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 마주친 교회]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루카 7,34)

트랜스젠더와 어울리는 예수, 담배 피우는 예수

한참 본당 청년회 활동을 하고 있었고, ‘수도자다운 신앙심’이라는 비웃음도 당하던 2007년. 물론 살짝 수녀원을 들어갈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그리 심각한 건 아니긴 했다. 그저 나를 숙고하게 하는 책이나 경구에 감동하고, 말하기를 즐겼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싸이월드에서 맘에 드는 그림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황인호 작가의 ‘은혜와 놀라운 은혜’(blog.naver.com/dorian2/18764773)다.

‘은혜’의 이미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지만, ‘놀라운 은혜’의 이미지는 충격 그 자체였다. 마약중독자, 트랜스젠더, 소년병, 성 노동자, 알코올 중독자,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 앵벌이하는 할머니와 손자, 개, 데스메탈(이런 음악도 일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공세를 당하고 있다)을 할 것 같은 음악인들, 부상당한 이주민 등이 예수님과 화기애애하게 둘러앉은 모습이라니……. 별로 점잖지도 않고, 깔끔하지도 않은 사람들, 지금은 교회에 나타나지도 못하는 이들이 아닌가. 뭔가 당신들의 하느님과 나의 하느님은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 신앙의 갈등기에 접어들었던 나는 내 미니홈피에 이 그림을 스크랩하고는 몇 년 동안 이 작품을 잊고 있었다.

성당에서 일하게 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생활인, 혹은 진보적인 마음만 있는 소시민이 되기도 했지만, 성당에서 일하면 일할수록 내가 노동자라는 생각, 성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천주교회 안에서 참 대접을 못 받는다는 소외감, 천주교회는 나날이 가난한 이들을 우선 선택하는 교회가 되기보다는 ‘사장님의 교회’로 변질하는 것 같다는 안타까움을 가득 안고 하루하루 견디고 있었다.

▲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의 그림에 누군가 글을 덧붙여 만든 지난해 12월 28일 총파업 포스터의 하나
2013년 초부터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여러 교육과 강의를 쫓아다니다 보니, 스무 살에도 갖지 못했던 장래희망이라는 것이 생겼고, 2014년부터는 장래희망을 구체적으로 이루기 위한 인생 제2막을 시작해볼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약간은 희망차다. 밀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고, 여전히 버거운 노동조건에 사람들은 허우적대며 살고 있고, 그 현실은 나의 희망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흘러가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차마 아이를 데리고라도 가진 못했지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여러 사람들이 작년 12월 28일 총파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총파업 전, 인터넷에는 총파업 참여를 독려하는 다양한 포스터들이 넘치게 흘러 다녔다. 그러다가 저 ‘담배 피우는 예수’를 만났다.

내가 이해했던 예수와 가장 닮은 그림이 저 두 가지이다. 그래, 우리는 저런 예수를 돈으로 떡칠한 조각상에 가두어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천주교의 침묵

2012년 말부터 2013년 2월까지 몇몇 국회의원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고, 숱한 논란 끝에 2013년 4월 24일 발의한 의원 중 일부가 철회를 요구, 결국 국회에서 논의도 해보지 못한 채 철회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 곳곳은 물론이고 온갖 신문, 잡지 등의 지면 광고, 현수막, 단체 문자메시지에 이르기까지 ‘보수 기독단체’의 적극적인 반대 의사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고, 그 혐오와 거부의 표현들을 보는 것 자체가 공해가 되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한국 천주교회는 어떤 견해를 밝히는지 정말 궁금했다. 아니, 솔직히 침묵하는 천주교에 대해 분노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마치 저 왕왕거리는 ‘보수 기독단체’의 목소리가 고맙다는 듯한 그 침묵이 역겨웠다. 적어도 2013년 7월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주최한 ‘차별금지법과 노동 토론회―노동, 차별금지법을 말하다’ 같은 행사를 통해서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고 지지한다는 발언 쯤은 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고 순진한 신자였다는 각성을 하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 원래 침묵은 중립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냥 ‘나랑 상관없음. 내 알 바 아님’의 표시일 뿐. 그래서 침묵이 참으로 정치적인 언어라는 것을 한국 천주교는 나에게 가르쳐준 셈이다.

