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로 읽는 헌법 - 7]

슬아, 교육 문제나 수업료 ‧ 등록금 문제를 비롯해서, 개인의 영역을 넘어선 각종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지적했을 때 상대방이 힘으로 억누르려고 한다면, 약자 입장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여서 항의하는 것, 말고는? 테러?

바로 모여서 항의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이 바로 ‘집회의 자유’의 권리야. 혹시 2008년, 전국적으로 벌어진 ‘촛불집회’를 기억하니? 돌아보면, 특히 미국산 소고기 전면 수입 허용에 대한 반대의 의미가 강했던 집회였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대통령과 정부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대의 의사를 표시한 사건이었다고 오빠는 생각해.

이 2008년 집회에는 몇 가지 특이했던 점들이 있었어. 그 전의 많은 집회들과는 달리 집회의 중심 세력이 없었다는 점과, 청소년들이 집단적으로, 적극적으로 집회에 참여했다는 점이 유난히 눈에 띄는 부분이었지. 그 가운데에는 가수 ‘동방신기’의 팬클럽인 ‘카시오페이아’에서 활동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특히 청소년들은 ‘일제고사를 통해 학업 성취도를 측정’하겠다는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컸어. 집회장에서는 “한반도 대운하 반대”라든가, “한미 FTA 반대”와 같은 구호들도 외쳐졌지만.

그런데 오빠는 최근에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는 가운데 청소년에게 집회의 자유가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학생들은 집회를 하면 안 될까? 특정 소수 정당, 또는 거대 정당들에게 이용만 당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걸까? 집회하는 학생들은 ‘전교조 선생님’들의 사주를 받아서 집회를 하는 거라서 안 되는 걸까? 집회 자체가 학업에 방해되는 것이니까 집회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걸까?

헌법 제2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 · 출판의 자유와 집회 · 결사의 자유를 가져요.
제2항 언론 ·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지요.

헌법 조문을 같이 보자. 집회 ‧ 결사의 자유의 주체가 누구니? ‘국민’이지. ‘성인’인 국민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빠는 청소년의 집회의 자유 여부가 문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실소했었어. 여러 사람들의 각종 논의 내용을 떠나서, 이미 청소년들에게도 당연히 집회의 자유가 인정되어 있거든. 그것이 학생이라는 신분상 제한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좀 더 클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권리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구성원들이 누릴 수 있는 헌법상 기본권과 가치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하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오빠는 생각했어.

헌법 제21조 규정을 보다시피 청소년도 집회를 할 수 있어. 그리고 여기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아. 단지 신고만 필요할 뿐이지. 정당에 이용당한다거나, ‘전교조 선생님’의 사주를 받는다거나 하는 모든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들에 불과해. 원칙은 집회의 자유가 있다는 거야. 있는 걸 없애려고 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걸까? 대한민국에 헌법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비단 청소년뿐 아니라, 사회 각 계에 ‘집회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광범위한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 기본적으로 중 · 고등학교에서도 집회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잘 가르치지도 않지 않니? 최근에 프랑스에서는 심지어 판사들도 판결을 거부하는 집단행동을 했는데 말이야.

2008년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 그 촛불집회와 관련해서 많은 시민들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았어. 특히 ‘야간옥외집회 금지’ 조항이 많은 분들의 발목을 잡았어. 그런데 이 조항에 대해서, 참여연대의 안진걸 당시 사무처장이 재판 중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고, 재판부는 이것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었어. 그리고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잠정적용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지(헌법재판소 2009. 9. 24. 2008헌가25).

(* 헌법재판소법 제41조 제1항에 따라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때에는 당해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은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한 결정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의 심판을 제청할 수 있는데, 사안에서는 야간옥외집회금지 조항이 위헌인지 여부에 따라 안진걸 씨가 유죄인지 무죄인지가 달라지기 때문에 재판의 전제성이 인정되었고, 법원은 그 조항이 위헌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었기 때문에 당사자의 청구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거야. 부록에서 얘기한 ‘헌가’ 사건이란다.)

헌법재판소에서는 허가제 규정으로서 위헌이라는 의견이 5인, 과잉금지 원칙 위배로 헌법불합치라는 의견이 2인이어서 결국 위헌 정족수 6인을 채우지 못하여 ‘잠정 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이 판결 이후 법원들에서는 그 조문이 적용되어 기소된 시민들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기도 했어.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개정입법 시한으로 정해 둔 2년 뒤까지 개정 법률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야간옥외집회금지조항은 폐기되었고, 결국 2010년 7월, 검찰은 야간옥외집회금지 위반자 1,157명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기도 했지.

이 과정 속에서, 사실 오빠가 주목한 부분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의견 중 이 부분이었어.

“집시법 제10조에 의하면 낮 시간이 짧은 동절기의 평일의 경우에는 직장인이나 학생은 사실상 집회를 주최하거나 참가할 수 없게 되어, 집회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박탈하거나 명목상의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슬아, 어떻게 생각하니? 이 의견을 잘 읽어 보면, 당연히 학생들도 집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전제로 이런 판결을 한 거야. 혹시 여기서의 ‘학생’은 ‘대학생’ 아니냐고? 그렇지 않아. 대학생만을 일컬어야 할 경우에는 ‘대학생’이라고 하거든. 헌법불합치 의견을 내신 두 재판관께서는 학생들에게는 집회의 자유가 있고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는데 야간옥외집회를 금지해 두면 낮 동안에는 공부하느라 바쁜 학생들이 집회를 사실상 못 하게 되어 그것이 위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계신 거야. ‘학생이 아닌 청소년’에게 집회의 자유가 있는 것도 당연한 거고.

슬아, 잘 알아두려무나. 청소년들에게도 당연히 집회의 자유가 있다는 걸!
 

 
차진태 (모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재학 중이며, 구속노동자후원회 자문위원, 대학원자치회 대표를 맡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 배동교육(청년교육)을 받은 회원이며, 서울대 가톨릭 기도 모임 ‘피아트(FIAT)’에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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