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강은주]

아저씨를 언제 처음 만났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납니다. 아마 2~3년 전쯤일 것 같습니다. 강정마을에 가면 아저씨가 운영하는 펜션에 자주 묵었습니다. 그 펜션이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과 가장 가까웠거든요. 제주 해군기지 공사가 막 시작될 즈음 구럼비 바위를 발파하면서 마을에는 새벽이고 언제고 사이렌이 울리곤 했었습니다. 공사를 막기 위해 마을회에서 긴급하게 집결을 요청하는 사이렌이 울리면 바로 뛰쳐나가기에 가까운 숙소가 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마을 주민 분들은 저와 일행들이 묵던 펜션의 사장 아저씨를 싫어했습니다. 아저씨가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한참 전 아저씨는 마을 대부분의 숙박업주들이 그렇듯,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장사가 더 잘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군기지 공사를 비호해주는 경찰들에게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걸 봤다는 마을 주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군기지 공사로 인해 숙박업 영업에 직접적인 지장을 받으면서 아저씨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좁은 인도를 사이에 두고 공사장과 마주하고 있는 펜션인데, 한동안은 펜션 뒷마당 쪽의 공사장 펜스 앞에 의경들이 둘씩 짝지어 교대로 근무를 섰습니다. 펜션에 묵는 사람들은 커튼을 모두 치지 않고는 의경들과 눈을 마주치며 지내야 할 판이었습니다.

화가 난 아저씨는 호스로 마당 나무들에 물을 주면서 의경들이 서있는 곳까지 물을 뿌리며 거기 서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의경들에게 “억울하면 가서 느이 대장한테 이르고 다신 오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아저씨는 해군기지 공사를 더 이상 찬성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강정 현장에서의 법률대응을 위해 한동안 펜션에 장기간 묵었던 민변의 변호사들이 연행자 발생 후 차가 없어 전전긍긍할 때 자신의 차로 경찰서에 태워다주기도 했습니다.

경찰에 연행된 후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저씨

저는 아저씨네 펜션에서 묵고 떠날 때마다 뭔가 하나씩을 곧잘 빼먹고 왔습니다. 칠칠치 못한 저의 짐을 잘 챙겨주시곤 하면서 아저씨와 친해진 것 같습니다. 한번은 제가 구럼비에 들어갔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던 날이었습니다. 연행될 줄은 모르고 숙소에서 나갔던 터라 짐 정리를 못해놔서 친구들이 제 짐을 정리하러 펜션으로 가서는 사정을 얘기하니, 아저씨는 “아이고, 그 바보 같은 애를 왜 잡아가? 보통 보면 똑똑한 사람들이 연행되던데, 걔는 짐도 만날 빼먹고 다니는 앤데…… 바보 같은 애를 왜 잡아가? 아이고……” 소리를 연발하며 걱정하셨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 얘기를 듣고 이제는 친구처럼 제 걱정을 해주셨던 아저씨가 참 고마웠습니다.

또 한편은, 해군기지 반대투쟁과 같은 일은 똑똑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정말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온 아저씨 같은 분도 싸움의 당사자가 되게 만들고, 한 마을의 평화를 산산이 깨는 기지 건설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저씨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 눈물이 핑 돕니다. 지난달 3월, 아저씨가 경찰에 연행된 후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기 때문입니다.

▲ 강정마을 피켓 시위. 피켓에 “해군기지 공사 소음 때문에 손님 끊겨 항의했더니 체포, 유치장에서 쓰러져. 사람 잡는 해군기지 공사 즉각 중단하라”고 쓰여 있다. (사진 제공 / Rom)

제주 해군기지 공사는 민감한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오히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독이 되고, 천혜의 섬 제주를 군사기지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평화를 염원하는 많은 이들이 반대해오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방부는 이와 같은 반대의 목소리를 신중히 듣지 않고 초조한 듯 불법적으로 사업지를 선정하고 서둘러 무리한 공사를 해왔습니다. 공정률을 높이기 위해 규정을 어겨가며 야간공사까지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야간까지 굉음을 내며 공사를 하자, 아저씨네 펜션에서는 손님들이 잠을 잘 수가 없어서 환불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지고 손님이 끊겼습니다. 화가 난 아저씨는 공사장 앞으로 달려가 야간공사에 항의하던 중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유치장에 입감된 후 뇌경색이 진행되었나 봅니다.

