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지도위원 복직 발언 전문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을 환영하는 행사장은 문정현 신부와 고 백기완 선생의 영정이 함께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장영식<br>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을 환영하는 행사장은 문정현 신부와 고 백기완 선생의 영정이 함께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장영식

김진숙에게만 굳게 닫혔던 문이 오늘 열렸다.
정문 앞에서 단식을 해도 안 되고
애원을 해도 안 되고
피가 나도록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오늘에야 열렸다.

모두 발언을 한 문정현 신부는 "희망버스를 타고 담장을 넘어 이곳으로 온 죄로 벌금형을 받았다"라며 "김진숙의 37년은 노동해방의 시간들"이라고 강조했다.&nbsp;©장영식
모두 발언을 한 문정현 신부는 "희망버스를 타고 담장을 넘어 이곳으로 온 죄로 벌금형을 받았다"라며 "김진숙의 37년은 노동해방의 시간들"이라고 강조했다. ©장영식

37년입니다.

검은 보자기 덮인 채 어딘지도 모른 채로 끌려간 날로부터 37년. 
어용노조 간부들과 관리자들 수십 수백 명에게 아침마다 만신창이가 된 채 공장 앞 도로를 질질 끌려다니던, 살 떨리던 날들로부터 37년입니다.
경찰들이 집을 봉쇄하고, 영도로 돌아오는 시내버스를 불심검문하고, 공장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닭장차에 군홧발로 짓이겨 넣던 그 억장 무너지는 날로부터 37년입니다.

송경동 시인은 축시라기보다는 한진중공업 열사들을 불러내는 절절하고 애끓는&nbsp;시를 낭독했다. 시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nbsp;©장영식<br>
송경동 시인은 축시라기보다는 한진중공업 열사들을 불러내는 절절하고 애끓는 시를 낭독했다. 시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장영식

훈련소 폐건물에 감금해 놓고 돌아가며 감시를 하던 그 날로부터 37년입니다. 그렇게 생이별을 당한 아저씨들이 보고 싶어 눈물방울마다 아저씨들이 맺혀 오르던 그 사무치던 날들로부터 37년이 흘렀습니다.

그중 가장 보고 싶었던 허 씨 아저씨가 작년에 암으로 돌아가고, 그 아드님으로부터 오늘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한 글자라도 아저씨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퇴직금과 채용 저축으로 유인물을 만들고, 산복도로 골목골목 집집마다 "조합원 여러분" 제목의 유인물을 놓고 돌아섰던 북받치는 날들로부터 37년 만에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심진호 지회장은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투쟁 과정에서 함께 한 모든 분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특히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순간 오열을 했다. 조합원들은 출근투쟁 611일 차인 동시에 천막농성 465일 차를 맞으며, 지도부를 믿고 흔들리지 않는 단결의 힘으로 하나가 됐다. 그 힘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이 결정되는 원동력이었다.&nbsp;©장영식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심진호 지회장은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투쟁 과정에서 함께 한 모든 분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특히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순간 오열을 했다. 조합원들은 출근투쟁 611일 차인 동시에 천막농성 465일 차를 맞으며, 지도부를 믿고 흔들리지 않는 단결의 힘으로 하나가 됐다. 그 힘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이 결정되는 원동력이었다. ©장영식

오늘 하루가 저에겐 37년입니다.
저의 첫 노조이자 생의 마지막 노조인 금속노조 한진 지회 조합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들의 동지였음이 제 생에 가장 빛나는 명예이고 가장 큰 자랑입니다.
심진호 집행부와 여러분들의 힘으로 굳게 닫힌 문을 마침내 열어 주셨습니다.

이 낡은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박창수 위원장이 입고 끌려갔던 옷,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마지막까지 입었던 작업복, 곽재규가 도크 바닥에 뛰어내릴 때 입고 갔던 그 작업복, 최강서의 시신에 입혀 줬던 그 작업복. 탄압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이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리고 더 이상 갈라서지 않는 이 단결의 광장이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다시 꽉 차는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십시오.

김진숙 지도위원은 여기에 한 인간이 있었음을 잊지 말라 달라고 강조했다. 그이는 37년의 한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열했다. 그 오열 속에는 네 명의 열사들이 함께했다.&nbsp;©장영식
김진숙 지도위원은 여기에 한 인간이 있었음을 잊지 말라 달라고 강조했다. 그이는 37년의 한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열했다. 그 오열 속에는 네 명의 열사들이 함께했다. ©장영식

노조위원장마다 감옥으로 끌려가거나 해고되거나 죽었던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이후 그토록 복직을 기다리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복수노조를 만들어 34살 최강서를 죽였던

한진중공업 새로운 경영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단 한 명도 자르지 마십시오.
어느 누구도 울게 하지 마십시오.
하청 노동자들 차별하지 마시고 다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래야 이 복직은 의미가 있습니다.

신념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굴종할 수 없어 끝내 버텼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이념이 굳세서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같은 꿈을 꾸었던 동지들의 상여를 메고 영도 바다가 넘실거리도록 울었던 그 눈물들을 배반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고 백기완 선생의 영정과 문정현 신부가 김진숙 지도위원과&nbsp;함께 85호 크레인이 있었던 곳을 걸었다.&nbsp;©장영식<br>
고 백기완 선생의 영정과 문정현 신부가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 85호 크레인이 있었던 곳을 걸었다. ©장영식

정치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루 6명의 노동자를 죽인 기업의 목소리가 아니라 유족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어제 동료가 죽은 현장에 오늘 일하러 들어가는 노동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차별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들 그들이 목숨 걸고 하는 말을 들어야 차별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동일방직, 청계피복, YH 수많은 70-80년대 해고노동자들 삼화고무를 비롯한 부산 지역 수많은 신발 공장 노동자들이 30-40년을 해고자로, 위장취업자로 빛도 이름도 없이 사라진 그 억울한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맺힌 한을 풀어 주십시오.
아사히, 아시아나케이오, 건보공단, 도로공사 비정규직들,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을 씻어 주십시오.

김진숙 지도위원이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에게 성금을 전달하며 격려했다.&nbsp;©장영식
김진숙 지도위원이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에게 성금을 전달하며 격려했다. ©장영식

이제 이 공장에는 11년 전 고철로 팔려나간 85호 크레인이 곧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희망버스로부터 11년,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해 주신 희망버스 승객 여러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특히 우리 지부 동지 여러분.
엄동설한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하고 절을 하고 글쓰기 강좌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셨던 여러분.
드라이브 스루에 함께 하시고 청와대까지 함께 걸었던 여러분.
문정현 신부님, 그리고 오늘 사진으로 오신 백기완 선생님, 여러분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발언을 지켜보고 있다.&nbsp;©장영식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발언을 지켜보고 있다. ©장영식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 37년의 싸움을 오늘 저는 마칩니다.

먼 길 포기하지 않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긴 세월 쓰러지지 않게 버텨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정리해고의 위기 앞에 선 태영버스 동지 여러분들 힘내십시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함께했다.&nbsp;©장영식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함께했다. ©장영식
©장영식
한진중공업 정년 퇴직 노동자들이 반드시 기념 촬영을 남기는 곳에서 김진숙 지도위원도 한 컷을 남겼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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