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 기사모아보기 기사제보
 
2014.12.19 금 18:36
로그인 | 회원가입
교회
박기호 신부, 공동체에서 또 다른 나, 또 다른 삶을 발견하다‘수행하는 가톨릭교회’ 주제로 ‘지금여기 특강’ 열려
예수살이공동체 박기호 신부, “공동체 수행은 새 삶의 응답”
한상봉 기자  |  isu@catholic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2.06.26  14:19:3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용기를 내어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폴 발레리)

지난 6월 23일 ‘수행하는 가톨릭교회’라는 주제로 예수회센터에서 제3차 지금여기 특강이 열렸다. 이날 특강은 1998년에 ‘예수살이 공동체’를 설립하고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기쁨, 세상의 평화를 위한 투신’의 삶을 살아왔으며, 2006년부터 단양에 ‘산 위의 마을’을 꾸려서 노동과 가난을 살고 있는 박기호 신부와 고성 올리베따노 베네딕도회 수도원 이연학 신부의 초청강연이 이어졌다.

   
▲ 박기호 신부

첫 강연에서 박기호 신부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을 빌어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살면 자기가 사는 대로 결론을 맺고 신념화하는 속성이 있다”며 “늘 자신을 반성하고, 삶에 대해 늘 질문하며 살아야 한다”고 전했다. 박 신부는 최근 ‘산위의 마을’에서 톨스토이의 어록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며 대답을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공동체수행, 새 삶의 응답’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박기호 신부는 “수행은 출가와 관련있다”며 “수행은 자기 삶에 대한 부정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냥 행복해하며 지낸다면 수행은 없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기존의 삶에서 이탈하면서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이 수행이요 출가”라고 전했다.

“작년 리영희 교수 부음을 듣고, 내 마음속에서도 한국의 지성이 눈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박 신부는 지성인들이 주도한 저항운동이 아직 결실을 맺지 못했으며, 이제 그들이 정치권 등 시스템 안으로 많이 들어가 있는데도 우리 사회는 좋아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박 신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세계를 단일화 시키는 체제의 결정이 대한민국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의 삶까지 영항을 미친다”며 “세계 전체를 긍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제 삶을 시스템과 제도에 맡기지 않고 제 스스로가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물으며 여기서 ‘수행’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산 위의 마을’에서 나를 발견하다

박 신부는 충북 단양에 있는 ‘산 위의 마을’이 일종의 ‘노아의 방주’이며, 수행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피난처’라고 말했다. 공동체는 ‘쉼터’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쉼터는 항해하는 배가 풍랑을 맞았을 때 가장 가까운 곳으로 대피해서 풍랑이 멎을 때까지 정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현실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야 되겠다, 도망가자, 라는 일종의 피난 의식으로 가는 곳이다. 현실 도피적인 성격이 있다. 현실도피라 해도, 결국 살려는 생각이 있는 사람만 도망을 간다. 앉아서 죽을 사람들은 도망갈 필요가 없다. (기존)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공동체는 주거를 함께 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어떤 정신이나 영성, 카리스마’에 동의하는 이들이 모여 사는 것이며, 비록 구체적인 삶의 형태는 달라도 모든 행동양식이 ‘이 정신’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박 신부는 “자기의 미션에 대한 응답 역시 이 정신에 비추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공동체의 수행은 공동체로 살아가는 몸을 만드는 것”이라며 “내가 가진 좋은 생각을 공동체에 풀어놓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영성대로 살기 위해 습득해야 할 것은 공부하고, 불필요한 것은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 신부는 공동체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수행의 원리인 ‘정화’와 ‘조명’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는데,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정화’의 과정과 그리스도의 빛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조명’이 가능한 곳 또한 공동체라고 전했다. 즉, “나를 발견하는데 가장 좋은 곳이 공동체”라는 것이다.

박 신부는 산위의 마을에서는 7박8일 단기입촌 체험이 있는데, 특별히 설명을 안 해도 며칠 후면 숨길 것 없이 모든 게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 내가 제일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공동체 안에서 살다보면 백지장 위에 글을 쓰는 것처럼 자신의 생활습관, 성격, 관계방식 등이 모두 드러나 ‘내가 이런 사람인가’ 하고 자기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는 내 자신, 아내, 남편, 자식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학교”라고 말했다.

