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강은주]

모두가 함께 오래 지니고 가야 할 너무나 큰 슬픔이 시작되었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끔찍하도록 탐욕스러운 자본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그러나 사고가 초유의 재앙이 되도록 만든 것은 무능한 정부였습니다. 정부는 자본이 기형적으로 기승을 부릴 수 있게 해주고 서로 단단히 손잡고 있었으니 사고의 원인에도 일조한 셈입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음은 위기상황에서 더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너무 많은 귀한 생명들이 수장되는 것을 보며 “미안하다”는 마음과 말을 절로 읊조리게 된 것은 그런 정부를 방관했던 탓이었습니다. 돈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뭐라 말하지 않고 같이 쳇바퀴만 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체장사”, “유족충”, “순수유족”이라는 말을 내뱉는 이들과 그 세력들을 제때에 단죄하지 않고 심드렁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토록 잔인한 어버이날

정부의 재난 대응, 그리고 유가족을 대하는 정부와 언론의 태도는 사고 자체만큼이나 끔찍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전부와도 같은 너무나 귀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온 나라가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잔인한 어버이날도 함께 목격했습니다.

어버이날이었던 8일 저녁,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안산 분향소에 있던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KBS로 항의방문을 갔습니다. KBS 김시곤 보도국장이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라고 말했던 적절치 못한 발언에 대해 유족들은 KBS 사장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유족들과 면담할 때까지만 해도 사과할 수 없다던 뻔뻔하고 강경한 KBS의 태도에, 유족들은 KBS에게 사과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하며 청와대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되고나서야 길환영 KBS사장은 청와대 앞으로 유족을 찾아와 사과하고 김시곤 보도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KBS가 박근혜 대통령의 진도 체육관 방문 당시 유가족 항의 목소리를 빼고 보도했던 것, 시신들이 엉켜 있다는 오보를 냈던 것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고 오직 보도국장 발언에 대해서만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길환영 사장은 청와대에 불똥이 튈까봐 급한 마음에 유족들에게 보도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시곤 국장은 처음부터 사표를 내지도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어 KBS는 9일 저녁 인사발령을 통해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보직을 KBS 방송문화연구소 공영성연구부로 옮겨 보직변경만 시켰습니다. 보직변경 전, 같은 날 오후 김시곤 국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길환영 사장은 대통령만 바라보고 가는 사람이다. 길 사장이 이번 세월호 사건뿐 아니라 평소에도 끊임없이 보도를 통제했다”면서 길사장이 즉각 퇴진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유족에 대한 KBS의 사과는 한없이 가벼워 보입니다. 위기만 모면하고 보려는 거짓으로 얼룩진 사과였습니다.

▲ 5월 12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사건에 대한 표현의 자유 침해와 보도통제 중단 촉구 인권・언론·교사 단체 공동 기자회견> ⓒ강은주

MBC에서도 세월호 침몰 사고 보도 책임자인 박상후 전국부장이 7일 뉴스데스크에서 실종자 가족의 조급함이 민간잠수사의 죽음을 불렀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그는 여의도 MBC 보도국 전국부 사무실에서 “뭐 하러 거길 조문을 가. 차라리 잘됐어. 그런 놈들 (조문)해 줄 필요 없어”, “관심을 가져주지 말아야 돼 그런 놈들은......”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MBC 기자회 소속 30기 이하 기자 121명은 12일에 성명을 내고 “사상 최악의 보도를 자행한 장본인의 입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는커녕 입에 담기조차 힘든 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비이성적, 비상식적인 것은 물론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보도였다, 한마디로 ‘보도 참사’였다, 그리고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 저희 MBC 기자들에게 있다, 가슴을 치며 머리 숙인다”고 자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국민은 관영방송이 되어버린 KBS, MBC를 거부하고 공영방송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진실보도는커녕 듣지 않는 게 더 좋았을 끔찍한 말들이 다른 곳도 아닌 언론사로부터 시작되어 고통과 분노를 주었습니다.

9일에 있었던 유족과 청와대의 면담에는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이 나와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 전해줘서 유족에게 고맙다. 몰랐던 부분에 대해 많이 알았다. KBS 언론사에 대해 청와대가 이래라저래라 말할 수 없지만 사장과의 만남 주선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담 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유족과 많은 국민들은 그 자리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오길 바랐습니다. “바로 어제가 어버이날이었는데, 마음만으로도 무척 힘드셨을 텐데 몸까지 너무 고생하시게 되어서 송구하다. 국정 책임자로서 정말 죄송하다.” 이런 위로와 사과를 대통령이 직접 유족들에게 건네는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장면일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대통령에게 너무 순진하고 과한 요구인 걸까요? 하지만 대통령이 사과를 미루고 면담을 피할수록 박근혜정권에 대한 불신과 실망은 깊어집니다. 사고발생 한 달이 가까워지도록 대통령은 아직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국민 사과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뿐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과를 하려고 그러는 걸까요.

