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로 읽는 헌법 - 4]

슬아, 요즘에 학교 갔다 학원 갔다 집에 오면 놀 시간이 별로 없지?
너 뿐만이 아니라, 요즘 중 · 고등학생들 중 절반 넘게 그렇게 생활하지 않아?

그런데 슬아, 혹시 그런 생각 안 해 봤니? 학교에서 뭔가 너무 많은 걸 비효율적으로 배우고 있다는 생각 말이야.

객관적인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교과서가 주입하는 지식 자체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2009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아동 · 청소년 생활패턴에 관한 국제 비교연구>에 따르면 한국 학생의 하루 공부 시간은 7시간 50분이었고 주당 공부 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3.92시간)에 비해 15시간 많은 것으로 조사됐거든.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아동 · 청소년 생활패턴에 관한 국제 비교연구>, 보건복지가족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09)

맙소사, 15시간이 더 많다니! 연구원은 국제 공인자료를 사용하기 위해 15~24세를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심지어 연구위원 한 분께서는 “대학생을 빼면 한국 중고생들의 공부 시간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대. (* 강기헌 기자, ‘한국청소년, OECD 평균보다 주 15시간 더 공부’, <중앙일보>, 2009. 8. 7)

그런데, 본 연구에 따르면 장시간 학업 대비 학습 효과는 비효율적이었다고 해. 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03년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조사(PISA)를 비교한 결과, 핀란드는 청소년들의 일주일간 수학 학습 시간이 4시간 22분으로 한국(8시간 55분)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점수는 544점(한국 542점)으로 한국보다 높았어.

이런 조사 결과가 말해주는 건 뭘까? 공부할 양이 적다면 공부를 오래 할 필요도 없지 않겠어? 공부할 양도 많고 심지어 그것으로 등수를 매기니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닐까? 어른들은 ‘대학 입시’에 목숨 걸어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잖아.

슬아, 한번 헌법을 가지고 생각해 볼까?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은 결과적으로 너와 너의 친구들의 어떤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만일, 너희가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내용들이 너무 많으니까 줄여 달라는 요구를 한다면, 그건 ‘가능하고 합당한’ 요구일까?

지금까지는, 헌법에서 교육과 관련하여 규정한 각종 권리들과 다른 권리들이 종합적으로 ‘학업 부담을 줄여 달라’는 의미로 사용되거나 해석되는 경우는 거의 없단다. 앞서 국가인권위 결정문에서도 봤지만, 헌법상 교육관련 기본권들은 많은 경우에 ‘더 수월하게 교육을 받고 학업을 수행할 권리’로 해석되어 왔어. 또 많은 경우에는 ‘성적 등의 이유로 차별하지 말고 학업의 기회를 동등하게 달라’는 의미에 치중해서 해석되어 왔지. 첫 편지에서 쓴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도 이런 내용을 갖고 있잖아.

예컨대, 서울시에서 학원 운영 시간을 밤 10시까지로 규제한 조례에 대해서 2008년에 학원 운영자와 학원 강사,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학생과 그의 어머니가 헌법소원을 냈던 적이 있어. 이때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내세운 논리가 바로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너무 늦게까지 해서 사실상 학원을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어. 그 친구는 이것이 자신의 ‘행복추구권에 포함된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

슬아, 넌 이 학생의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사실 그 조례는 학원 수업 때문에 잠 못 자는 청소년들이 많아져서 생긴 규정이었어. 그런데 오히려 한 학생이 그것 때문에 자신의 ‘학원 다닐 권리’가 침해된다는 주장을 한 거야. 이 사건(헌재 2009. 10. 29. 2008헌마635)은 결국 ‘기각’ 결정을 받았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 학생이 주장한 ‘학원 다닐 권리’에 대해 오빠는 고민이 많이 되더라. 오빠가 생각하기에 헌법의 규정에서 이야기하는 교육과 관련된 권리는 ‘학원을 다닐 권리’도 물론 이야기하지만, ‘경쟁 교육만으로 치일대로 치여 가면서 힘들게 살지 않을 권리’를 휠씬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거든. 조문을 한 번 볼까?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져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답니다.

