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김유철]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것을 세상이라 부른다

조금 더워서 그렇지 좋은 계절이다. 어쩌면 여전히 좋은 계절을 보내고 있는 동시대인들의 복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하면 너무 현학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릴까? 직장인들에게는 일 년에 한번 다가온 휴가기간이고, 학생들에게는 방학기간이 맞물려 전국의 여러 휴양지며 산과 강, 바다가 온통 즐거움으로 들뜨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안타까움을 간직한 지역이 산재해 있고, 아픔을 지닌 도시빈민과 농민,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사연도 여전히 들리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세상이라 부른다. 아수라 같은 세상이지만 음과 양, 강자와 약자,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그런 모습을 세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그런 아픔과 갈등을 공감하고 그 간격을 보편적이고 상식적으로 소통하고 화합하려는 것이 모두에게, 특별히 사회적 직무를 지닌 사람들의 의무이며 발등의 불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두드리는 재판봉 소리

쏜살처럼 나왔다 쥐꼬리 감추듯 사라진 이슈가 있었다. 시인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작품을 기존 중학교 교과서에서 빼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작품을 빼자고 생각한 사람들은 작품의 수준을 논한 것이 아니라 시인 도종환이 현실 정치인이 되었다는 판단을 내세웠지만 그 판단은 의원 도종환의 새누리당이 아니라 민주통합당이라는 당적에 방점을 찍은 것일 뿐이다. 이른바 도종환과 그의 작품들은 보나마나 ‘좌’라는 판정이었다.

머지않아 바뀔 정권이지만 현 정권이 들어서고 이런저런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제 자리를 보존하지 못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이미 가물가물한 인물들이지만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의 힘찬 활약(?)을 바탕으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결국 물러나야 했으며 이른바 ‘표적감사’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한국종합예술학교 총장이었던 시인 황지우는 총장직과 함께 교수직까지 박탈되기도 했다. 황 시인은 그 이후 지루한 재판을 통해 교수직위 확인 소송에서 승소했다.

대표적으로 말한 위의 세 사람의 죄목은 도종환과 다를 것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모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을 이끌고 온 문화예술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재판봉 두드리듯 이미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경상도 말로 하자면 “느그들의 죄목은 ‘좌’다.”

▲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이 7월 2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이 2008년 8월27일 좌파 예술인사 숙청 문건을 만들었다”며 제시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란 문건.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은 한국판 문화대혁명인가?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이 7월 2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이 2008년 8월27일 좌파 예술인사 숙청 문건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란 제목의 문건은 “(좌파 문화인들이) 대중이 쉽게 접하고 무의식중에 좌파 메시지에 동조하게 만드는 좋은 수단인 영화를 중심으로 좌경화를 추진해왔다”면서 <괴물> <JSA> <효자동 이발사>를 사례로 제시했다.

문건은 새로운 싱크탱크로 ‘문화정책포럼’을 만들고, 실행기관으로는 ‘한국문화산업연구소’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또 “좌파 집단에 대한 인적 청산을 소리 없이 지속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청와대는 인적 청산 작업을 지속적으로 감시·독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영화자본이 6·25 전쟁 영웅에 관한 우파 영화로 선회하도록 해야 하며, 이러한 재원 마련과 관련해서는 SK텔레콤, 현대차, 삼성 등 사회 환원이 필요한 기업이 국가나 단체에 기부하는 형식을 추진해야 한다고 전략서 문건에서 밝혔다.

문화예술은 ‘이념’ 그 너머에 있다

문건에서는 보수를 대표하는 예총은 규모확장, 정부 지원금 확보, 국회의원 진출 등 외형 및 자리다툼에 치중하여 120만 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으나 회원공감대 및 정체성 부족으로 지리멸렬하지만 ‘좌파’ 민예총은 회원 10만 명이지만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조직적 지원으로 문화 권력의 주도세력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의 말대로 이 문건이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이 작성한 것이라면 그들의 분석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됐거든”이다. 예총과 민예총은 정치인들이 원하는 이념논쟁으로 딴 살림을 차린 것이 아니다. 서로의 지향점이 다르면 얼마든지 자신들과 지향점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다양성인 것이다. 세상의 잣대로 문화예술인들을 갈라놓으려 하지 마라. 그것은 정치인들이 이념 논리로 원하는 것이지만 문화예술은 ‘이념’ 그 너머에 있다.

느그들의 죄목은 ‘좌’다!

아무튼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모든 것을 그토록 재미없는 이념 논리로 보자면 빠져나갈 일이 어디 있겠는가? 왼손으로 빨간 수건을 잡으면 ‘좌빨’이 되는 것인가? 안타깝고 안쓰러운 일이다.

1991년 북한의 국화가 ‘목란’으로 정해졌다고 회자된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진달래 혹은 김일성화, 김정일화로 알려진 그들의 국화가 도시민들에게는 생소한 산목련인 목란으로 알려지자 서울 세종문화회관 광화문역 근처에 많이 있다고 사람들이 보러 다녔다. 목란은 좌도 우도 아닌 그저 함박꽃나무일 뿐이다. 여기서 퀴즈다. 그 꽃나무가 아직도 광화문역 근처에 있을까? 이미 뿌리째 뽑혔다면 그들의 죄목도 역시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느그들의 죄목은 ‘좌’다.”

김유철 (한국작가회의 시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대표. 저서 <그대였나요>, <그림자숨소리>,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등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