빈껍데기 같은 사과만 할 거라면 사과와 동시에 사퇴해주길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하지 않은 위로를, 청소년들이 건네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얼마 전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진실규명과 재발방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표명은 없이 사과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또 다시 그런 빈껍데기 같은 사과만 할 거라면 사과와 동시에 사퇴해주길 바랍니다.

이틀 동안 잠 한숨 못자고 극한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던 유족들은 면담이 끝난 후 9일 오후에서야 안산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떻게 이런 잔인한 어버이날이 있을까요.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 선원과 아르바이트생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부모님, 그리고 부모를 잃은 자녀들, 친구와 이웃을 잃은 모두에게, 또 함께 지켜보는 시민들에게도 가슴 아픈 어버이날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하지 않은 위로를 청소년들이 건넸습니다. 9일에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주최한 세월호 피해자 추모를 위한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2천여 명의 청소년들이 지금은 하늘에 있을 단원고 학생들을 대신해 유가족 부모님들께 해드린 말입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면에 말을 하면 할수록 분노와 피로감을 안겨주는 이들도 있습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9일 세월호 유족 면담 요청을 언급하며 ‘순수 유가족’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순수 유가족의 요청을 듣는 일이라면 누군가 나가서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입장이 정리됐다”고 말하자 취재진들이 ‘순수 유가족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유가족이 아닌 분들은 (청와대가 말씀을 듣는) 대상이 되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순수 유가족’이라는 발언은 공개 직후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유족들 사이에 선동을 하는 불순한 이들이 있다는 청와대의 인식이 은연중에 드러났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불순한 정권이어서인지, 그들만의 ‘순수’와 ‘불순’을 가르고 낙인찍는 일에 민감하고 열심인가 봅니다. 오히려 그 모습이 이 정권이 ‘순수’하게 국민과 공감하지 않고, 지금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일들이 아닌 색깔 씌우기에 골몰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긴급 민생대책회의에서 “사회 불안이나 분열을 야기하는 언행들은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국정책임자로서 무능한 재난대응에 대한 비판을 듣지 않겠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유가족 뿐 아니라 전 국민이 함께 겪고 있는 트라우마 치유에 대해서 한 정신과 전문의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믿을 수 있겠구나. 그런 전제가 없으면 희망이 없다는 느낌을 계속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지요. 이 정권에 대한 일말의 믿음이 없습니다. 시작은 부정선거부터였지요. 박근혜 정권이 거리낄 것 없이 당당했다면 국정원과 국방부를 비롯해 선거에 개입한 의혹이 명백한 곳들을 낱낱이 수사하고 밝혔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선거공약이었던 노인 복지예산 지급을 파기할 때도 그저 죄송하다고 했지요. 국정원 간첩조작이 드러났을 때도 죄송하다고만 했습니다. 이제 공허한 사과는 그만 두고 겸허히 물러났으면 합니다.

아픈 마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행동해야겠습니다

또 한편은 한없이 착한 사람들이 그저 미안해하는 것이 안타깝고 허허롭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조용하거나, 거짓된 사과를 하는데 말이지요. 이제는 입버릇처럼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는 게 아니라, 그 마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행동해야겠습니다. 일단은 정부가 시급하고 꼭 해야 하는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구조작업, 유가족 면담 및 지원, 재발방지대책 등입니다. 그리고 시급하지도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 정부가 열 일 제치고 하고 있는 유언비어 단속, 진실은폐, 소비위축 걱정. 이런 것들입니다. 정부가 딴청 혹은 시선 돌리기 용으로 곧잘 해오던 일들을 그만 두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부와 자본이 배제해왔던 것들을 채우고 지키라고 해야 합니다. 안전할 권리, 존엄할 권리, 그리고 표현의 자유. 그들이 거부하는 것들을 받아들이도록 만들 의무가 우리에게 남았습니다. 이 인재의 책임과 진실을 밝히는 일. 애도를 끝내고 돈 쓰고, 돈 버는 것 좀 하자는 저들을 묵살하고 끝까지 기억하는 일.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들, 노동자들, 노인들, 중년의 사람들, 어린 아이들 등 빠짐없이, 배제되는 이 없이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 가신 이들이 우리에게 마음 아프게 울고만 있지 말라고 남겨준 일들이 많습니다.

강은주 (데보라)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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