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 <깨물지 못한 혀>의 저자

당초 8월 15일 63주년 광복절을 즈음하여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될 예정이었으나 친일명단 등재에 항의하는 이의제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두어달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종교단체 가운데는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지난 7월 28일 사전편찬위측에 공문을 보내 7명의 천주교 친일인사 등재를 재고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는 상황에서, 우리신학연구소에서 김유철씨가 한국천주교회의 친일행적을 밝힌 <깨물지 못한 혀>라는 책이 발간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여기>에서는 저자를 만나 생각을 들어보았다.


한상봉: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친일인명사전>이 교회와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유철: 해방 후에 사회 각계각층이 미처 매듭짓지 못하고 넘어간 친일잔재 청산의 과제를 민족문제연구소가 다시 문제 제기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친일 문제는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에 다른 게 아니라 역사의 문제이며 진실의 문제이며 후손들에 대한 책임의 문제라고 봅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대상자들의 명단이 발표되면서 우리 한국교회는 2000년 대희년을 맞으면서 발표한 <쇄신과 화해>의 정신에 따라서 우리 교회의 친일행적에 대하여 아프게 받아들이면서 “맞습니다.”하고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측은 7명에 불과한 천주교 친일인사 명단발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상황논리로 변명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면 35년 동안 외세의 압박아래 살아온 민족의 상처를 누가 치유해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 백성들이 징병에 끌려가고 창씨개명하고 군위안부로 끌려가는데 교회는 책임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런 잘못을 교회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겸손되이 받아들였다면 그 여파가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그런데 민족문제연구소의 발표 하루만에 종교단체들 중에서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항의한 곳은 천주교회 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한기총이나 불교에서도 그렇게 빨리 대응 안 합니다. 개신교는 58명이나 되고 불교는 54명이 친일인사 명단에 올라갔는 데 말이죠. 우리 천주교회는 이걸 안고 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21세기를 잘 매듭짓고 새로 출발해야 했던 것이지요.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지금여기 현실에 연결될 수 있다는 말이군요.

