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송기역, <사랑 때문이다 - 요셉 조성만 평전>, 오마이북, 2011

조성만의 사람들

이 책은 ‘옛날 어떤 열사의 이야기’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1장’과 ‘머릿말’ 사이 30쪽 남짓의 ‘23년’(47-79쪽)에 실려 있는 18명의 ‘남은 자들’의 인터뷰가 가슴에 남는다. 23년이 지나 그들은 40대 중후반에 이르렀다. 일부는 이민을 갔고, 누구는 수녀가 되었다. 대부분은 평범하게 이 땅에 산다.

하지만 모두들 가슴 한 구석에 '조성만'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건드리면 상처가 아직도 후끈거린다. 남편에게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아내도 있고, 아예 인터뷰를 거절한 사람도 있다. ‘마음수련’으로 기억을 지워버린 사람마저 있다. 누구는 학원을 하고 누구는 정치를 했지만 아직도 그 의미를 묻는다. 아이가 그 일을 물어보자 눈물부터 후두둑 떨어지더라는 엄마도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성만 사랑’을 만들고 조성만 평전을 냈다. 열사가 잊혀질까 봐, 그래서 우리 젊은 날이 송두리째 사라질까 봐 두려운 사람들이다. 80년대의 뜨거운 젊음과 열린 명동성당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싶은 중년의 젊은 평신도들이다. 이들이 ‘조국통일 열사’인 조성만 열사로 말미암아 새로운 투쟁을 기획할 여력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이들은 지금 기억을 남기려 애쓴다. 

▲ 조성만이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투신하는 장면. 현장에 있던 서강학보 기자 최순호가 찍었다.

세대에 갇힌 기억

23년 전의 ‘조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시공간이 다른 차원에 속한다. 어쩌면 우리는 마치 다른 행성에 사는 것 같다. 그때 힘없이 쫓기는 사람들은 명동 성당에 너절한 천막을 ‘쳐도 됐다.’ 교회의 어른은 가난한 사람들을 맞이했고, 가톨릭 교회는 예수를 조금 닮은 것처럼 보였다. 현재의 눈으로 보자면 참 전설같은 일이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누구도 조성만을 아는 체하지 않는다.

조성만이 잊혀진 것은 그를 적극적으로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가톨릭학생운동의 요즘 후배들이나, 해방 이후 교회사적 지식이 있을 법한 후배 몇몇에게 대뜸 조성만 열사를 아는지 물어봤다. 2000년 이후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그들 대부분이 그런 ‘지식’이 없다. 옛 세대는 아직도 뜨겁고 후끈거리는 상처로 괴로워하는데, 젊은 세대들은 하얀 백지처럼 공백이다.

한 발 떨어져서 이런 현상을 성찰하노라면, 조성만의 기억이 한 세대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때 그분과 가열차게 싸웠던 세대의 기억은 단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대량으로 소멸하고 있다. 이유는 시간나면 따져보자.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의 의미다.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 현재 기억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열사는 부활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좁은 소견일지 모르지만, 대중운동의 주축이 ‘청년 학생’에서 어느새 ‘30-40대’로 중심 이동한 것도 같은 이유다. 물막이 댐에 갇힌 강물처럼, 운동의 열정과 기억이 한 세대 안에 성공적으로 갇혔다. 나이 들면 세월은 더 빨리 가는 법이다. 곧 운동의 주축은 40-50대로 신속히 이동할 것 같다. 그리고 더욱 빠르게 노령화될 것이다. 이웃 일본의 운동권이 그랬다는 이야기를 풍문에 들은 것도 같다. 

▲ 명동성당 입구에서 정의채 신부가 사도예절을 집전하고 있다. 조성만이 자살했다는 이유로 장례미사 대신에 사도예절로 치러졌다.

적극적으로 기억하기

이 책을 낸 사람은 세대를 넘어 기억을 전승하려 한다. 조성만을 그냥 ‘담담하게 묘사하는 책’을 내고 싶은 것이다. 그 시대의 언어와 느낌과 열정을 쉬운 필체에 지루하지 않게 담아내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은 조성만이 몸담았던 종교의 길이기도 하다.

모든 종교는 창시자 못지않게 그 종교를 체계화한 2대, 3대의 역할이 컸다. 사도 바울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상하기 힘들다. 부처님과 용수의 관계도 비슷하다. 온 몸으로 진리의 빛을 밝힌 자만큼이나 그를 기억하는 자의 몫도 크다. 조성만을 기억하고, 조성만 이야기를 만들고, 그와 관련된 의미를 나눈 자리를 만들고 체계화하는 일은 이제 시작이다. 이런 일은 젊음의 패기 보다는 중년의 지혜와 여유가 더 필요한 법이다.

