폐’입니다. 
 

강은주
(데보라)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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