헌법 제3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져요.
제2항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집니다.
제3항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하지요.
제4항 교육의 자주성 ‧ 전문성 ‧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됩니다.
제5항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해요.

조문을 잘 보자. 그 친구처럼, 헌법 제10조와 제31조를 가지고 자신이 ‘학원에 잘 다닐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반대로 그 두 조문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강제 야간자율학습이라든가, 지나치게 늦게까지 여는 학원이나 과외 교습에 반대하는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곧, 정확히 같은 조문들을 근거로 해서, 지나친 학교 교육이 학생 개인의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거야. 또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같은 조문을 근거로 해서, 국가에게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학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잘 가르쳐 달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만일 학교 선생님들이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게끔 수업하고, 오히려 학생들에게 학원을 다니고 과외 받을 것을 권유한다면, 그건 헌법상 교육권을 침해하는 게 아닐까?

‘교육권’과 관련된 생각을 해보면 오빠는 참 심경이 복잡해져. 먹먹해지기도 하고. 슬아, 혹시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무서워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교육권’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청소년들의 에너지야말로 우리 사회의 ‘더러움’을 정화하는 원동력이었잖아. 우리 헌법 전문에 등장하는 3.1운동, 4.19, 87년 민주화 운동의 과정 속에서 ‘청소년’들이 없었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있었을까?

어쩌면 ‘입시제도’야말로 청소년들의 에너지를 옭아매는 가장 쉽고 강력한 어른들의 무기가 아닐까? 어른들이 계속 ‘더럽게’ 살 수 있도록 그 힘을 묶어버린 거 아닐까? 그리고, 거기에는 위헌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2000년에 잠깐 야간자율학습이 폐지되었을 때, 불과 몇 개월 만에 청소년들은 11월 3일에 자발적으로 모여서 연대 단체를 만들어 청소년 인권 선언을 했고, 전국 각지에 그 지부들이 만들어지고 두발 · 복장 제한 철폐를 주장하면서 학생들의 인권 침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어. 당시 사회참여동아리 활동을 하던 오빠도 여기에 참여 했었고. 그때 이후로 오빠는 줄곧 입시제도가 어른들의 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단다. 지금까지도.

“학력주의는 개인의 능력보다 학력이 과대평가되면서 사회 구성원이 필요 이상으로 학력에 집착하는 현상을, 학벌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관계없이 출신 학교에 따라 사회 경제적으로 차별받는 현상을 말합니다. 어느 사회나 학력과 학벌은 개인의 지적 능력이나 성실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지만, 우리 사회처럼 학력과 학벌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는 드물지요. 대학별 서열이 없는 프랑스는 대학에서도 무상 교육을 받기 때문에 자신이 받은 교육적 혜택을 사회에 되돌려주어야 하는 공공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학력이 특권의식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른바 좋은 학벌을 가진 것을 곧 사적 경쟁에서 이긴 것으로 보기 때문에 학벌을 통해 그동안의 투자를 보상받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민아,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끌레마, 2010, 194쪽)

학벌이 존재하는 그 자체, 대학 입시제도가 존재하는 그 자체, 그리고 그 정점 아래 거의 모든 중 · 고등학교에서 매겨지는 성적과 평가제도 그 자체, 이러한 것들이 모두 어쩌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그런 교육제도들 속에서 계속해서 학생들이 자살하고 서로 학교폭력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이는 명백하게 헌법 제10조에 반하는 것 아닐까?

슬아, 우리 같이 더 생각해 보자.
 

 
 
차진태 (모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재학 중이며, 구속노동자후원회 자문위원, 대학원자치회 대표를 맡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 배동교육(청년교육)을 받은 회원이며, 서울대 가톨릭 기도 모임 ‘피아트(FIAT)’에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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