사실, 천주교의 그런 입장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2011년 10월에는 ‘소수자 주거권 확보를 위한 틈새 모임’이라는 단체가 ‘가톨릭 청년회관 다리’에 대관 신청을 했지만, 이 행사에 ‘동성애 관련 단체’가 참여하고, ‘틈새 모임’의 행사로 인해 가톨릭 청년회관이 ‘가정’ 및 ‘성’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반하는 듯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 물론 언론에 많이 보도되지도 못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진보네트워크는 가톨릭 청년회관 다리에서 진행할 예정이던 ‘정보 인권상영회 행사’의 대관을 취소하는 것으로 연대의 뜻을 표하기도 했단다.

이 소식을 전해주던 친구와 틈새 모임 사람들이 받았을 상처에 대해, “천주교 은근히 보수적인가 봐” 하는 쑥덕거림을 보태 나누던 얘기들이 떠오른다. 그때로부터 햇수로 3년이 지나고, 가톨릭 청년회관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제는 차별적인 논란이 될 대관은 아예 접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 지난해 11월 3일, 제10차 WCC 총회에 참가한 각국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성소수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동성 결혼은 매우 부조리하다”고?

2005년 하반기쯤 나는 가톨릭 사회교리를 알게 되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태>, <노동하는 인간> 같은 교황의 문헌들에 대해 강의를 듣고, 공부하면서는 심지어 가톨릭교회가 정말 예수를 따라 살고자 하는 교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어렴풋한 희망마저 품었던 것도 같다. 물론 경영자의 처지에 있던 나이 많은 신자 몇 분들의 공격적인 비판(비난일 수도 있다)이 우리의 소박한 기쁨을 방해하는 일도 숱하게 있었다.

1차, 2차에 이르는 사회교리학교 일정을 마치고 그 당시 출간된 지 채 1년도 안 된 <간추린 사회교리>라는 책을 통독하는 3차 연수가 있었다. 통독 연수라지만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2박3일 동안 다 읽을 수는 없었던 것 같고, 부분별로 중요하다 싶은 곳을 짚어가며 읽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읽던 중 맞닥뜨린 228항. “동성 결합에 ‘혼인’의 지위를 부여하라는 요구는 매우 부조리한 것임을 드러낸다”는 문장을 만났다. 빙빙 돌려 서술한 글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가톨릭교회는 동성애에 대해 어떤 입장인 건지, 그들에게 ‘사람이 아니므니다’라고 말하는 건지, 그들의 연애는 인정해도 법적인 혼인만은 인정을 못하겠다는 건지, 정확한 입장을 읽기가 힘들었다.

지금 읽어보면 명확하게 ‘인정 못함, 반대’의 뜻이 드러나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도 애매하다고 느꼈던 건지도 의문이다. 그날 연수에는 주교도 와서 약식 강의를 했는데(그 주교가 아마도 염수정 추기경이었을 것이다), 의구심이 있으면서도 차마 질문하려고 손을 들지 못했다. 다만 책 귀퉁이에 ‘한국 천주교의 동성애에 대한 입장은?’이라고 끄적이며 낙서만 했다.

“사실혼과 관련된 또 다른 구체적인 문제는 동성 결합의 합법적 인정에 대한 요구다. 이 문제는 점점 더 공론화해 가고 있다. 인간의 온전한 진리에 부합하는 인간학만이 사회적 교회적 차원에서 다양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이 문제에 적절한 응답을 할 수 있다. 그러한 인간학의 견해는 ‘동성 결합에 '혼인'의 지위를 부여하라는 요구는 매우 부조리한 것임을 드러낸다. 그러한 요구에 반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인간의 본성 자체에 새겨 놓으신 계획에 따라 생명을 전달함으로써 열매를 맺는 결합 관계가 객관적으로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장애는, 신체적 생물학적 차원과 특히 심리 차원에서 창조주께서 뜻하신 남녀의 상호 보완성을 위한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통합적인 일치와 정신물리학적인 상호 완성을 통하여 완전함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성(性)이 다른 두 사람의 결합에서만 가능하다.