   
▲박기호 신부는 산위의 마을 단기입촌을 소개하며 “사람은 자신에 대해 내가 제일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공동체 안에서 살다보면 백지장 위에 글을 쓰는 것처럼 자신의 생활습관, 성격, 관계방식 등이 모두 드러나 ‘내가 이런 사람인가’ 하고 자기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전했다.  ⓒ한상봉 기자

공동체로 살아갈 몸을 만들어내는 ‘수행’

박 신부는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적 인간으로 살아갈 몸을 만드는 과정에서 톨스토이에게서 배울 게 많다고 소개한다. 톨스토이는 식탐과 식욕을 범죄시하는데, “고기를 탐하고 양념을 많이 넣고, 음식을 장식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 사람의 욕구 가운데 출발점이 되는 게 ‘식욕’이며, “식욕을 잘 다루면 다른 것도 잘 다루게 된다. 모든 수행자에게 가장 어려운 걸림돌인 정욕조차도 식욕을 잘 다스리면 해결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신부는 노자의 말을 빌어 “자연은 제 것을 덜어서 사람을 먹여 살리는데, 사람은 가진 것을 더 채우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적인 욕구가 ‘사회적인 욕망’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한편 박 신부는 욕망 가운데, 소유욕 등은 비교적 쉽게 극복하더라도, 나중에 남는 것이 ‘명예욕’이라면서, 마을에서 ‘존재감’에 대한 집착은 누구에게나 나타나기 쉽고 끊어버리기 어렵다고 고백했다. 이른바 ‘인정받고 싶은 욕구’다.

“공동체에서 처음부터 걸리는 것, 마지막까지 걸리는 것이 명예욕이다. 소유욕이나 역할의 문제는 빨리 해결되지만, 역할도 자신의 존재감으로 연결되면 신경이 상당히 날카로워진다. 공동체에서 남에게 인정받으려 할수록 무시당하고, 가족들 앞에서도 아는 척 할수록 무시당하지만, 그러면서도 끝까지 버티는 게 인정욕구, 명예욕이다”

   
▲박기호 신부는 "우리가 모든 삶을 장사꾼의 손에 맡기지 않으려면 대가족이 부활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한상봉 기자

대안을 찾아서 “햄릿처럼 생각하고 돈키호테처럼 행동하라” 

공동체적 수행이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대안의 삶을 찾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믿는 박기호 신부는 “대안의 삶이 기존의 삶에 대한 나의 부정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대안사회는 상품주의 가치체계와 시스템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박 신부는 최근에는 ‘대안사회’이라는 말보다, 예전에 있던 것을 찾아간다는 뜻으로 ‘원안(原案)사회’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이점에서 박 신부는 “옛날에는 세상을 복음화 시키는 방편으로 복지 사업, 교육 사업, 의료 사업을 중시했는데, 이제 그런 것은 국가경제가 성장하면서 정부가 나서고 있으니, 교회가 그걸 하는 것은 뒤치다꺼리일 뿐”이라고 여겼다. 박 신부는 이제는 그걸 하더라도 대안학교, 대안의료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안학교에 대한 지원을 늘린다고 발표를 할 때에야 그때 가서 대안학교가 뭐냐고 묻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또렷하게 정신을 차리고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을 먼저 찾아나서야 한다. 이게 교회의 수행이다.”

박 신부는 특히 대안학교의 경우에, 대부분이 개신교에서 세운 학교이며, 가톨릭에서는 3개 있었다가 지금은 2개만 운영되고 있다고 소개하며, “천주교 신자 가운데도 훌륭한 인적 자원들이 많은 데 가톨릭에 대안학교가 없어서 다른 곳에서 일한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편 박기호 신부는 우리시대의 대안 가운데 ‘대가족’의 회복을 희망했다. “우리 사회는 모두가 상업주의의 손길에 의해서 출생하고 죽어간다”며, 우리의 모든 삶을 장사꾼의 손에 맡기지 않으려면 대가족이 부활되어야 한다며, 여기서 출산과 교육, 직업생활이 이뤄지고, 죽음도 온 가족이 호스피스가 되어 맞이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즉, 대가족 제도의 삶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제도라는 믿음이다. 박신부는 공동체야 말로 그 대가족을 회복하는 방편이라고 전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관련기사]

한상봉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지금여기소개광고안내제휴문의찾아오시는길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
서울 마포구 합정동 386-33 유성빌딩 2층 | 대표전화 : 02-333-6515 | 팩스 : 02-6971-8615
등록번호:서울아00818 | 등록연월일:2009.3.24 | 발행인 : 김원호 |  편집인 : 한상봉 | mail to editor@catholicnews.co.kr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영리금지'에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