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한상봉]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인 지난 6월 29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지난 1년간 새로 임명된 19개 나라의 대주교 34명에게 팔리움을 수여했다.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의 직무와 권한을 상징하는 것으로, 제의 위에 걸치는 하얀 양털 띠다.

이날 교황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하느님의 계획이 작은 조각으로 나뉜 거대한 모자이크와 같다”고 말하고, 이어 “팔리움은 분열의 상처를 지닌 교회가 일치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항상 일깨워준다”면서 로마 사도좌와 지역교회의 일치를 강조했다.

이러한 점에서 지역교회 주교들과 교황의 인격적 만남이 중요할 텐데, 통상 각 나라에 파견되어 있는 교황대사들은 일상적으로 지역교회와 로마 사도좌의 일치를 도모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역교회의 주교를 선출하는데, 교황대사의 태도와 견해가 절대적이라는 점은 교황대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확인해 준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대교 랍비인 아브라함 스코르카 교수와의 대담에서 “오늘날의 교회가 제왕교권설, 법률주의, 절대주의 시대에서 변화한 것처럼, 미래에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다른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하며, 대규모 교회에서 교구 중심의 소규모 공동체로 가는 게 마땅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한상봉 기자

서울대교구, 주교 공석 3년째 표류하고 있어
프란치스코 교황, 교회 내 ‘출세지상주의’ 비판해

한편 한국 교회의 경우, 서울대교구는 2010년 김운회 주교가 춘천교구장으로 임명되고, 2012년 염수정 대주교가 정진석 추기경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됨으로써, 최소한 2석 이상의 주교가 공석으로 남아 있지만, 보좌주교에 대한 추가 임명이 이어지지 않은 채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교구 안에서 실세가 누구이며, 어느 사제가 로비에 열중하고 있는지 소문이 무성하다. 물론 현직 교구장 대주교의 입장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그 다음은 교황대사의 입김이 가장 짙을 것이기에, 신임 주교 임명이 늦추어질수록 교회 안에서는 이를 둘러싼 여론이 더욱 뒤숭숭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교회 요직을 독점하고 있는 몇몇 사제들 때문에 주변부로 밀려난 사제들의 원성도 잦아들지 않는다.

이 마당에 지난 6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각 나라에 파견된 교황대사들과 교황사절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공석인 교구들의 필요를 살피고 교황이 적합한 주교 후보자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새로운 주교 후보자를 찾는 일은 “까다로운 임무”이며 “야심이 있는 이들, 주교직을 노리는 이들을 조심하라”고 당부하면서 “우리는 주교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이들을 원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기업 안에서 승진을 위한 경쟁이 치열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고위성직자가 되고 싶은 열망은 사제들에게 여전히 커다란 ‘유혹’이다. 교회법에서 어떻게 규정하든, 교회 직무가 ‘봉사’보다는 ‘권력’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안에서 이루시는 계획들을 사랑과 인내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이 바라는 주교는 “신자들 가까이 있는 사목자, 온유하고 인내심 있으며 자비로운 아버지요 형제”라고 말했다. 이어 주교는 ‘군주’로 군림하지 않고, 영적이며 실제적인 가난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준에 적합한 주교를 한국 교회 안에서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테지만, 적어도 앞으로 선출된 주교는 사심이 없고, 출세 지향적이거나 권력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가난의 영성’ 안에서 겸손하고 청빈한 인물이기를 기대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줄곧 교회 안의 ‘출세지상주의’를 비판해 왔다. 교황이 추기경 시절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대-라틴아메리카 신학교 학장인 랍비 아브라함 스코르카와 나눈 대담이 실려 있는 <천국과 지상>(율리시즈, 2013)에서 교황은 “가톨릭교회에 일어난 한 가지 좋은 일은 교황령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1870년까지 교황이 다스리던 중부 이탈리아 지역을 빼앗기고 나서야 교황이 영주라기보다 순전한 종교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은 지금도 교회가 “음모와 책략에 뒤엉켜 있다”고 말한다. “가톨릭교회 사람들에게도 욕망이라는 것이 있고, 슬프게도 출세제일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고, 스스로를 유혹한다.” 그러니 주교나 사제는 자신이 도유(塗油)받은 의미를 지키려면 “바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황대사가 교황을 등에 업고 직권 남용하며
마치 총독처럼 군림한다는 비판 나와

