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C 해고자 복직, 어떻게 풀 것인가 - 2]

2002년 가톨릭중앙의료원(CMC)의 217일 장기 파업은 여러 모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사회적으로 가톨릭 의료기관을 비롯한 병원 노사관계의 재정립 계기가 되었으며, 필수공공기관 직권중재 제도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교회 내적으로도 가톨릭 의료기관의 사회적 역할, 교회의 가르침과 공공성 실현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이 같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당시 CMC 파업의 양 당사자들은 여전히 깊은 상처를 받은 채 치유와 화해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그 역할과 의미, 규모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환자와 사회 공동체의 치유, 공익에 기여, 선교 등의 사명을 함께 이뤄야 할 노동자와의 관계를 성찰하고 개선하지 못한다면, 오늘과 같은 상황은 언젠가 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5명의 해고자 복직 해결뿐만 아니라, 앞으로 교회 내 다른 사업장에서 원만한 노사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우선 교회는 노사관계에 대한 해석과 입장 정리, 상호 실천기준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 또 교회는 경영과 노동, 노사관계에 대한 올바른 개념 정립, 경영 전문 사목자 양성과 교육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 지난 4월,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이 소재한 서울 서초평화빌딩 앞에서 가톨릭중앙의료원 해고자가 대화 기회 마련과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뒤에 걸린 플래카드에 “염수정 대주교님(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가톨릭학원 이사장)! 11년 전에 해고된 성모병원 노동자 5명은 병원으로 돌아가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정현진 기자

‘공정하고 정의로운’ 가톨릭 병원 노사관계 향한 미국 교회의 노력

첫 번째, 노사관계 재정립과 노사간 합의에 의한 실천기준 마련에 대해서는 이미 그 선례가 있다. 미국 주교회의가 1999년 노동자와 경영자간 합의를 통해 만든 실천규범이다.

“가톨릭 지도자들은 농장 노동자들이나 축산물 가공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조합은 지지하면서 자신들의 기관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것은 반대합니다. 가톨릭 사회교리에도 불구하고 우리 수도자들은 형편없는 사용자입니다.” (미국 수도자 사용자 프로젝트 책임자였던 노틀담수녀회 바바라 파르 수녀)

1997년부터 미국 가톨릭 의료기관 역시 많은 노사 분규를 겪었다. 주로 노동조합 결성을 둘러싼 분쟁이었는데, 노조 결성에 대해 의료원 측은 반노조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주로 수녀원이 경영하는 병원이 많은 탓에 1996년 설립된 ‘노동자 정의를 위한 전국 종교간 위원회’는 노조와 수도원 운영 의료원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수도자 사용자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이와 함께 미국 주교회의는 1999년 8월, 주교회의 산하 ‘가톨릭 의료기관과 노동 소위원회’를 통해 <가톨릭 의료기관에서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직장을 위한 원칙과 실제>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가톨릭 의료기관과 노동 소위원회’는 의료기관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대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주교, 가톨릭 의료기관 대표, 여자 수도자 장상연합 대표, 산업별 노동조합연맹 대표 등이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소위원회는 병원 업무와 노동자, 노동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이끌어내는 가톨릭 사회교리 원칙과 정의로운 직장을 만드는 요소를 서로 확인하고 합의를 시도했으며, 그 결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직장을 위한 원칙과 실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배포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직장의 조건은 공정한 임금과 충분한 복지 혜택, 안전하고 적절한 근로 조건, 노동자가 자신들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병원의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포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앞서 1999년 6월 미국 주교회의가 선포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존중하기―가톨릭 의료기관과 노동조합을 위한 안내와 선택>은 주교, 가톨릭 의료기관 경영자, 노동조합 지도자 등이 수년간의 토론을 통해 내놓은 결실이다. 이는 가톨릭 의료기관과 노동조합이 기존의 공격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합의에 바탕을 둔 ‘평화협정’이며, 나아가 가톨릭 학교, 교구, 본당 등 모든 가톨릭 기관의 노사관계에서 노동자의 권리 존중에 관한 가톨릭 사회교리 실천지침서다.

