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도심과 수도권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송전선로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송전선로는 대부분 송전탑으로 대변됩니다. 한국은 국토면적당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송전탑이 산과 들에 세워졌습니다. 송전탑이 세워지는 곳을 송전선로 경과지역이라고 말합니다. 최근에는 밀양으로 상징되는 765kV 등 초고압 송전탑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초고압 송전탑이 건설되는 것은 송전 과정에서 손실되는 전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초고압 송전탑이 사람과 자연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한국
광주항쟁 42년이 흘렀습니다.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광주항쟁의 진실은 아직도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군대의 주인인 시민들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린 학살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누구인지 오리무중입니다. 심증은 있되,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검찰로 정권이 넘어가고 맞는 광주항쟁 42주기입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망월동 구묘역에서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모여 미사를 드렸습니다. 이날 미사에서 마산교구 하춘수 신부는 “5월이 오면 80년 광주 사람들의 그 뜨거웠던 외침이
작년 1월이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고 있었습니다. 옥천을 지날 때, 연락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급히 차편을 구해 부산으로 향하는 중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참 편안해 보였습니다. 선친을 먼저 보내고, 30여 년을 지내면서 하느님께만 의지하며 사셨습니다. 성서 필사를 하시는 등 언제나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에 묵주를 놓아 드리며, 마지막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어버이날을 보내면서 어머니가 그리운 아침입니다.하느님의 평화를 빕니
세월호 8주기를 보냈습니다. 전국에서 세월호 8주기를 맞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라는 사람들이 시민문화제 등을 열었습니다. 여전히 잊지 않고 팽목항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부산에서도 부산민예총 주관으로 시민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시민들이 가슴에 세월호 배지를 달고 참석했습니다. 아직도 세월호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철학과 가치가 ‘안전보다는 돈’을 선택한 결과입니다.한국 사회가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 것은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깊은 충격
윤석열 당선자 인수위에서 영덕과 삼척에서 폐기되었던 핵발전소 건설을 재검토한다고 합니다. 이에 영덕과 삼척의 시민단체에서는 핵발전소 건설 재검토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영덕과 삼척은 주민투표에 의해서 압도적인 반대와 문재인 정부에서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백지화 하는 내용을 관보에 게재하기도 하였습니다.삼척핵발전소건설반대투쟁위와 근덕노곡원전반투위는 3월 28일(월) 오전 11시 삼척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당선자 인수위를 규탄하였습니다.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삼척원전백지화기념탑 앞에서 탈핵 미사를 드렸습니다.
평화의 섬 제주도 강정에서 출발한 봄바람 길동무들이 3월 23일 오후에 밀양을 찾았습니다. 단장면 용회 마을 입구에서 만난 봄바람 길동무들은 제방길을 걸어 보라 마을에 있는 102번 송전탑까지 걸었습니다. 102번 송전탑은 2012년 1월에 분신하셨던 고 이치우 어르신 형제들의 논이 있던 곳입니다. 고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이라는 비극적 현장이지만, 끝내 765kV 송전탑은 세워졌습니다. 이 송전탑은 신고리 핵발전소 3, 4호기에서 생산된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르고 있었습니다.단장면 동화전 마을 권귀영 씨는 “처음부터 같이 싸우지는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탱크들은 어린이들의 놀이 집이 될 거예요.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과자 상자들이 하늘에서 떨어질 거예요.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박격포에선 풍선이 발사될 거예요.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총구멍에서는 꽃들이 피어날 거예요.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공습 경보나총소리에 놀라지 않고평화롭게 잠을 잘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피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우리는 새로 시작할 거예요. 이 글은 전쟁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옛 유고슬라비아 풀라에 사는 로베르토(당시 10살)라는 어린이가
김진숙에게만 굳게 닫혔던 문이 오늘 열렸다.정문 앞에서 단식을 해도 안 되고애원을 해도 안 되고피가 나도록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오늘에야 열렸다.37년입니다.검은 보자기 덮인 채 어딘지도 모른 채로 끌려간 날로부터 37년. 어용노조 간부들과 관리자들 수십 수백 명에게 아침마다 만신창이가 된 채 공장 앞 도로를 질질 끌려다니던, 살 떨리던 날들로부터 37년입니다.경찰들이 집을 봉쇄하고, 영도로 돌아오는 시내버스를 불심검문하고, 공장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닭장차에 군홧발로 짓이겨 넣던 그 억장 무너지는 날로부터 37년입니다.훈련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하나의 계급이 되었습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가 계급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학벌이 계급의 조건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교육받은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초, 중등교육 과정과 고등교육 과정을 수료하였다고 해서 교육받은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교육철학자인 피터스는 교육은 훈련과 같은 특수한 형태의 과정도 아니고, 강의와 같은 활동도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교육은 오히려 훈련과 같은 과정이 따라야만 하는 기준으로 보았습니다. 피터스는 이 기준에서 교육은 “가치 있는 것이 전달되어야만 한다”라고 말합니다.
