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 소설-2] 동행-유다와 예수

태양의 강렬한 빛은 아직도 사선을 긋고 있었다.
정오가 되려면 두 시간도 더 기다려야 했다. 그이의 죽음을 재촉하듯이 햇빛은 화살처럼 쏘아댔다. 이곳 언덕까지 오는 길에 그의 기력은 이미 모두 소진되어 버렸지만 마지막 죽음의 문턱에서 그이의 명줄은 길고도 길었다.

올리브 나무 숲속에서 까마귀 떼가 후드득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날았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이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온 몸을 비틀며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그리고 유다가 숨어있는 풀숲 쪽을 향해 잠깐 눈을 들었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분노로 가득한 그이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와 귓가에 한참을 맴돌았지만 유다는 그 목소리를 정확하게 헤아리지 못했다.

그이의 마지막 절규는 하늘에 대한 분노와 절망에 묻혀버리고 끝부분만 유다의 귀에 들어왔으나 그것조차도 확실치 않았다. 그이가 울부짖으며 뱉어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유다에게 중요할 겨를이 없었다. 유다는 그이가 이토록 허무하게 숨을 거두어버린 사실을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잠시 후에 그의 죽음을 지키고 있던 여인들의 외마디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도 꿈쩍하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예루살렘, 썩어가는 도시도 그대로였다.

그는 숨을 죽이고 일단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이가 죽었다는 기별이 아직 하늘에 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혹시 우리가 진정으로 기다리던 예언자가 갑자기 나타나 그이를 되살려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적은 언제든지 우리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다가온다. 그이가 죽음에 든 순간에도 기적과 같은 헛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자신이 비루하다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종종 사람들은 목숨의 끝자락을 밟고 서 있을 때면 꼭 기적을 생각했다.

건너편 언덕이 잠시 술렁거리더니 쇠뭉치를 든 병사들이 십자가들 사이를 다니면서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들의 다리를 꺾었다. 산헤드린의 요셉 의원이 허겁지겁 달려와 백부장을 한쪽으로 불러내 작은 돈주머니 하나를 허리춤에 찔러주었다. 그리고 그이의 죽음을 지키고 있던 여인들 중 한사람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곧 이어 여인들이 서로 무슨 말인가 주고받더니 그이의 주검이 매달려있는 십자가 밑으로 다가갔다.

백부장이 망나니들을 불렀다. 망나니들이 먼저 발등에 박힌 쇠못을 빼내자 그이의 시신이 밑으로 쳐지면서 발끝이 땅에 닿았다. 그리고 십자가의 횡대를 들어 올려 땅위에 뉘고 그이의 손목에 박았던 쇠못을 빼냈다. 여인들이 그이의 주검을 받쳐 들어 어머니 마리아의 무릎위에 올렸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줄곧 골고다 언덕의 끝자락만 멍하게 바라보던 마리아의 가녀린 어깨를 막달라의 마리아가 감싸안고 흐느꼈다. 요셉의 하인이 보따리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보따리 속엔 삼베가 개어져 있었다. 남아있던 여인들 중 수산나가 마리아의 무릎에 놓인 그이의 주검을 발끝부터 삼베로 가지런하게 묶었다.

어머니 마리아가 문득 고개를 숙여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얼굴이 무척 야위어 보였다. 어머니는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피딱지가 엉킨 아들의 머리칼을 가지런히 쓸었다. 그리고 그이의 이마에 박혀있는 가시넝쿨을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가시 하나가 그녀의 손바닥을 깊이 찌르며 말했다. 나는 너희 인간들의 살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없어. 타볼산 고갯마루의 거센 바람만이 나의 뿌리를 튼튼하게 한다. 나는 타볼산에서 당신 아들의 옷깃을 잡고 더 이상 가지 말라고 말렸다. 그런데도 그는 날이 밝자 갈릴리 바다를 향해 성큼성큼 고갯길을 내려갔다. 내 말을 듣지 않았어. 가시가 작은 소리로 뱉는 말을 그녀 혼자만 들을 수 있었다.

▲ 그림/홍성담

그이의 이마에서 벗겨놓은 가시넝쿨이 살아있는 짐승처럼 땅바닥위에서 다시 또아리를 틀며 웅크렸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흐르는 피 한방울이 아들의 가슴에 묶인 삼베 위에 뚝 떨어졌다. 이 가시넝쿨을 아들의 이마에 씌우고 네가 진정 세상의 왕이더냐 라며 조롱하던 저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 모든 것이 어린아이들의 장난보다도 더 유치했다. 비록 저들뿐만 아니라 유월절행사 총대를 수락하고 죽음의 행진을 하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던 아들도, 그리고 그 옆에서 우쭐대던 아들의 친구나 제자들도 모두 유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혀를 꾹꾹 깨물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켰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밖으로 보이지 않았다.