내용은 노동의 존엄성과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가치를 두며, 가톨릭 의료기관의 신앙에 바탕을 둔 사명, 가톨릭 정체성, 예수의 치유 사목의 모범을 따른다고 되어 있다. 또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헌신하는 조직화된 운동으로서의 ‘노동조합’을 인식하고 존중한다고 밝히며, 의료기관과 노동조합 모두가 환자 치료에 헌신한다는 것을 인정, 각 인간을 천부인권을 가진 존재로서 존중한다고 천명한다.

이에 따른 구체적인 7가지 원칙은 상호존중, 정보에 대한 동등한 접근권, 진실한 의사소통,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 공정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과 소통 과정, 지역 합의의 의미 있는 강화, 노동자의 결정에 대한 존중 등이다.

“노동운동의 지도자들과 가톨릭 의료기관, 그리고 우리 가톨릭 주교회의는 직장에서의 대표성 문제에 관하여 노동자들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택을 보장하는데 가톨릭 사회교리가 어떻게 노동조합과 경영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형성해야 하는지 10년 이상 조용히 본질적인 대화를 가져왔다. 이 특별한 논의가 이 문건을 만들어냈다. …… 우리는 이 문건이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것은 의무적인 것도 아니고 하나가 모든 해결책에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분쟁에서 오는 고통과 손실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분쟁의 현상 유지는 우리 모두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존중하기―가톨릭 의료기관과 노동조합을 위한 안내와 선택> 서문 중)

지난해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윤리헌장>을 마련했다. 총 4부로 나뉜 윤리헌장의 내용은 한국 가톨릭교회 의료활동의 역사와 기원,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사명과 정신,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활동, 가톨릭 의료활동의 기본 원칙인 인간 존엄과 생명 존중,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 가톨릭중앙의료원 이념 적용과 실천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중에는 노조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으며, 대체로 미국 주교회의가 선언한 내용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미국 주교회의 문헌이 갖는 보다 중요한 의미는 사측의 일방적 지침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함께 오랜 시간 논의하고 합의한 결과라는 것이다. 미국 교회는 양 당사자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병원 노사간 협력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 가톨릭중앙의료원 파업 215일째였던 2002년 12월 23일, 십자가를 들고 명동성당 주변을 돌고 있는 병원 노동자들 ⓒ민중의소리

사제, 수도자가 병원 경영하려면 합당한 소양 · 전문성 갖춰야

두 번째, 가톨릭중앙의료원 경영자 교육과 전문 사목자 양성의 문제다. 한국 가톨릭계 의료원의 경우, 경영과 관리를 사제와 수도자가 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의 경우, 일반 의사가 병원장을 맡더라도 최종 결정권은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이 갖는다.

의료원 경영, 관리는 전문 영역이다. 만약 사제가 병원의 경영을 책임지려면, 마땅히 이와 관련된 소양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 경영자가 갖춰야 할 소양이란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노동과 노동조합 등에 대해 편파적이지 않은 지식과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는 병원뿐만 아니라 교회 내 기관의 경영을 위해서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읽고, 사회교리의 가르침에 입각해 노사간 합의에 의한 규정을 만들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대안은 경영과 사목을 분리하는 것이다.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성직자와 수도자는 사목자의 길에서 자기 역할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추구하는 명실상부 ‘최고의 병원’, 치유 사명 구현을 위한 교회의 선택은 명확하다. 미국 주교회의는 오랜 가톨릭 병원 노사분규를 겪은 후, 내놓은 선언을 통해 “과거의 분쟁에서 오는 고통과 손실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분쟁의 현상 유지는 우리 모두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제 한국 교회, 무엇보다 서울대교구와 가톨릭중앙의료원도 그와 같은 성찰과 실천을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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