오랜만에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여의도에 있는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및 특별법안 철회촉구 전국행동'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부산에서 버스를 빌려 새벽길을 열며 서울을 향했습니다.대선을 앞둔 국회 앞의 풍경은 복잡했습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현수막과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은 경력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핵발전소가 있는 부산과 영광에서 울산과 경주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서울에서도 종교환경회의 대표를 비롯해서 녹색당 당원들이 함께했습니다.문재인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마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을 공동체를 이루었던 사람들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밀려난 자리에는 높은 아파트가 자리합니다.문현동 안동네의 역사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갈 곳이 없었던 피난민들과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묘지 위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밀려온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낮에는 뜯기고 밤에는 집을 짓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밤새 지붕을 얹혀야 뜯기지 않기 때문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히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그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폭발은 없었다”라고 말했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집권하면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탈핵 정책이 ‘무지가 부른 재앙’이라며, 탈핵은 ‘다 함께 망하자는 이야기’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국민들의 의견에 맞춰 신울진 핵발전소 3, 4호기 건설 재고 가능”이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우리가 7억 30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하늘에 퍼붓는다고 하는데, 원전은 폐기물이 위험해서 그렇지 폐기물을 자연에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발전이 원전
천주교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곧 새해인 대림 주간을 맞이하기 위한 성찰의 시간을 보냅니다.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길은 선택입니다. 길은 자유의지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보다는 지금 걷고 있는 길에 말씀을 새기는 것이 옳은 것이겠지요.안개 자욱한 길을 걸으며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라는 말씀을 새깁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밥을 빼앗는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해방되신 이는 ‘빼앗는 밥’이 아니라 ‘먹히는 밥’이 되셨습니다. ‘생명의 밥’이 되신 것
대선을 앞둔 한국의 정치인들은 기후위기와 기후 정의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항구 도시 글래스고에서 개최한 유엔기후변화협약 26차 당사국 총회(COP26)를 맞아 그레타 툰베리 등 청소년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10만 명이 넘는 세계인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 집회에서는 “멸종이냐 사회주의냐”라는 구호와 “지금 당장 행동”과 “체제 변화”라는 구호가 압도적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11월 6일 전국에서 탈석탄과 탈핵을 중심으로 “기후 정의”와 “체제 변화”를 외치며 집회와 시위가 열렸습니다.기후위기는
고 정순규 씨는 경동건설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그이는 2년 전에 부산 남구 문현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하고 사망했습니다. 고인은 구조물 공사 협력업체인 (주)JM건설 소속 노동자로 옹벽 벽체 거푸집 해체작업 중에 추락하여 병원으로 옮겼으나, 다음 날인 10월 31일 사망하였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이의 진상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건조사 과정에서부터 각 기관(경동건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부산지방경찰청)들이 재해 발생 원인을 다르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검찰은 부산지방고용노동
후쿠시마현 이이타테 마을의 하세가와 켄이치 선생이 암 투병 끝에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세가와 선생은 이이타테 마을에서 이장을 지냈고, 낙농업을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핵발전소로부터 40킬로미터 넘게 떨어졌던 이이타테 마을로 피난을 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핵사고가 있던 날은 짙은 구름이 낮게 깔렸고, 비가 왔습니다. 바람은 핵발전소에서 이이타테 마을로 불었습니다.하세가와 켄이치 선생은 우연히 도쿄전력 관리직 직원이 트위터에 남긴 글을 보았습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바람의 방향이 이이타테로
동해안 7번 국도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산에서 출발해서 울산과 포항, 영덕과 울진을 거쳐 삼척과 동해시 그리고 강릉으로 가는 길은 한국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차별과 배제의 길이 되고 있습니다.부산에서 출발하여 기장군과 울주군을 가는 길에는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가 밀집되어 있습니다. 고리와 신고리 핵발전소가 있는 곳의 반경 30킬로미터 내는 부울경 주민 약 382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울산의 중화학 공업단지가 있습니다. 이 길을 지나면 월성 핵발전소가 있고, 핵발전소에서 배출한 핵쓰레기
84년의 역사를 가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새로운 주인을 맞았습니다. 동부건설이 2021년 9월에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84년의 역사에는 노동자들의 눈물과 땀이 녹아 있습니다. 노동자들을 위한 식당과 화장실도 없는 현장에서 배를 한 척 만들 때마다 무명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어갔습니다. 그 노동자들의 원한과 가족들의 눈물이 녹아 있습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이 함께하고 있습니다.동부건설은 영도 조선소의 땅을, 영도 조선소의 배와 기계를, 공장을 그렇게 달랑 한진중공업이라는 ‘회사’ 하나를 산 것이
안해가 운영하고 있는 공부방에는 벼락을 맞아 상처를 입은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올해는 그 대추나무에도 가장 많은 대추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태풍이 오기 전에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대추를 털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추를 털었습니다. 아이들도 첫 경험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떨어지는 대추를 줍기 위해 마당에서 야단법석이었습니다. “대추비가 내려요.”“대추가 아파요.” 아이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대추가 신기한가 봅니다. 머리 위로 대추가 떨어지자 대추를 줍던 아이들이 “아얏!” 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신
월성 핵발전소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이 있습니다. 월성 핵발전소에서 기체와 액체로 배출하고 있는 핵종에 의해 고통받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소변검사를 받은 성인과 어린이들에게서 삼중수소가 배출되어 큰 충격을 주고 있는 마을 주민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몸에 치명적인 핵종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집단이주를 요구하며, 월성 핵발전소 홍보관이 있는 곳에서 농성장을 차렸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아침마다 상여를 매고 월성 핵발전소 정문까지 상여 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도 국회도 한국수력원자력도 주민들의 호소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