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에서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 대회가 열렸다. 마지막 결론 강연에서 교황청 평신도 평의회 의장인 스타니스와프 리우코 추기경은 성숙한 평신도 양성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그 회의 평의원인 조세프 클레멘스 주교는 평신도 양성 교육의 세 가지 주요 도구로서 가톨릭교회교리서, 가톨릭교회교리서 요약본, 간추린 사회교리서를 들었다. 그리고 이 교
▲ 동행-유다와 예수 골고다가 내려다보이는 북서언덕 등허리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둠이 깔렸다. 아래쪽엔 처형장이 희미하게 보였다. 십자가의 횡대만 제거된 채 땅에 박혀 있는 기둥들이 마치 허연 유령처럼 멀리 보였다.오늘따라 칼날을 갈아세운 것처럼 빛나는 아침 햇살이 언덕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이가 처형장 언덕에 올라서자마자 쓰러지듯이 무릎을 꿇었다. 그이
길가에 민들레 한 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 안도현 타
눈동자들- 박춘식내 밥상에는 언제나 작은 눈동자들이 가득하다 밥상 모서리에 올망졸망 붙어 있다숟가락 들 때마다 내 손을 말끄러미 쳐다본다그리고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밥 먹는 나를 빤히 보는 눈동자도 많다 맛있는 반찬을 넘길 때 그 많은 눈망울들이 내 손목을 꼬옥 잡아 끌어 당긴다 어떤 눈동자는 사그라지고 있다 내 입을 보고 있던 눈까풀이 겨우겨우 올라갔다가
그는 수레를 끌고 시장 남쪽 급경사면으로 내려와 수도교를 따라서 성 밖으로 통하는 에세네 문을 향했다. 수도교 하부도시에서 쉰 냄새가 풍겨왔다. 곧 허물어질 것 같은 흙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성벽 앞 작은 언덕엔 움막집들이 깔려 있었다. 집 밖으로 오물들을 아무렇게나 내버린 탓에 골목길은 항상 질퍽거렸다. 골목길은 예전과 똑 같았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 할 때 내면으로부터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이 세상을 힘 있게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며 생명을 돌본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이 나온다. 그러므로 사랑의 관계는 나누고 싶어진다. 사랑은 말이 아닌 행위에 있기에 사랑하는 관계는 주고 싶다. 아까운 것 없이 내게 있는 것을 주고 싶다. 더 깊은 사랑은 자기
우리가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은 하느님의 말씀인데, 기록형태의 성경과 전승형태의 성전이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가장 고귀하고 거룩하기 때문에 ‘신앙의 거룩한 유산’(Sacred deposit of the faith)이라고 부른다.(가톨릭교회교리서 제84항 참조) ‘유산’이라고 번역된 ‘de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 중국 명나라 문인 진계
태양의 강렬한 빛은 아직도 사선을 긋고 있었다. 정오가 되려면 두 시간도 더 기다려야 했다. 그이의 죽음을 재촉하듯이 햇빛은 화살처럼 쏘아댔다. 이곳 언덕까지 오는 길에 그의 기력은 이미 모두 소진되어 버렸지만 마지막 죽음의 문턱에서 그이의 명줄은 길고도 길었다. 올리브 나무 숲속에서 까마귀 떼가 후드득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날았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이가
차 한 잔 -이정우 하느님, 차나 한 잔 합시다. 한밤중에 깨어나서 잠도 더 오지 않고, 글쓰기도 안되고. 저 혼자 차를 끓여 마시려니 자꾸만 심심해집니다. 하느님, 여기 제 방에 오셔서 차나 한 잔 같이 합시다. 앉은뱅이 꽃의 노래, 이정우, 문학수첩, 88쪽 밤중에 깨어나면 컵라면을 후루룩 쩝쩝하는 사람도 있고, 아내의 지친 등골을
‘목이 마르다’ 지쳐서 약간 쉰듯한 그이의 목소리가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정확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달싹이는 입술의 모양만으로도 유다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이는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그이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망나니 한 녀석이 그곳을 지키고 있던 병사에게 긴 창을 빌려와 창끝에 해면을 둘둘 말아서 포도주를 적셔 십자가에 달린 그의
가톨릭교회는 매년 10월4일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념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생태계의 주보성인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는 이 축일을 즈음해 지난 10월 1일에 제5회 가톨릭 환경상 대상 단체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는데, 이번엔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대표 조해붕 신부)가 대상을 받았다. 4대
들음 청각은 우리를 삶으로 인도한다. 맑고 밝은 음악을 들으면 내부에서 기쁨이 깨어나고... 때로는 듣는 것을 통해 끊임없는 즐거움을 체험한다. 귀를 기울여 듣는 가운데 소리로 들을 수 없는 것도 듣게 된다. 하느님을 듣게 된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함으로써 성사의 은총을 받는다. 성사의 은총은 모든 성사거행에서 미리 앞당겨 맛보는 천국의 온갖 축복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은총의 힘으로 하늘의 시민답게 살 수가 있으며, 이 지상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수님처럼 행동할 수도, 순교성인들처럼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그래서 제2차
‘마리아’에 대한 기억어머니, 하고 부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등이었습니다. 내 기억의 끝닿은 데로 가 보면, 어머니 등에 업혀 인천 도화동 성당엘 가서 발돋음 하며 미사를 ‘구경’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그것은 제 가장 오래된 기억일 것입니다. 대여섯 살 때였을까요? 잘 모릅니다. 그저 제대에서 벌어지는 일이 궁금해서
기도 / 박춘식 어떤 이는 하느님을 석고 틀 안에 넣어 정교한 규격품으로 만듭니다 흐르는 물을 밟으며 소박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감사노래 하는 이도 많이 있습니다 미루나무 바라보며 하느님은 나뭇잎을 어루만지는 바람이었구나, 라고 들숨 날숨으로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시의 첫번째 연은 하느님을 고체로 여기
우리의 삶 자체가 그분을 향한 노래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행하는 모든 것들이 그분께 바치는 향기고 기도다. 카인과 아벨이 그러하였듯이 우리의 무엇을 선택하여 그분께 어떻게 드리고 있는지 인식할 수 있는 은총이 요구될 뿐이다. 새날 새 아침을 맞으며 시간이라는 외줄을 걷는 우리들 너와 나 우리 모두는 그분을 향한 노래이다. * 임의노래: 4집 10트랙 임의
가톨릭교회교리서는 믿어야할 신비인 제1편, 거행할 신비인 제2편, 살아야할 신비인 제3편, 기도해야할 신비인 제4편으로 구분되지만, 유기체적인 한 몸으로 되어있다. 마찬가지로 미사경본도 시작 예식,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 마침 예식으로 되어있지만, 서로 밀접하게 결합하여 단 하나의 예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별개의 것으로 분리시키거나 어느 하나를 종
가을의 기도 2-윤임규 내 몸과 마음을 거두어 가십시오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나뭇잎 다 떨어져 쇠잔한 팔 위에 거미줄처럼 걸리는 바람과 별빛도주여, 이젠 거두어 주십시오 그냥 아무것 걸친 것 없는 몸이게 그냥 아무것 들리지 않는 마음이게내게 있는 모든 걸 거두어 주십시오 이제는 당신의 온유한 마음 속에 내 피곤한 눈을 감겠습니다 황량한 비바람의 언덕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다. 왜냐고 묻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귀고리를 귀에만 달지만 또 어떤 사람은 코에 머리에 발목에 그리고 옷에 장식으로 매달기도 한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그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왜냐고 묻는 사람은 귀고리를 귀에만 달아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묻지만 귀고리를 넘어서 다른 용도로도 얼마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