기념비를 짓기 보다는 쉬운 글을 남겨야 한다. 이름 석자를 남기려고 동상을 세우는 개발독재식의 ‘기념 사업’은 필요없다. 오히려 노래와 책을 통해 의미를 남겨야 한다. 서점과 강의실의 한 구석을 차지하게 만드는 고전적인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이 이루었던 ‘내면화된 기억’을 물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사도들은 예수의 일생을 담담하지만 소박하게 기록했다. 복음서는 이 책처럼 잘생기고 어진 팔레스티나의 한 젊은이가 살아간 길을 담담히 엮었다.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이 80년대 후반에 어떻게 살았는지, 열사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열사로 인해 얼마나 역사가 힘차게 전진했고, 남은 사람은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스토리로 전하는 것이다.

이 책은 주인공과 비교할 역사적 인물을 찾고 있다. 명동성당 신자 조성만은 자살했기 때문에 명동에서 장례미사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부를 꿈꾸던 이 청년은 죽어서도 가톨릭교회에서 홀대 받는다. 그런데 명동의 청년들은 이미 23년 전에 조성만과 안중근을 비교했다(326쪽). 이 둘은 가톨릭 신심이 깊었고 교회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민족을 위해 생명을 앗았다는 점이 똑같다.

그리고 이 책은 하나의 사실을 덧붙인다. 조성만이 죽고 몇 년 후 특전사 사령관을 지낸 명동성당 신자 정명주 씨가 자살했다. 이때 명동성당 주임신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신자에게 위령미사를 드렸다고 한다.(327쪽)

조성만을 기억하는 자들이 교리를 들먹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신학자로서 그런 논쟁은 앞장서서 막고 싶다. 교리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조성만으로 인해 가톨릭교회의 교리가 바뀌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어떤 교리나 명령도 ‘기억’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기억은 물처럼 흐르며 의미를 낳는다. 부모의 기억은 자식의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기억을 전승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행히 안중근 토마를 새로운 상징으로 만날 수 있었다. 조성만은 한 시대의 ‘표식’(353쪽) 이었다. 그것도 매우 강한 표식이다. 그의 기억을 서점과 도서관과 성당과 가정에 비치하고 전승하면, 우리는 훗날 조성만도 새로운 상징으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책을 집에 사 두고 주위에 권해야 하는 이유다. 

▲ 광주민중항쟁 계승 마구달리기 행사를 앞두고 명동성당 청년들이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다. 왼쪽 줄 세 번째가 조성만이다.

명동의 기억

조성만의 기억은 명동성당을 떠날 수 없다. 80년대 후반, 명동성당에는 웬만한 대학 총학생회보다 활발했던 청년회가 있었다. 이른바 ‘명동성당 청년단체 연합회’(명청)다. 조성만은 명동성당 신자로서 명청 소속이었다. 당시 바로 옆 가톨릭회관에는 명청의 동생 격인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가대연)가 있었다. 필자 같은 가대연 학생들은 ‘명청 형들’을 ‘멍청’이라고 짖궂게 부르며 함께 어울렸다. 돌아보면, 세상과 교회를 깊이 성찰하며 평신도로 사는 전망을 확립하던 시절의 기억이다.

명청은 명동에서 광주항쟁 사진전을 열거나 풍물을 치고 군부독재에 맞서 데모를 했다(170쪽). 명청 활동의 절정기는 87년 6월 항쟁의 중심으로 명동성당이 우뚝 섰을 때이다. 그때 명동성당은 의인들의 피난처 같았다. 지식인들은 명동성당을 ‘현대판 소도(蘇塗)’라고 했다. 삼한시대부터 억울한 죄인이 피신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신학자들은 구약성경의 신명기 19장에 나오는 ‘도피성읍’과 비교했다. 가톨릭신자들은 정의로운 종교를 자랑스러워했고, 국민들은 추기경을 사랑했다.

하지만 예수를 ‘야생적으로’ 따르던 청년회도 없고 대학생회는 홍익대 부근으로 이사를 갔다. 명동을 채우던 가난한 사람들의 탄식과 너절한 천막은 사라졌다. 이제 시공간이 바뀌었다. 가톨릭교회에서 유복한 사람들의 문화가 늘어날 낌새가 보이자 가톨릭교회는 제 손으로 소도의 대문을 닫았다. 명청의 조성만은 도피성읍의 창문이 아직 열려 있던 시절을 기억하게 한다.

2011년 5월 19일 목 17시에 명청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명동성당에서 조성만을 추억하며 이 책의 출판 기념회를 연다.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연구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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