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순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전대표] 일상안에서 자신의 몫 찾는 생활정치 필요..

선생님을 꿈꾸던 한 소녀가 있었다. 그러나 학업 대신 노동을 선택해야했던 그 세월이 결국 그녀의 꿈을 이루게 했다. 그녀는 환갑을 넘긴 지금도 후배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존엄과 노동운동의 역사를 알리는 스승이 되었다.

꿈도 접고, 어린 나이에 공장을 다녀야 한다는 수치심이 신앙도 버리고 방황하게 했지만, 가톨릭노동청년회를 알게 되면서 다시 하느님 앞에 섰다. ‘노동은 기도, 작업장은 제대다. 노동자는 온 세상의 금은보화를 합친 것보다 더 귀한 존재’라는 가톨릭노동청년회 서약을 평생 소명으로 삼겠다는 다짐과 함께였다.

엄혹한 시기, 진정제 두 알을 먹으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원풍모방 노조 부지부장을 맡으면서 해고와 수배를 겪고,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지도위원,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회장 등을 거치며 오로지 노동자로서, 노동자를 위해 살아갔다.

노동자가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투신한 날들
가톨릭노동청년회 영성으로 작은 곳으로부터의 변혁 꿈꿔

박순희 전 대표는 노동자 스스로 변화하고, 깨우쳐서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그랬듯 어느 누구도 대신 가져다 주지 않는 노동자의 권리, 노동의 존엄을 스스로 살고 가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의식을 다지고 노동자로서의 삶을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이런 신념을 갖게 된 것은 가톨릭노동청년회의 행동양식으로부터 비롯됐다. 예수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며, 예수의 마음으로 실천하고 나눈다는 생활원리가 오랜시간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됐고, 다른 사람들의 변화도 이끌어냈다고 믿는다.

오랜시간 노동운동을 지켰고,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힘썼던 박순희 전 대표에게 지난 2004년 민주노동당을 통해 의회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끝내 고사하고, 대신 노동분야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후배를 추천, 당선을 도왔다.

▲ 박순희(아녜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전 대표.

“예전 노동운동 할 때도 늘 부지부장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왜 지부장 한 번 못하느냐고 놀림처럼 말하기도 했지. 하지만 난 지부장을 못해서가 아니라 부지부장 역할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무엇에 더 맞는 사람인지, 무언가 할 때는 항상 그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노동자,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발언할 기회가 없는 현실에서 정치세력화의 절실함을 느꼈고, 전국노동자협의회,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박순희 전 대표는 밤을 새워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노동자 교육과 정치세력화에 대한 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선배로서 노동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지도자를 키워, 필요한 곳으로 파견하는 것이 그녀가 선택한 고유한 몫이었다.

그와 동시에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을 통해 측면 지원을 하면서, 천주교 사회운동 단체들과 함께 낙선낙천운동을 벌였고, 천주교 신자 국회의원들에 대한 신앙적 관점, 의식, 비리문제 등에 대한 검증 활동도 펼쳤다.

국회의원 출마 제의 거절, "내 몫은 예수의 뜻에 맞게 투신하는 일상안의 정치"
국회진출로 귀결되는 정치, 준비 없이 당선만 쫒아가는 정치 옳지 않아

“정치활동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상 생활에서, 가정과 지역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작은 실천과 변혁도 국회의원으로서 의회에 진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정치다. 국회에 나갈 기회를 거절한 것은, 굳이 정치 영역으로 따지자면 생활 정치인으로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내가 노동운동을 하고 현장에서 살았던 것은 예수님의 뜻에 맞게 투신한 것이고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으로 실천하고자 했던 것일 뿐이다. 정치 일선에 나선다는 것은 그런 내 삶의 당위성과 맞지 않았다”

박순희 전 대표는 특히나 최근 총선 공천과정을 보면서 그런 점에서 우려가 깊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끊임없이 준비하고 전문성과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인데, 모든 과정이 국회의원 뱃지를 달기위한 배경이 되고, 출세길로 생각하는 것, 그래서 ‘무조건 되고 보자’는 식의 의회진출은 절대로 안된다고 못박는다.

“작은 것에서부터 투신해야 한다. 정치나 정치세력화가 국회진출을 위한 것은 아니다. 생활 정치인으로 기본을 갖추며 살 때, 무엇이든 받아들여지고 변화될 수 있다. 삶 속에서 예수를 따라 사는 생활정치인으로 여러 분야를 탐구하고 성찰할 때, 또다른 정치의 장이 열린다”

박순희 전 대표가 이런 신념을 갖게 된 것은 노동운동보다 먼저 접했던 가톨릭노동청년회 활동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관찰, 판단, 실천의 단계와 이에 대한 나눔은 우선 자기 자신과 공동체 구성원들을 변화시켰고, 주변 사람들에게 파장되었다. 내가 먼저 변화되니 가정, 이웃, 지역 사회가 점차적으로 변화되더라는 경험은 그가 일생을 통해 얻은 가장 큰 보화다.

박 전 대표는 “70년대 그 힘든 상황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긍지를 갖고 살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그런 삶의 변화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긍지를 갖고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것을 보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기쁨과 힘을 얻었다”고 고백하면서, “수십년이 지났지만 그때 가노청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들은 지금도 각자의 현장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투신한다. 하다못해 동네 통장, 반장이라도 하고, 아름다운 아파트 만들기 운동, 학교 급식문제에 대해 참여하기도 한다. 철저한 밑바닥 작업과 성찰을 통해 자기 변화와 희열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노동자들을 만나 선배 노동자들의 삶과 운동 역사에 대해 설파하느라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박순희 전 대표는 신앙인으로 사회운동을 한다는 것이 두 배의 고충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갈등을 겪을 때마다 균형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초기,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뛰었던 시절이 있지만, 이제는 그 자리도 능력있는 전문가들에게 넘겼다. 전문가들이 많아지는 것은 올바른 변화라고 하면서, 대신 여성 일반노조, 미화원, 간병인 등 노동자들을 선배로서 만나고 소통한다.

마지막으로 박순희 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신앙이지. 성취보다 성찰을 우선하는 삶은 신앙으로부터 나오니까. 가톨릭노동청년회 활동을 지켜봤던 이들은 늦게라도 신앙을 갖게 되면 가톨릭이 생각난다고 해. 그런말을 들으면 참 기쁘지.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내 자리에서 예수님 붙들고 살아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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