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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구는 우리 집, 여성의 지도력이 중요하다션 맥도나 신부(성골롬반외방선교회, 65)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으로 필리핀에서 활동하면서 지구 생태계 위기와 생태신학에 대한 저술을 해 온 션 맥도나 신부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진출 75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하였다. 그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와 공동주관하여 지난 11월 10일 명동가톨릭회관 7층강당에서 ‘물, 기후변화, 그리고 생명’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을뿐 아니라 배론성지와 대구, 새만금을 돌아보며 강연을 하고 한국사회의 생태상황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 11월 13일 새만금에서 막 돌아온 션신부를 만나 오기백 신부님의 도움으로 생태 위기를 둘러싼 가톨릭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상봉: 지난번 명동 강연회에서 가톨릭교회가 다른 종단에 비해 뒤늦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션 맥도나: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필요 중심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먹을 것, 인권, 교육, 사회정의 등. 철학적으로는 ‘모든 사물의 기준은 인간’이라고 여겨왔는데, 신학적으로 인간을 삼각형의 꼭지점 위에 두고 모든 것들이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믿고 있었죠.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오듯이, 인간은 이 지구를 다스리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사실 공기, 물, 밥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지구에 의존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교회가 무시했던 것이지요.

예를 들어, 교황 베네딕도 16세는 2006년에 발표한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과 사회정의 등 우리의 응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지구가 파괴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어요. 이런 태도들은 비극이죠. 왜냐하면 성경과 가톨릭교회의 전통 안에서 육화, 부활, 성사 등을 통해 지구에 대한 돌봄을 성찰할 수 있는 부분이 어느 종단보다 많은데도 생태문제에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우리가 생태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와 관련된 과학을 알아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해서 윤리적으로 판단하려면 온실가스가 어디서 생기고 그 결과가 어떠한지 과학적 기본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어느 신학교에서도 철학코스, 사회학 코스 등은 있지만 과학코스는 없어요. 그래서 주교나 교회 지도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으니 아예 관심을 꺼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하느님 백성’인 교회론에 충실하게 응답했더라면, 이런 문제들을 평신도 전문가들의 지도력에 의존해서 해결해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만 지도력을 움켜쥐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잘 모르는 영역은 사목영역에서 제껴 버리는 것이지요.

신부님이 쓰신 <땅의 신학>을 보면, 생태위기를 극복하는데 <준주성범> 등에 드러나 있는 전통적인 영성이 걸림돌이 된다고 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창조물을 찾아갈 때마다,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간다”라든가, “저로 하여금 저 자신을 멸시하게 하소서”라든가 하는, 몸과 물질을 멸시하는 태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생태적 관점에서 우리 시대에 걸맞는 영성은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말해 주십시오.

참된 가톨릭신앙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지금도 계속 창조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육화를 통해 지구의 이야기를 엮어가시고, 여전히 이 지구에 참여하고 계시지요. 미사 때마다 <사도신경>에서 ‘육신의 부활’을 고백하고 있는 상황에서, 물질과 우리 몸 자체는 하느님 보시기에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친밀하게 만나는데, 성체성사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통해, 세례 때에는 물을 통해, 견진 때에는 기름을 통해 그분과 만나지요. 이렇게 우리는 구체적 사물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 역시 사물를 통해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물질혐오 사상이 두루 퍼진 것은 철학적 영향이 큽니다. 사물보다 영혼을 중요시 하는 플라톤 철학과 같은 것은 비판하고 버려야 합니다. 특히 이런 태도는 전통적인 영성에서 확인되는데, “몸보다 영혼이 중요하다”면서 영혼이 몸에 갇혀 있으니 영혼을 해방시키라는 것이지요. 몸은 욕망을 부추기는 사악한 것이므로 몸을 학대하는 것을 수행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죠. 그러나 정말 ‘육화’를 믿는다면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보듯이,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서 먹으러 오셨다지 않습니까? 이 지구는 우리의 ‘집’입니다. 주의기도를 바칠 때도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지구가 제 집이 아니라 월셋방이나 전세방이라면 지금 사는 집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최후심판 때에도 여기 지구에서 우리가 굶주린 사람을 돌보았는지,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었는지 먼저 묻습니다. 성실한 제자라면 우리 뿐 아니라 온 우주를 변혁시켜야 할 것입니다.

신부님은 책과 강연에서 하느님의 모성 회복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교회 안에서 모성적 관점이 확산되기 위해서라도 여성사제 문제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 아닌지요.

지난 번 명동 강연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대부분 여성이더군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들은 아홉 달 동안 아기를 수태하는 존재로 생명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로 이런 문제에 마음이 끌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여성이 교회 안에서 지도력을 행사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는 ‘화해자’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여성은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지요. 그러나 여성사제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제의 모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사제가 되더라도 성직주의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교회와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예를 들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조차 생태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었는데, 제일 먼저 가톨릭에서 이 문제를 주창한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이며 생물학자인 바바라 잭슨이라는 여성입니다. 만약 이런 여성이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면 아마 생태적 문제가 거론되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 권력화되어 있는 성직주의가 남아 있는 상태에선 마치 복잡한 사회적 이슈들을 교회가 한 팔로 감당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손 모두 사용할 수 있어야죠. 그러려면 여성이 교회에서 지도력의 일부가 되어야 하겠지요.

문제가 가부장적 성직주의에 있다면, 그럴수록 남성보다 더 생명친화적인 여성들의 교회 지도력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현 교회 체제를 바꾸지 않는다며 여성이 성직에 참여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영국의 대처수상은 여성이었지만 남자들보다 더 가부장적이었지 않았습니까?

이번 미국에서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 되었는데, 그렇다고 미국 자체의 정책 기조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흑인들에 대한 배려 등 기회가 넓어지지 않겠어요? 교회의 여성참여 문제도 그런 것 아닐까요? 그래도 지금보다 더 여성다움을 중시하고 여성적 가치가 확장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성공회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여성사제들조차 예전에 남성사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로만칼러 쓰고 다닙니다. 어느 국제행사에 갔더니 한 성공회 여성주교가 빨강색 주교복을 입고 돌아다니기에 “왜 똑같이 하냐? 고 물은 적이 있는데, ‘안 그러면 인정을 못 받아요’ 하고 답하더군요. 여성이 성직에 참여해도 변한 게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저는 가톨릭교회에서 수도회나 선교회처럼 교구장도 임기제로 바꾸고, 투표로 선출하는게 더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민주적으로 성직자들과 교구민들이 참여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션 맥도나 신부의 이후 일정 때문에 서둘러 인터뷰를 끝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인터뷰를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쉬는 중에도 션 맥도나 신부는 휘파람으로 노래를 불렀다. 마치 새를 부르는 소리 같았다. 막바지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여성사제직 문제를 다루면서 내내 강조한 것은, 교회권력에 대한 것이었다. 교회의 성직이 권력으로 남아 있는 한 다른 어떤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감을 주었다.

/한상봉 200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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