▲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한상봉 기자
지난 1월 16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현직에 있는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에 대한 고발 내용을 담고 있는 ‘서울대교구 중견사제모임’ 명의의 편지를 한 통 받았다. 7장이나 되는 이 편지의 내용은 “그분이 계시는 한 한국 교회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며, “교황대사는 교황님을 등에 업고 직권을 남용하며 마치 총독처럼 군림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편지는 교황대사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지만, 성직자거나 신자거나 교회 내 유력한 이들에게 ‘봉투’를 받는 것쯤이야 교황대사가 아니더라도 ‘유력하거나 인기 있는 성직자’에게 흔히 일어나던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본당 주임신부의 잦은 성지순례와 그때마다 사목위원을 비롯한 유력 평신도들이 돈을 추렴해야 하는 상황, 주교와 사제의 영명축일 축하금, 소임지 이동시 전별금 등 한국 교회 안에서 ‘돈 거래’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느 사제는 방송 프로그램에 강사로 나와서 노골적으로 신자 시청자들에게 “나한테 돈을 가져와라, 좋은 데 써줄 테니”하며, 자신을 하느님 사업의 매개자인 것처럼 떠벌리기도 한다. 그러니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장 우려할만한 교회는 한국 교회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만일 편지의 내용처럼 교황대사가 무례한 전횡을 저질렀다면, 이 역시 한국 교회의 수준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강한 유럽 교회였다면, 지역교회 직무자들과 비판 언론들 때문에라도 교황대사는 처신을 조심했을 것이다. “로마보다 더 로마스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줏대가 없는 한국 교회, 제대로 된 언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한국 교회이기에, 아무도 공개적으로 교황대사를 견제할 수 없으며, 이처럼 발신인도 서명도 없는 ‘익명의 편지’를 통해서만 제 생각을 밝히려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러나 이 편지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교황대사가 ‘주교 임명 제청권’을 지니고 권력을 남용하거나 직무태만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 일례로 편지 발신인은 유수일 주교의 군종교구장 임명을 들었다. “현지 교회의 실상을 정확하게 교황청에 알려야 할 대사가 직무태만으로 인해서든지 아니면 개인적인 욕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군대에 가보지도 않았고, 군대 문화를 전혀 모르는 인물을 군종교구장으로 천거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문제 제기는 150만 명의 교구민과 800여 명의 사제, 230여 개의 본당이 있는 서울대교구에서 김운회 주교가 춘천교구장으로 가고 나서 신임 보좌주교를 기다린 지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정이 없는 답답한 교회 상황에 대한 지적이다. 심지어 염수정 주교가 서울대교구장이 된 후에도 아직까지 신임 보좌주교에 대한 교황청의 임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동안 6명의 사제가 주교 후보자로 거명되었고, 최근에 후보자가 15명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교황대사가 후보 검증을 위한 지리한 서면질의 과정을 진행시키면서 누가 후보로 거론되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어, 후보 당사자나 서면질의에 응답해야 하는 사제들의 고충도 적지 않다는 게 발신인의 주장이다.

이 편지에서는 몇몇 주교 후보자들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스캔들로 문제가 된 사제들도 있고, 어떤 사제는 교회 특권층과 모종의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는 혐의도 제시하고 있다.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이런 논란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 원인을 찾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민주적 원칙에 따르지 않고, 교권의 비밀스러운 결정에 따라 주교를 임명하는 제도를 취하는 데서 먼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 서울중앙우체국에서 발송한 서울대교구 중견사제들의 편지 겉봉에는 ‘젊은 사제들 모임’이라고 쓰여 있고, 발신인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편지 내용을 교회 인사에게 탐문해 본 결과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교황대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이러한 논란이 일어나는 현실 자체다. 실상 교황대사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대부분 한국 교회 성직자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공공연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한상봉 기자

교황청만 바라보는 지역교회 사제와 평신도의 옹색한 처지
교황군주제 벗어나려면, 주교 임명에 대한 제도 개선 필요해

지역교회의 직무책임자를 결정하는데, 교구장과 교황대사에게 그날따라 유독 성령이 듬뿍 내리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는 하급 사제들과 신자들의 처지가 옹색하다. 지난 5월 7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수도회 형제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선거라는 ‘공동식별’을 통해 자신들의 아빠스로 박현동 블라시오 신부를 선출한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언제까지 지역교회의 주교 임명을 지역교회의 사정에 어두운 교황청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가톨릭교회가 유럽 중심에서 탈피해 전세계로 퍼져나간 상황에서 교황의 주교임명제는 ‘교황군주제’를 연상시킬 뿐 그다지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 지역교회는 몇몇 현직교구장 주변 인물과 교황대사의 천거에 의해 결정되다시피 한 인물을 자신들의 주교로 받아들여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대로, 주교 후보자가 ‘군주적 마인드’를 지니지 말아야 한다면, 교황대사와 교황 역시 ‘군주적 마인드’를 버려야 하며, 특별히 군주제적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주교 개인이나 교황의 품성에 의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이런 점에서 지역교회의 주교 임명은 그 주교 후보자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교구 사제들과 수도자 및 평신도들의 의견이 가장 잘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 위해 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 게이트’ 같은 불법을 용인하는 것처럼, 교황대사뿐 아니라 현직 교구장이 줄 세우기 차원에서 주교들을 천거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인사 권력의 집중은 그 권력을 둘러싼 온갖 추잡한 거래가 등장할 위험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좀 다른 경우이기는 해도,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에서 프란시스 치셤 신부는 교권 세력에게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고난과 궁핍 속에서 중국 선교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시골 본당의 사제로 늙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참 애달프면서도 아름다운 사제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신학교 동기생인 안셀름 밀리는 뛰어난 외모와 재빠른 눈치, 빼어난 언변과 사교 수완으로 우등생, 수석 보좌, 외방 전교회 참사, 주임신부, 주교 등의 출세 가도를 달리면서 치셤 신부를 그렇게 괴롭혔다. 불우한 치셤은 성공한 밀리에게 아마도 영적 열패감을 던져준 유일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대로 이제는 주교를 선임하는데, 다른 잣대와 방법이 필요하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