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정평위, 노사목 주최 '한진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정의와 희망을 여는 미사'. 오는 2월 20일 오후 7시 30분 세 번째 미사 이어갈 것

 "힘내십시오, 힘내십시오, 힘내십시오!"

미사에 참석한 100여 명의 신자들과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있는 힘껏 한진중공업 공장 안으로 응원의 마음을 전했고, 잠시 후 이에 화답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담을 넘었다.

2월 6일 오후 7시 30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서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노동사목위원회가 마련한 ‘한진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정의와 희망을 여는 미사’가 봉헌됐다.

▲ "힘내십시오!" 미사 참가자들은 다 함께 공장 담 너머로 힘내라는 간절한 바람을 넘겨보냈다. ©정현진 기자
이번 미사는 지난 1월 16일에 이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위한 두 번째 미사다. 애초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 촉구를 위해 예정됐던 이 미사는 1월 30일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최강서 씨의 주검과 50여 명의 조합원들이 공장에 갇힌 새로운 국면을 맞아 봉헌하게 됐다.

최강서 씨 사망 41일째를 맞은 지난 1월 30일 민주노총 영남노동자대회를 마친 후,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과 유가족은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로 거리 행진을 벌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최강서 씨의 시신을 구민장례식장에서 영도 조선소 앞 천막 농성장으로 옮기려 했으나 경찰 병력에 막혔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과 집회 참가자들은 뜻하지 않게 한진중공업 서문이 열리자 최강서 씨의 관을 들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불가피하게 공장안으로 들어간 상황에서 한진중공업지회 측은 경찰 측에 시신을 안치할 냉동 탑차를 공장 안으로 들여보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과 사측은 “사태가 장기화 될 가능성이 있다”며 공장을 봉쇄했다.

부산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 및 수도회 사제 20여 명이 공동집전한 이번 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김상효 신부(부산교구)는 “여기 사람이 있다”는 말로 강론을 열며, “성경에서 라자로를 보지 못한 부자처럼 오늘날 자본가들의 죄 역시 사람을 보지 못한 것,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못한 것”이라고 질책했다.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혹시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사느라 잘 보이지 않을까 싶어 말씀드립니다.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드나드는 여러분의 집 문간에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누군가의 아들인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땅에서 난 소출을 먹으며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소박한 꿈을 꾸며 아이들의 웃음에서 삶의 고단함을 잊고 하루하루의 노동을 기쁘게 감수하기를 원하는 그저 사람인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큰 욕심을 내지도 않았으며 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며 그저 하루하루의 소박한 기쁨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그저 사람인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정현진 기자
김상효 신부는 “가진 자들, 자본가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고, 인건비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지고, 노사분규 때문에 투자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들의 요구란 그저 부자의 식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 힘 있는 이들의 입을 윤택하게 만든 후에야 겨우 돌아올 부스러기 정도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부스러기를 빼앗는 것으로 모자라 문간을 더럽힌 손해를 배상하라고 한다”며 내몰린 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했다.

김 신부는 “이곳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 이 사람들은 세상의 그 어떤 가치로도 바꿀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지켜내려 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면서, “성서에서 단죄받은 부자의 죄란, 그가 자기 집 문간에 비참한 한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 볼 수 있는 능력과 기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효 신부는 “더 이상 이런 죄가 지속되거나 반복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능력과 권한, 소유한 재물의 크기만큼 사람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져야할 죄의 크기도 크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것이 원래 자기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했다.

더이상 노동자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말라
우리에게 연대만이 힘,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

미사에 참석한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한진중공업 사측에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사람이 멸시당하고 능멸당할 때 참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며, “노동은 신성하며, 노동자는 단순한 가족이 아니라 거룩한 존재다. 더 이상 이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성전을 더럽힌 상인들에게 채찍을 휘두른 예수의 심정으로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미사 참가자들에게 “노동자들이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 저들이 밟고 때려도 끝내 어쩔 수 없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민주노총 김재하 부산지역본부장은 “날씨가 풀리면 연대투쟁 하는 이들에게는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안에 있는 시신이 훼손될까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서, “연대만이 우리의 힘이다. 40여 일이 지나도록 조문한 번 오지 않는 사측의 악랄한 행태에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 이 싸움은 최강서, 한진만의 싸움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싸움이다. 정의롭고 질긴 싸움 앞에 이길 수 있는 자본은 없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 "손해배상 철회하라" 최강서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 중 하나는 158억 손해배상이다. ©정현진 기자
현재 한진중공업 공장안에는 50여명의 조합원들과 유가족이 최강서 씨의 주검을 지키고 있다. 유가족은 지난 3일, 개인적 사정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한 것에 대한 사과, 유서 내용에 따른 금속노조와의 협상을 전제로 “설 전에 사측이 협상일정을 잡는다면 시신을 공장 앞으로 이동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측은 공장 내 조합원들이 밖으로 나오고 시신은 회사 관리를 벗어난 지역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공장 내 노조 집행부 5명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그중에는 노조 측 협상대표도 포함되어 있는데다, 지난 2일에는 용역을 공장안으로 진입시킨 사실 등을 들며, 사측의 기만적인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한진중공업 공장 앞에서는 매일 밤 민주노총과 지역 시민단체들이 철야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7일 오전에는 허남식 부산시장,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을 비롯한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한진중공업 사태 해법을 찾기 위한 첫 간담회를 열었지만, “시신을 우선 옮겨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한진중공업 사측 입장만이 관철된 채 간담회는 성과 없이 끝났다.

‘한진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정의와 희망을 여는 미사’는 오는 2월 20일 오후 7시 30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공장 앞에서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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