동성애자들의 인간 존엄을 온전히 존중하여야 하며 정결을 지키는 것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도록 격려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존중의 의무가 도덕률에 위배되는 행위의 합법화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며, 동성 간의 혼인과 그것이 가정과 동등하게 여겨질 권리의 인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법적인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의 혼인이 단지 가능한 혼인 형태들 가운데 하나로만 여겨진다면 혼인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이는 공동선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결합을 법적으로 혼인이나 가정과 동일 선상에 놓음으로써 국가는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본연의 의무를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간추린 사회교리 228항

▲ 지난해 8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성소수자 4대 인권입법과제 실현 촉구 및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 국회의원 초청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조광수 감독(오른쪽) ⓒ민중의소리 LeeSuengBeen

동성결혼식 올린 가톨릭 신자, 김조광수와의 대화
“차별하지 말자는 법 반대하는 게 예수를 따르는 건가?”

‘본당에서 마주친 교회’라는 칼럼을 시작하면서, 천주교회에 얽힌 차별 얘기를 반드시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첫 칼럼을 기고하기 며칠 전인 2013년 9월 7일, 우리나라 최초의 공개적인 게이 커플 결혼식이 있었다.

가톨릭 신자로 알려졌던 김조광수(베드로)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많았지만, 고르고 골라 단 두 가지의 질문을 보냈는데 고맙게도 답변이 왔다. 답변을 정리해 글을 써볼까도 했지만, 당사자의 심경이 잘 드러난 글이라 그대로 옮긴다.

―가톨릭교회에서 세례 받은 신자시잖아요. 혼인성사에 대해 알아보신 적이 있을까요? 혹시 추진해보시기도 했는지 궁금합니다.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은 베드로이지만, 최근 10여 년은 주일에 미사도 드리지 않는 냉담자로 살았습니다. 가톨릭은 여전히 동성애를 죄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요. 물론 저는 스스로 동성애를 죄라고 여기지도, 동성애자인 게 부끄럽지도 않지만, 성경에서 금하는 사람, 교리에 어긋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고해성사를 볼 때마다 힘들었어요. 신부님께 ‘저는 동성애자예요. 어제는 동성과 섹스를 했어요’ 이렇게 고백을 하지 않는 것 때문에 고해성사를 하고 난 뒤에 기분이 찜찜했죠. 그래서 고해성사를 안 하게 되고 그러니 영성체를 못 하게 되고요. 주위에서 ‘왜 영성체를 하지 않느냐’고 묻고 저는 얼버무리고. 그러는 모든 것들이 싫어지면서 교회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니었어요. 가까운 신부님 중 동성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어서 그분들 덕에 크리스천으로서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죠. 결혼을 기점으로 교회에 다시 나가보려 했어요. 그래서 혼인성사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나 예상한 대로 저희 결혼을 받아주는 사제나 교회는 없었습니다. 아직 가톨릭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죠. 다른 나라에서도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니까 섭섭하지는 않지만 아쉽기는 하죠.

최근에는 성공회로 이적을 해서 성공회 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미국 성공회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주교님도 있고 2010년에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주에서는 교회에서 동성 결혼하는 것을 합법화’했어요. 대한성공회는 아직 동성애와 동성 결혼에 대해 정확한 견해를 내놓은 적이 없지만(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죠) 보다 긍정적이고 앞으로 변화도 빠를 것 같다고 생각해서 성공회를 다니고 있어요. 아직은 성공회 교회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냥 조용한 신자로 있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교회에서 다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논란이 있을 때, 저는 가톨릭교회가 묵묵부답하던 것에 참 분노했습니다. 그런 침묵은 동조로 보이기 쉬운데, 감독님의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인들이죠. 차별금지 조항 중 ‘성적 지향’을 크게 문제 삼는 것으로 ‘성경에 어긋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도 그리스도인인데, 이럴 때마다 힘들고 괴롭습니다. 차별하지 말자는 법을 제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을 하지 말자는 것인데 왜 그것을 찬성한다는 의견을 내지 못하는지 참으로 딱합니다. 이제라도 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 합니다. 최소한 프란치스코 교황만큼은 발언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나요? 교황은 최근에 ‘동성애자 커플의 자녀도 다닐 수 있는 교회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했잖아요.”

