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동행해 주시면 그 어떤 두려움도 무섭지 않습니다”..현재 안동의료원 중환자실에서 투병

▲병상에서 호흡기에 의존해 투병하고 계시는 정호경 신부. ⓒ 김미경(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회원)

주님!
이 죄인을 너무 족치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의 꾸짖음을 자초한 장본인이 저이지만,
이 고통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
염치없이 당신께 애원합니다.
저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사사건건 당신을 거역하고
제 영혼과 육신과 아울러 이웃에게
해코지만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제가 받아야 할 당연한 벌입니다만,
하오나, 주님!
지금 제 처지가 말이 아닙니다.
......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는 신음뿐입니다.
주님, 저의 탄식 저의 소원을
숨김없이 아뢰고 싶습니다.
심장은 팔딱거리고 기운도 없어지고
눈조차 빛을 잃었습니다. 

▲정호경 신부는 평소 앓던 폐섬유화증이 도져 병상에서 투병 중이다.

안동교구 정호경 신부가 시편을 묵상하며 지은 <오늘의 기도>(성서와함께, 2011) 가운데 들어있는 ‘어떤 참회자의 기도’ 일부분이다. 1970년대의 유신정권 시절에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생명농업과 민주화에 헌신하던 정호경 신부는 그동안 경북 봉화군의 한 작은 마을 비나리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밭작물과 매실나무를 가꾸고, 책을 읽거나 나무판각과 글을 쓰며 지냈다.

정호경 신부가 지난 2011년 5월경 담낭증으로 진료를 받고나서, 잠복되어 있던 ‘특발성 폐섬유화증’으로 투병하다 최근 폐렴으로 번지면서 안동의료원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꽂고 투병 중이다. 정호경 신부의 절친한 친구로 작년에 선종한 류강하 신부도 폐섬유화증을 앓은 바 있다.

그 동안 정호경 신부를 가까이 돌보았던 신대원 신부는 “평생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시려고 노력했던 정호경 신부님께서 어려운 병과 투쟁하고 계신다” 며, 정호경 신부가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음을 알리고 정호경 신부를 기억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하느님게서 정 신부님에게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시길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덧붙여 현재 정호경 신부가 너무 위독한 상태여서 병문안이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안동교구장인 권혁주 주교는 <오늘의 기도> 추천사를 쓰면서, 이 책은 “한평생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고자 노력한 신부님의 진한 신앙고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투병 중인 정 신부를 위로하면서 ‘어느 환자의 기도’라는 정 신부의 시편기도문을 빌어 쾌유를 바란 바 있다.

주님!
신부님이 몸이 몹시 망가졌습니다.
몸도 마음도 몹시 약해졌습니다.
희망도 용기도 점점 사라져 갑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시어 용서하시고
어서 빨리 신부님을 살려 주십시오.
어서 빨리 신부님을 일으켜 주십시오.
그리하여 밤낮으로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 <비나리 달이네 집> 가운데 한 장면, 권정생 글, 김동성 그림, 낮은 산

정호경 신부는 그동안 <농민교리서>를 비롯해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 작업에 동참해 농민사목 분야를 집필했고, <전각성경, 말씀을 새긴다>와 <오늘의 기도> 등을 집필했다. 권정생 작가는 정호경 신부의 삶을 비추는 <비나리 달이네집>이란 동화를 지었다.

정호경 신부는 친밀하게 지내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선종한 뒤에, 이미 자신이 소유했던 비나리의 토지도 이미 교구로 넘겼으며, 지난 2008년에 기자가 청량산 자락의 비나리를 찾아갔을 때는 한참 빈센트 반 고흐에 심취해 있었다. 당시 정 신부는 고흐가 보리나주 광산촌에서 전도사로 일하면서 가난한 광부들 처럼 허름한 움막에 살며 예배하던 이야기며, 그 첫사랑에 실패한 이야기, 동생 테오와 나눈 우정 등등. 특히 ‘감자 먹는 사람’의 여러 판본을 보여주며 고흐가 얼마나 일하는 사람들에게 섬세하고 깊은 애정을 담아 왔는지 알려주었다. 고지식하고 거만한 교회에 대해서도 분개하였다. 고흐는 그런 교계의 성직자들에 의해 면직되었기 때문이다.

정호경 신부는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로 일하면서 글에서 ‘하느님을 어디서 만날 것인가?’ 물었다.

“가짜 종교는 하느님, 거룩함, 좋은 것은 저 높은 곳에 있다고 가르치며, 제상의 위치도 저 높은 곳이나 벽을 향해 놓으며, 주요 교리는 일방적으로 바치라는 착취구조, 일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억압구조로 되어 있는 당시 소유지배층의 지배이데올로기의 성격을 지녔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들이 강요하는 윤리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이며, 암세포처럼 뭐든지 일부 사람이 독점한다. 성과 속을 분리하고, 제상(祭床)과 밥상을 분리하며, 하느님 말씀과 사람 말씀을 분리시킨다. 그리고 교리와 윤리가 모두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이들이 전달하는 하느님은 억누르고 길들이고 일방적 봉헌을 강요하는 무서운 분으로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하느님이다.

한편 진짜 종교는 하느님, 거룩함, 좋은 것은 저 낮은 곳에 있으며,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처럼 거룩함은 보잘 것 없는 이들 속에서 발견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제상도 사람들 가운데 놓으며, 바침(봉헌)과 나눔이 하나라고 가르치며, 평등한 섬김을 강조하기 때문에 듣기와 말하기 역시 평등하게 주어진다. 즉, 평등과 자유가 구현되는 순환 및 공생논리다. 그밖에도 성과 속이 일치하며, 예수가 밥상에서 성체성사를 세웠듯이, 성체성사와 가난한 이들과 나눠먹어야 할 밥을 일치시켜 제상과 밥상을 나누지 않고, 가르침이 구체적이며 역사적이다. 이들이 전달하는 하느님은 해방하시는 하느님이다.” 

 

▲청량산 자락 봉화 비나리에 있는 정호경 신부의 오두막에서 신대원 신부의 설겆이를 지켜보고 있는 정호경 신부.

특별히 가난한 이들과 온갖 생명들을 사랑했던 정호경 신부는 이제 스스로 무력하고 가난한 자 중의 하나가 되어 병상에 누워있다. 정 신부의 ‘어느 노숙자의 기도’를 들어보면 “누가 뭐래도 저는 주님만은 굳게 믿습니다. 어제 무료급식소에서도 주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어젯밤 지하철역에서 잠을 잘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갇히고 쫓기는 막장 인생이지만 밥 한 그릇이 고마운 줄 알게 되었고, 다시 일어나 새로 시작할 마음을 먹는 것도 모두 주님의 은총임을 믿고 있습니다” 하고 고백했다.

정호경 신부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걸으며 이렇게 다시 기도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구원이신 주님!
제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십시오!
주님이 동행해 주시면
그 어떤 두려움도 무섭지 않습니다.
주님이 동행해 주시면
그 어떤 외로움도 무섭지 않습니다.
주님이 동행해주시면
그 어떤 절망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구원이신 주님!
갇히고 쫓기는 백성에게
부디 동행의 복을 내리소서.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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