유다는 풀숲에 엎드린 채 눈을 들어 언덕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정오의 태양이 작렬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하늘은 커녕 이 땅은 터럭만큼도 변한 것이 없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목덜미와 사타구니를 파고드는 개미도, 자신이 숨어들어 있는 풀숲의 풀이파리 한 장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덕의 사형집행을 낄낄대며 구경하던 사람들도 이젠 모두 집으로 돌아갔는지 주변은 조용했다. 모든 상황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이는 가끔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이야기 뒤끝에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유다도 처음엔 예언자연하는 사람들이 항상 그런 것처럼 그저 뻔한 소리다 싶어서 믿지 않았지만 그이와 함께 삼 년여 세월을 동고동락하면서 반신반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세월이 지난 뒤엔 편한 마음으로 그이가 말하는 모든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은 이 더러운 세상을 변화 시키거나 뒤집어엎을 마땅한 대안의 부재가 날이 갈수록 그를 자포자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느님의 아들, 그이의 죽음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순 없었다. 그러나 그이가 죽었다는 것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이의 죽음 앞에 하늘은 아무런 응답도 분노도 없었다. 모든 것이 허망했다. 아니 세상 모든 것이 그이가 죽기 전 그대로였다. 세상은 그이의 죽음과 전혀 무관했다.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점심을 먹은 후에 낮잠을 달게 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일상을 태연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는 상체를 조심스럽게 틀어서 하늘을 바라보고 반듯이 누웠다. 그의 이마 위에 올라선 푸른 하늘은 올리브 나뭇가지와 이파리들로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그이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이 무정했다. 그 무정함 때문에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쳤다. 눈물이 가득 고였다가 양쪽 눈꼬리를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와 함께 했던 이 모진 세월이 실상 아무것도 아닌 사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더욱 슬펐다.

그이는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오늘 아침, 머리에 가시넝쿨을 쓰고 군중들의 조롱에 넋을 뺏긴 채 연약한 가슴을 벌벌 떨면서 처형장의 기둥에 가로질러 붙일 횡대를 메고 가던 그이의 얼굴이 생각났다. 이미 모든 것을 진즉에 포기해 버린 표정이었다. 얼굴은 잔뜩 겁에 질려 납덩어리처럼 굳어 있었다. 유다는 그 모든 상황을 멀리서 숨어 보며 그이의 뒤를 따라 이곳 왼편 언덕 풀숲에 숨어들었다.

그이를 조롱하는 군중들에게 느낀 분노가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그이에게로 향했다. 그이는 전혀 당당하지도 못했다. 자신의 십자가 횡대조차 매고 가지 못하고 몇 번이나 쓰러질 정도로 연약했다. 두 번째 쓰러지자 그이의 등에 마구 채찍질을 해대며 길을 독촉하던 병사가 매질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들인 듯한 어린 소년의 손을 꼭 잡고 구경하던 몸짓 좋은 한 사내를 불러 그이 대신 횡대를 짊어지고 갈 것을 명령했다. 그가 횡대를 짊어지고 성큼 걸음을 옮기자 그이는 비틀대며 뒤를 따라갔다. 혼자서도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군중들은 더욱 분노에 가까운 조롱을 보냈다. 그 중 성질이 사나운 사람들은 몇 걸음 다가와 그이의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다. 처음부터 군중들의 이런 반응을 선동하던 몇몇 사람들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특정 세력에 의해서 동원된 사람들이 분명했다. 유다는 그들 배후 인물들의 면면을 떠 올렸다. 그들의 계획이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치밀하고 조직적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군중들의 반응은 급속하게 변해버렸다. 아니, 군중들이란 이미 처음부터 우리 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유다는 이때부터 모든 상황이 자신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런 저항 없이 비틀거리며 따라가는 그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분통이 터졌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군중들마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더구나 그것을 먼발치에 숨어서 바라보며 따라가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분통이 터졌다. 이 상황을 반전시킬 어떤 대안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되어버렸다. 이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한참을 더 서럽게 울다가 몸을 일으켜 다시 건너편 언덕을 바라보았다. 여인들이 삼베로 묶은 그이의 주검을 받쳐 들고 언덕 뒤편으로 향했다. 맨 앞에서 그이를 받쳐 든 작은 체구의 사내는 그이의 남동생 요한이 틀림없었다. 막달라의 마리아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맨 뒤에 어머니 마리아가 수산나의 부축을 받으며 따라가고 있었다. 요셉 의원이 마련해준 동굴묘지로 향하고 있었다.

유다는 문득 내일이 안식일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몇 가지 물건들을 구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이른 오후부터 가게는 문을 닫는다. 이곳 도시 사람들은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저녁을 일찍 먹고 내일 점심까지 굶으며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이른 저녁식사는 평소보다 두배 세배의 분량을 먹어 치웠다. 오늘 저녁과 내일 점심까지 세 끼를 굶는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들은 겨우 두 끼를 굶는 셈이다. 그러나 얼굴엔 스무날도 더 굶은 것 같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흉내 냈다. 내일 안식일엔 그런 고통스러운 표정의 경연장이 되는 날이다. 오늘 밤엔 모두 일찍 문을 걸어 잠그고 방마다 불을 끄고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갈 것이다.

그는 상점들이 문을 닫기 전에 일어나서 서둘러야 했다. 그가 오늘 밤을 한데서 견디려면 술도 서너 병 미리 구입해 두어야 했다. 허리춤에 찬 묵직한 전대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그런 것들을 준비할 수 있는 돈은 충분했다. 그는 눈물을 훔치고 나서 풀숲을 기어 나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큰길을 버리고 작은 골목길을 잡아서 예루살렘 시내를 향해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꾸만 그의 뒷덜미를 노려보며 따라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계속>

홍성담
/ 안토니오, 화가

홍성담은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8년에 독일 행체 화랑 초대전을 출발로 수차례의 해외전을 가졌으며,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민족해방운동사> 사진을 북한에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구속이후 독일, 영국, 미국 등지에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판화전이 있었으며, 1990년 국제 엠네스티본부에서는 예술가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였다. 그의 젊은 의식전, 삶의 미술전, 우리시대 30대의 기수전, 오월미술전, 민중미술 15년 전, 동학 100주년 기념전 등 각종 단체전과 선전전에 수 십여 차례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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