▲ 지난해 4월 25일 열린 고(故) 육우당 10주기 기도회에 그의 유품이 전시되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육우당은 동인련 회원들에게 성모상을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문양효숙 기자

육우당은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내가 교회로 다시 찾아가기 몇 년 전인 2003년 4월, 술, 담배, 녹차, 파운데이션, 수면제, 묵주 6가지의 친구를 둔 19세 육우당이 세상을 떠났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이기도 한 그는 사무실 문고리에 목을 매달고 자살했다. 평소 묵주를 지니고 다니며 기도하곤 했다는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옆에는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세상을 원망하는 6장의 유서와 자신의 전 재산인 34만 원을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기부한다는 메모가 있었다고 한다.

작년 4월, 육우당 10주기 행사에서는 여전히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수많은 동성애자가 함께했다. 그의 죽음이 있고 얼마 후, 인권사회단체들은 “그의 죽음은 차가운 편견과 멸시, 소외와 차별의 빙벽 속에 갇혀있는 이 땅 모든 동성애자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면서 동성애자들을 자살이라는 막다른 선택으로 몰아넣고 있는 사회적 편견과 폭력을 비판했다. 나아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일부 개신교 단체들과 언론에 대해서는 “단지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반인권적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냐”며 되물었다. 11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육우당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는 건 아닌가.

예수는 세상의 온갖 소수자를 받아들였다

2014년 1월 10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개정안 공청회에서 한 판의 난동이 있고 나서, 이 원고를 시작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건 중심으로 글을 쓴 감이 있지만, 성소수자를 포함한 장애인, 여성, 청소년, 이주노동자, 노인, 노숙자 등 모든 소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이러한 소수자성은 한 사람에게 하나만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여성-장애인’, ‘여성-성소수자’, ‘성소수자-청소년’ 등으로 결합하여 그 차별을 더 심화하기도 한다.

왜 나는 이 칼럼을 ‘차별’이라는 말로 채우고 싶었던 것일까 하고 오래 고민해 보았다. 그건 내게 차별의 말이 권위적인 억압의 다른 말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교회(또는 사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들”이라는 판단이 싫었는데, 그 권위를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와 하느님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나나 나와 생각이 비슷한 이들을 권위에 도전하는 것들이라며 소외시키고 배제하려 해도 무섭지 않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권위가 아니라, 하느님을 팔아서 자기 욕심(권력욕, 군림)을 채우고자 하는 그대의 혓바닥일 뿐이니까.

그리고 나에게 차별의 말은 순응을 요구하는 명령이었다. 본당에서 숱하게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을 요구받는데도 ‘할 수 없지’ 하며 일하는 우리 자매님들의 모습(흔히 예수의 어머니 성 마리아의 헌신과 모성의 수고로움을 들먹이며 존중하는 듯한 언사를 하기도 한다), 직장 생활도 버거운데 각종 행사에 그저 ‘동원’되거나 사제들의 의견을 넘어서는 일을 하기는 어려운 청년들, 그리고 사제와 사목위원들이 아무리 임금을 깎으려고 시도해도 노조는커녕 체념하고 그만둘 수밖에 없는 교회 안 노동자들은 일면 그 희생양일 수 있을 것이다.

동성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만들어 아무리 반대해도, 그들은 우리 옆에서 함께 살아갈 이웃이다. 노동자라는 말이 불편해서, 아무리 그들의 권리를 부인하려고 해도 어떤 타인의 노동에 빚지지 않고 단 하루라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역시 목수 일을 하던 노동자였고, 그의 놀라운 은혜 혹은 은총은 세상 속 다양한 소수자들을 이미 다 받아들였는데, 어이없게도 우리는 교회며 사회라는 울타리를 치고 어떻게 저들을 배제하고 차단할 것인지 궁리하고 있다.

답을 내릴 수 없는 갈등의 순간, 우리에게는 좋은 질문이 하나 있지 않은가. 만약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림보
(필명)
장래희망 있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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