유치장을 관리하는 경찰은 아저씨가 잠을 자는 줄로만 알았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현재까지도 유치장 CCTV 공개는 거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는 가족이 면회를 왔다고 알렸는데도 아저씨가 움직이지 않자, 그제야 이미 뇌경색이 너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아저씨 소식을 듣고 너무 먹먹했습니다. 바로 문병 가보지 못하고 4월이 되어서야 며칠 전에 아저씨를 뵙고 왔습니다. 병원으로 옮긴 후 처음 며칠간은 의식이 아예 없어서 다들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병원에서 뵌 아저씨는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회복되신 상태였습니다. 아직 말을 정확히 하지 못하시고 오른팔과 오른다리의 마비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사람도 알아보고 응답은 하셨습니다. 며칠 동안 의식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다행히 많이 회복 중이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저씨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지를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간병하시는 분께서는 아저씨가 고생을 많이 했나 보다면서, 손바닥에 굳은살이 가득한데 병원에서 한참 쉬니까 굳은살이 흐물흐물해졌다고 하셨습니다. 아저씨는 3층짜리 펜션을 혼자 관리하고, 언젠가 한번은 건물 외벽 페인트칠을 혼자 다 하던 분이었습니다. 한 마을에 들어서는 군사기지는 열심히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들의 귀한 삶을 송두리째 위협하고 있습니다.

서귀포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매일 전쟁과도 같은 싸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지난해 10월 정부는 강정마을을 갈등해소지역이라고 분류했다가 빈축을 샀습니다. 오히려 강정에서는 경찰의 자의적인 법집행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경찰의 카메라 채증 남용과, 공사장 문의 움직이는 CCTV로 마을 주민과 지킴이들,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상시적으로 채증하고 감시합니다.

또 공사 차량 출입을 위해 경찰이 인간벽을 만들어 그 안에 사람을 가두고 이동을 제한하는 이른바 ‘고착’도 남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고착 전에 경찰이 왜 시민의 이동을 제한하려고 하는지 고지하던 것도 생략한 채 마구 고착하던 것에 항의했던 예수회 김성환 신부님과 문정현 신부님, 로세리나 수녀님, 평신도 이종화 씨가 연행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분들의 걱정과 기도 속에 네 분 모두 강정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4월 12일에는 오랜 시간 구속수감 중이었던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님이 드디어 석방되셨습니다. 4번째 구속되어 435일 만에 출소한 것입니다. 긴 수감생활에 지쳤을 법도 한데, 양윤모 선생님은 환한 웃음으로 마중온 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앞으로의 제주 해군기지 반대활동의 비전과 포부를 힘차게 말씀하셨습니다.

▲ 영화평론가 양윤모 씨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활동으로 수감된지 435일 만인 4월 12일 석방됐다. (사진 제공 / 강은주)

정부와 국방부는 강정마을을 국책사업의 사업지로만 여기고 공사 강행만 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국책사업으로 파괴된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정신 못 차리고 제 할 일을 못하고 있을 때, 우리는 뭘 해야 하나 생각해봅니다. 정부를 비판하고 추동하는 일.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 그게 잘 안 될 때는 절망만 하거나 욕만 하고 있을 것인가. 박근혜 정부 들어 부쩍 더 많이 드는 생각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제주 해군기지 반대투쟁

바람이 가장 셀 때에도 들고 있는 불빛을 꺼뜨리지 않는 일. 바람이 거세서 반 발짝밖에 못 딛고 느리게 가더라도 가던 길을, 가야할 길을 가는 일. 함께 가는 길에서 내 자리를 비우지 않는 일. 절망하고 져버리느니, 보다 작은 일들을 찾아가며 희망을 가꿔야겠습니다. 아무리 혹독한 바람도 어쩌지 못하는 희망으로요.

제주 해군기지 반대투쟁이 이미 끝난 것 아니냐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예전만큼 많은 사람들의 동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강정에서는 오늘도 평화를 노래하고 춤추고 미사를 드리고 끌려나오고 다시 춤을 춥니다. 벌금과 같은 탄압이 이어져도 노역을 택하며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가 저항하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강정에는 바보 같은 저를 걱정해주던 아저씨와 수녀님, 신부님, 수사님, 지킴이들, 또 공사장을 마을에 두고 살아가는 강정 주민들도 있습니다. 거기에 평화가 없다면, 평화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그들이 거기에 있지 않겠지요. 누군가는 이미 끝났다고 하는 곳에 아직도 누군가가 여전히 지키고 있는 것이 희망입니다. 큰 불은 아니라도 작은 불씨를 어쩌지 못한다는 질긴 희망입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는 행복하다”는 말씀을 뒤에서부터 생각해봅니다.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평화를 말하고 있는지. 큰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걱정하고 마음 상하다가, 내 안의 작은 불씨를 꺼뜨리지는 않는지. 너무 어두울 때 큰 불이 없다고 걱정만 할 게 아니라 희미하나마 우직한 작은 불씨들이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강하게 느껴지는 시절입니다.


강은주
(데보라)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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