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비평-김유철]

1.
그는 추기경이다.

2.
교황선출권의 유무로 추기경을 쳐다보는 것은 너무 정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국교회와 추기경의 존재여부는 허전하기 짝이 없다.

3.
어쩜 그것은 한국교회 첫 번째 추기경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그림자가 길고 깊은 탓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분명 우리에게는 정진석 추기경이 현존해 있다. 그가 작년 6월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에서 은퇴했고 나이 정년에 막혀 교황선출권이 없어진 원로사목자이지만 그는 분명 현직 추기경이다.

4.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작년 11월 24일 로마에서 열린 추기경단회의에서 6명의 새로운 추기경을 서임했다. 6명 중 3명은 인도, 필리핀, 레바논 등 아시아권 출신 추기경이었다. 특히 필리핀의 타글레 추기경과 인도의 토툰칼 추기경은 오십 초중반의 나이로서 추기경단 가운데 최연소에 해당하였다. 이쯤해서 후임자 양성에 실패(?)한 정진석 추기경은 무슨 생각을 할까?

▲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이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추기경 모자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 UCAN 가톨릭뉴스 )

5.
새로 추기경으로 서임된 필리핀의 타글레 추기경은 <바티칸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임명된 것은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전체 필리핀교회를 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리핀교회는 아시아 전체의 교회 중에 큰 비중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시아 복음화에 필리핀교회가 더욱 열심히 참여하도록 하려는 것 같다.” 그를 외신에서는 세계 교회에 떠오르는 별이며, 앞으로 교황 후보로도 거론했다. 타글레 추기경은 서임 후 첫 번째 공식 인터뷰에서 “교회는 자신의 말을 줄이고 대신에 대중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고 말하며 이어 “대중의 고통과 그들이 던지는 어려운 질문들은 우리가 모든 문제에 해답을 가진 체하는 대신에 우리가 그들과 앞장서 연대하라는 초청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11월 2일 <UCAN 가톨릭뉴스> 참조>) 추기경단의 새카만 후배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정 추기경은 무슨 생각을 할까?

6.
“4대강 사업의 결과를 보고 판단합시다”라고 정 추기경은 말했다.

7.
2010년 12월 8일 정 추기경은 그의 저서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 출간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2010년 3월 춘계주교회의에서 발표된 주교단 성명서가 4대강을 반대하는 내용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4대강 사업도 발전을 위한 개발이라면 무난한 것"이라며 4대강 사업에 대한 조건부 찬성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감사원이 2013년 1월 17일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 주요 시설물 품질 및 수질 관리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4대강에 설치된 16개의 보 가운데 이포보를 제외한 15개 보에서 보의 바닥 보호공이 유실되거나 침하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합천·창녕보는 3,800㎡가 유실됐고, 창녕·함안보는 세굴 때문에 최대 20m 깊이까지 패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유실·침하된 15개 보의 바닥 보호공을 땜질 보수함으로써 6개 보에서 바닥 보호공이 침하되는 현상이 다시 나타났다. 이를 포함해 11개 보에서 여전히 안전성이 우려됐다. 공법상으로는 그렇다 치고 수치로 표현 할 수 없는 생태계 교란을 포함한 강의 환경은 이미 참담한 실정이다. 감사원의 이번 결과를 보면서 정 추기경은 무슨 생각을 할까?

 ⓒ강한 기자
8.
그러나 그가 서울대교구장에 재임할 때 그런 조짐은 이미 도처에서 있었다. 정 추기경의 4대강 사업 관련 발언이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주교회의 소속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 이하 주교회의 정평위)가 4대강 사업 반대는 교회 본연의 사명임을 재확인했다고 2010년 12월 주교회의가 밝혔다. 주교회의 정평위는 그해 12월 16일 정기총회를 열고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으로, 환경파괴와 자연재해를 우려하는 학계의 견해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은 채 국민적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내용과 절차 면에서 정당성이 결여되고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이제라도 충분한 여론 수렴을 통해 재조정되어야 할 불의한 사업이기에, 교회의 4대강 사업 반대가 세상을 참된 가치를 바탕으로 복음화하고 올바른 인간의 길을 제시해야 할 교회 본연의 사명에 해당함을 다시 확인한다”고 밝혔다.

정진석 추기경이 기자들에게 밝힌 사견과 달리 이번 정평위의 의견은 정기총회를 통해 결정된 공식 입장이다. (2010년 12월 18일 <지금여기 >참조) 정 추기경이 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의 의사와는 정반대로 결정한 정평위의 공식입장을 듣고 그때 정 추기경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얀 놈들!” 이었을까?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결과를 보고 말하자”라고 느긋하게 말했을 것이다. 이제 결과가, 그것도 MB정부의 감사원이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 추기경이 “말하자”는 것을 “말하자”는 것이다.

9.
정진석 추기경은 그가 쓴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을 "이스라엘 왕들과 이에 맞선 예언자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하면서 "왕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어야 할 하느님의 대리자였지만 하느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우선시한 경우가 흔했다. 하느님께선 그럴 때마다 당신 뜻을 직접 전달할 예언자들을 파견했다. 이들 예언자들은 왕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할 수밖에 없어 왕들과 협조하기보다는 대결하는 모습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정 추기경은 이 책을 정리하면서 "하느님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려 했다"고 말하며 "통치자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선정을 베풀면 성군이 됐고, 하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욕망을 앞세우면 폭정이 벌어져 폭군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도자는 무엇보다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지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많은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으려면 하느님의 뜻을 반드시 따라야한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9일 <지금여기> 참조)

10.
정 추기경은 자신이 쓴 책의 "이스라엘 왕들과 이에 맞선 예언자들의 이야기"라는 내용과 자신이 "하느님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려 했다"고 한 말을 다시 새긴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11.
정말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김유철 (한국작가회의 시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대표. 저서 <그대였나요>, <그림자숨소리>,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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