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신문을 통해 보는 한국 교회]

서울교구장과 한국교구장은 이음동의어

서울대교구의 염수정 대주교는 지난 2월 22일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그가 추기경이 되기 전 공석인 한국교회의 추기경 서임에 대하여 교회 안에서는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눈 깊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국의 추기경은 김씨, 이씨, 박씨 등의 개인이 아니라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이 유일무이한 한국교회의 추기경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마 이것은 21세기가 제법 지나가도록 한국교회에서는 변함없는 불문율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서울대교구가 아닌 다른 교구에서는 헛힘 쓰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대교구장과 한국교구장은 이음동의어이다.

세 명의 추기경, 그들은 서울대교구장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는 세 명의 추기경이 서임되었다. 익히 아는 대로 그들은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 그리고 염수정 추기경이다. 한 눈에 봐도 모두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재임 중 추기경이 된 것이 공통점이다. 교구자치제가 특징인 가톨릭교회로서는 교황이 교구장인 로마교구로부터 전 세계의 교구가 동등한 자격을 갖는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그렇지 않은 것이다. 추기경은 종교를 떠나서 존경의 대상이 되며, 특유의 진홍색 옷과 예하(猊下)라는 칭호를 듣고, 교회의 왕자(Prince of church)라고 부른다. 그들은 교황을 선출하며, 교황의 최고 자문위원이자 전 세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운영에 협력하는 직분을 지닌다. 그런 추기경을 서울대교구가 무조건 독식하는 이런 일들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 <가톨릭신문> 2008년 7월 13일자
추기경에 대한 장기적 포석은 누가 하는 것일까?

김수환 추기경은 대구 출신으로서 마산교구의 초대 교구장 주교로 재임 중 1968년 서울대교구장으로 옮겼으며 이듬해인 1969년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정진석 추기경은 1970년 주교로 임명되어 청주교구장으로 재임 중 1998년 김수환 추기경의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으로 이동하고 2006년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염수정 추기경은 2002년 서울대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되고 2012년 서울대교구 교구장이 된 이후 2014년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다른 교구에 재임하고 있을지라도 추기경이 될 사람은 미리 서울대교구로 이동되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런 장기적 포석은 누가 하는 것일까?

필리핀∙ 중국∙ 대만∙ 일본의 추기경

잠시 이웃나라들의 사정을 살펴보자. 아시아의 최고 가톨릭국가인 필리핀의 경우 지금까지 모두 8명의 추기경이 배출되었다. 그렇다면 8명이 모두 그 나라의 수도인 마닐라(Manila)대교구장이었을까? 물론 예상들 하겠지만 답은 “아니오”다. 8명중 마닐라대교구장은 4명이다. 다른 4명은 세부(Cebu)대교구장 2명, 코타바토(Cotabato) 대교구장 1명,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1명이었다. 현역 추기경은 2명인데 1명은 마닐라대교구장이며, 다른 1명은 코타바토대교구장이다.

중국의 경우 중국정부와 바티칸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은 점은 있지만 지금까지 교황에 의해 서임된 추기경들은 베이징대교구를 비롯해 난징대교구, 상하이교구였으며 대만은 가오슝교구였다. 현재 현역 중국추기경은 홍콩교구장이다. 우리와 주교 교류모임을 하고 있는 가까운 일본의 경우 지금까지 5명의 추기경을 배출하였으며 그들은 도쿄대교구장, 나가사키대교구장, 오사카대교구장,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위원장으로서 활동했다. 현재 일본의 추기경은 모두 선종하여 공석인 상태다. 한마디로 우리만 오로지 수도 서울대교구를 사수(?)하고 있는 것이다. 왜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국의 유일한 추기경

사실 서울대교구는 한국천주교회사의 압축판과 다름없다.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의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가 초대 교구장이었으며 이후 박해시절의 순교로 3대~5대 교구장이었던 앵베르(Lmvert), 베르뇌(Berneu), 다블뤼(Daveluy)주교는 1984년 바오로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교구장을 지낸 10대 노기남 대주교는 교구의 일방적 찬양(“광복 전후의 격동기에 슬기롭게 교회를 이끌었으며 노력을 더하여 한국천주교회에 교계 제도가 설정되도록 함”-서울대교구 홈페이지 참조)과는 달리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친일 천주교인 7인 중 한 명으로 수록되기도 했다. 이후 서울대교구는 12대 이후 현재의 14대 교구장까지 모두 한국의 유일한 추기경으로 서임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대교구의 표정관리

한국 교회 전체의 공동선 증진을 위해서 사목 임무를 공동으로 조정하여 수행하도록 사도좌가 법인으로 설립한 상설기관으로 일컫는 한국 주교들의 회합이 한국 주교회의이다. 주교회의 의장은 현재 제주교구장인 강우일주교다. 선출직인 주교회의 의장은 해방이후 서울-광주-서울-수원-대구-청주-마산-광주-부산-춘천-제주교구가 번갈아 가면서 그 직분을 수행하고 있다.

▲ <평화신문> 2014년 4월 20일자
서울대교구장이 주교회의 의장을 독식하지 않아도 주교회의 운영에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았으며 교회 안팎의 요구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번번이 이런 주교회의라는 대표성을 지닌 기관을 무시하고 오로지 서울대교구장이자 추기경을 찾아가는 것은 이 나라 정치권의 못된 습성이었다. 어쩌면 서울대교구는 그것을 즐겼다고 하면 지방민의 오해일까?

서울대교구는 한국천주교회의 전부가 아니다

지난 4월에는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해” 염수정 추기경을 찾아갔으며 2008년 6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을 청와대로 초대하여 오찬을 나눈 후, 연이어 한승수 총리가 염수정 보좌주교를 명동으로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이 곧 서울이 아니며, 서울이 곧 한국이 아닌 것처럼, 서울대교구가 한국천주교회의 전부인 것처럼 행세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 교회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처사이다. 무엇보다 한국주재 교황대사관의 관점이 획기적으로 바뀌기를 학수고대하며 한국 주교단 사도좌 정기방문을 일컫는 ‘앗 리미나’(Ad Limina)에서 이런 선의를 교황에게 전하고 지역 교구에서도 추기경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김유철 (스테파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한국작가회의 시인, 경남민예총 부회장. 저서 <그대였나요>, <그림자숨소리>,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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