우리가 친일문제를 잘 매듭짓고 충분히 반성해야 한다는 것은 그러한 ‘욕됨’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실상 지배권력과 폭력에 협조했던 행적은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입니다. 5.16군사쿠데타 초기에 지배권력에 교회 지도자들이 유착관계를 맺는 것이나 전두환 시절에 국보위에 사제들이 참여한 문제 등이 다 그런 것 아닙니까? 그걸 교회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 엄혹한 시절이 오면 교회는 언제라도 똑같이 행동할 것인지 묻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행태를 하느님의 눈으로 보는 것은 교회학자와 신학자들의 의무인데, 여지껏 어떤 이도 그 문제를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지금여기> 독자투고란을 보면 주로 촛불집회에 관련된 기사들이 주로 읽히는데, 지금 교회가 촛불집회에 호응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행태는 과거를 읽지 않고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과정을 꼼꼼이 밟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일제시대에 보여준 것 같은 지배권력에 대한 ‘순응과 협조’ 논리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실상 우리 교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순응과 협조’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살아남았지만 교회 안에서 예수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 교회는 예수님의 복음정신이 사라져버렸다는 말로 들립니다. 교회의 친일행적과 신앙과 상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잘못된 교회에 맞서, 그들을 이기고자 이 책을 쓴 게 아닙니다. 교회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제의 편에 서서 “이 싸움은 이기고 볼 일”이라고 강변했지만, 저는 아닙니다. 저는 다만 교회가 그 입으로, 자신의 기관지를 통해서 말한 것을 드러내어 기억을 되살려 주자는 것뿐입니다. 제가 책에 적어놓은 것은 그들이 한 말이지 제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한 평신도가 교회더러 신앙을 회복하라고 말하는 것이며, 예수 없는 십자가를 부둥켜안고 있는 교회를 향해 과연 그 조직의 정체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어른들은 순응과 협조가 교회 존립을 위한 방법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예수의 방법과 다릅니다. 예수는 자신을 죽이겠다는 권력에게 ‘그럼 죽겠다’고 나선 분입니다. 사실 그것은 예수의 방법이라기보다 하느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죽어간 예수를 구세주라 부르고, 이름 부를 수 없는 그 존재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한 일은 예수의 방법, 하느님의 방법을 외면하고 십자가 없이 먼저 살려고 애쓰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죽음’이라고 부르지 않고 ‘부활’이라고 부르는 집단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큰 축일이 부활절인데, 우리가 죽지 않으려고 하니, 사실상 부활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김유철 선생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책을 쓰면서 가장 아프게 느꼈던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 책을 쓰면서 두 번 울었습니다. 먼저 목차를 정하고 나서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예레미야처럼 참혹한 민족의 잘못을 드러냈던 구약의 어느 예언자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나는 시골사람입니다.” “말을 할 줄도 모릅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하고 주저했던 게 생각나서요. 그리고 1943년에 발표된 교회기관지의 글을 읽고 나서입니다. 보세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애용하던 식기를 헌납하여 이것이 어뢰가 되어 적국의 군함을 격침시키고 우리의 자녀들이 밥을 먹던 수저가 헌납되어 이것이 포탄이 되고 폭탄도 되어 혹은 적국의 비행기를 떨어트리고 혹은 적군의 진지를 괴멸시키고 하는 것은 생각만 하여도 얼마나 통쾌하며 얼마나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일이 되는가?...”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에 이처럼 철저히 순응 협조하는 일을 통쾌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다니, 이게 사람 집단의 말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까? 이게 하느님을 모시는 사람의 입으로 할 수 있는 말인가, 생각하며 엉엉 울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2년 후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올릴 때, 얼마 전까지 죽기를 바랬던 미군들 앞에서 같은 입으로 미군의 ‘승전 만세!’ 삼창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교회 지도자는 누구이고, 도대체 어느 말이 진심인지 묻고 싶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 책임자로서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뻔뻔스러운 얼굴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해방 이후에 교회는 그 어느 집단보다도 먼저 반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반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주교가 나올까봐 재빨리 한국인 노기남 신부를 주교로 앉힌 것을 지금도 서울대교구의 대변인은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박정희가 만주사관학교를 수석졸업하고 그 덕분에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을 만큼 똑똑했다는 걸 자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인명사전에 등재된 천주교 친일인사들은 대부분 태평양 전쟁 당시 국민총력연맹 등 전쟁에 협조적인 단체에서 간부를 맡았다는 이유로 명단에 올랐는데, 이들이 생각했던 전쟁과 평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교회에서 자주 쓰는 ‘그리스도의 평화’라는 말도 신학적 사목적 현실적으로 다시 정의 내리지 않으면 우리의 갈길이 어둡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면서도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자이툰 이란 말이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라는 말 아닙니까? 러시아도 평화를 운운하면서 그루지아를 공격합니다. 중국은 티베트인들을 학살하면서 ‘평화’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무엇이 그리스도의 평화인지 답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해외에까지 군종신부를 파견하는데, 이 군종신부가 말하는 ‘평화’란 또 무엇입니까? 도리어 일본천주교회는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침략의 다른 모습이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천주교회와 한국천주교회에서 말하는 평화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 지 따져봐야 합니다. 최근에 한국교회는 일본천주교회와 빈번한 교류를 하고 있는데, 거기서 다른 거 말고 먼저 이런 평화문제에 대해 교류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한국천주교회의 원죄 그리고 교회언론’입니다. 특별히 언론에 주목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책을 쓰면서 부제에서 ‘언론’을 언급한 이유는 교회언론의 책임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잘못되어 가고 있을 때 바로 세우는 것, 시대의 욕됨을 가려주는 것은 언론의 몫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경향잡지> 등이 폐간되었을 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목소리를 냈다가 폐간당한 게 아닙니다. 종이소비를 줄이자는 일제에 대한 순응과 협조 차원에서 폐간한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교회뿐 아니라 ‘언론’이란 이름을 붙인 대상들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언론은 먼저 깊이 ‘통회’해야 합니다. 그때에야 교회가 살 것이며 언론 또한 살 것입니다.

이 책이 나오고 한겨레신문 등에선 크게 기사로 다뤘더군요. 친일문제는 예민한 사안이라 그 파장이 작지 않을 텐데, 요즘 심경이 어떻습니까?

저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제 신앙의 끝이 ‘예수’였으면 좋겠습니다. 겟세마니에서 바쳤던 예수의 기도처럼, 문익환 목사님이 옥살이를 하면서 바쳤던 기도처럼 저도 저한테 맡겨진 일들을 때로 거부하고 싶어집니다. 이런 책을 쓰고 나면 한편에선 박수소리가 높지만 다른 한편에선 비난과 오해가 깊어진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세상인심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칭찬도 비판을 받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게 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십자가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나오고 제 딸도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살아야 한다”는 자식의 말에 힘을 얻곤 합니다. 다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모두를 위해 기도해 주면 좋겠습니다.

최근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인 전종훈 신부에 대하여 서울대교구가 인사이동을 통하여 납득할 수 있는 이유도 없이 '안식년'을 명하여, 9월 1일까지 주임으로 있던 수락산성당에서 떠나라고 한 것에 대해서 세간에 말이 많은 상황이다. 김유철씨와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 교회가 권력에 순응하고 협조하였다"는 말이 가슴에 와서 박힌다. 작년에 삼성비리를 폭로하고 이명박 정권 이후에는 정부권력의 그릇된 정책을 비판하는 촛불문화제를 지지하며 시국미사를 주도했던 사제를 사목현장에서 밀어내고 있는 교회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제강점기에 민족세력을 교회에서 정죄하고 밀어냈던 교회지도자들의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한상봉 2008-08-24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